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잠행하듯 수상쩍게 무언가를 쫓고, 그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와 자료를 기록하고, 또
구술하고 전파한다. 신정균 작가는 일상의 현상 아래에서 그것을 작동하는 실체를 추적한다. 관찰과 기록, 기억과 경험의 토대 위에 직조된
서사는 의미의 간극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하나의 풍경을 그려낸다. 또한, 이러한 서사 위에서 마치 첩보를 수행하는 듯한 작가의 독특한 시선은 안보라는 이름 아래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왔던 군부대의 내부를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행군하는 군인의 뒤를 쫓기도 하며, 심지어 군대에서 폐기된 장구류 등을 수집하여 눈앞에 펼쳐놓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매뉴얼을 바탕으로 은밀한 미션을 수행하듯 무언가를 추적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다. 어떠한 목적에서 그러한 행위를 수행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획득하는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알 수 없는
행위에 주목하기 이전, 작업에 등장하는 풍경과 기호, 상징은
꽤나 명백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그의 행동이 마치 어떤 실체에 다가서기 위한 과정이라는
실마리는 잡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특별한 사회정치적 맥락 안에서 의미를
지닌 기호들의 사용은 보편적 개념의 대상이 특정한 맥락 안에서 작동하며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질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열리는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의문이 작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보편적인 이야기 Universal story〉(2010)는 작가를 포함한 한국의 남성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의례처럼 되어버린, 하지만 사실은 국가의 사회/문화/정치적 차원에서 너무나도 특별하게 작동하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다. 군대는 한국에서 마주해야 하는 어떤 조건이며
누군가는 남자라면 엄연히 다녀와야 한다고 무심하게 내뱉는 당연한 의무이다. 군대라는 조건 앞에서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개별자는 일반의 남성으로 환원되지만, 작가는 그러한 보편성에서 빗겨나
개인의 사적 경험과 기억을 소환하여 과장과 생략의 방식을 취하고, 철저하게 재단된 주관적 시선의
각도에서 그것을 다시 추적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의 이데올로기나 사회정치적 맥락 앞에서 개인이 ‘보편’으로 환원되는 조건,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에 질문한다. 이러한 의문은 〈발견된
행적들 Uncovered trace〉(2013)로
이어지며, 전작으로부터 의문의 주체와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스스로 지시하는 대상이 되길 자처한다. 이것은 ‘군대’라는
특정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적 주변 환경을 배경으로 직접 제작한 행동강령(작가가 작업매뉴얼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간첩식별요령’을 바탕으로 한다)에 따라 특정한 방식의 관찰과 수집을 수행하도록 한다. 작가는
일상의 장소와 사물을 비일상적 방식으로 교합하는데, 이를테면 동네 뒷산의 풍경이나 집 안에서
발견한 사물의 이미지를 일상의 맥락으로부터 탈각하여 전혀 다른 맥락의 상징과 기호로 작동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유행가의
가사를 특정 이념을 상징하는 ‘옥류체’로 작성하여
일상의 텍스트를 선전의 이미지로 둔갑시킨다던가, DMZ(비무장지대)의
수원을 사용했다고 광고하는 특정 회사의 생수 패키지와 통제구역이라고 쓰인 경고판, 은폐된 군사시설처럼
보이는 장소의 이미지를 편집하여 영상을 만들고, 심지어 야간투시경이라는 군사적 목적 아래 사용되는
장비를 통한 시선의 온도는 기존의 인식을 뒤틀어 평범한 이미지를 비일상적으로 비춰낸다.
이렇게
작가는 일상의 텍스트나 장소, 또는 사물의 이미지의 인식적 전환을 통해 사적 영역이 사회/ 정치/ 문화/ 역사적
맥락 안에서 획득하게 되는 다른 차원의 의미에 주목하며, 이러한 방식은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가장 대표적으로 취하고 있는 방법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 안에서 의문의 방향에
따라 특정 환경에서 타인에 이르기까지 의미 형성의 중심에 위치하는 대상에 변화를 주곤 한다. 특히, 〈넘버스 스테이션 Numbers station〉(2016)의 경우는 관찰과 기록이라는 작가의 방법론에서는 동일하지만, 특정
장소나 타인을 경유하는 것이 아닌, 난수 방송이라는 라디오의 특정 송수신 방식에 주목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와 관련된 자료를 유튜브(YouTube)에
올리는 인물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와 난수 방송 관련 자료를 재구성하여 제시한다. 여기서
특정 주파수를 통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송하고 일부 전문가의 해석을 통해서만 그것이 의미를 산출하게 된다는 난수 방송의 성격은 실재와 허구, 가상과 실체 사이를 매개하는 유효한 지점이 되며,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구성 안에서 관객의 의심은 증폭하게 된다. 또한 〈스테이트먼트 Statement〉(2016)에서 작가는 두 인물의 사연을 통해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의 외연을 확장한다. 여기서 서사를 견인하는 중심이 되는 화자는 작가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이다. 작가는 집단으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서 국가의 이념적 유산 위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몸소 겪은 개인으로 등장하는 반면, 아버지는 국가나 사회에 종속된 개인으로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이 겪은 경험과 기억을 서술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이 두 인물은 한 시대를
공유하는 개인이지만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으로부터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역할이 그려내는 각자의 서사는 실재와 허구를 가로지르며 공통의 기억을 환기하거나, 서로 겹치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재배열된 하나의 사건이자 이념적 서사로 뒤바뀌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작가의 작업에서 관찰과 수집,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이 다층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른 차원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지만, 작가는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가만의 독자적인 재구성, 재배열을 통한 허구적 구성의 방법론은 오히려 관객을 미궁에 빠트리거나, 작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수상한 기운은 보는 이의 상상을 자극하여 더 큰 의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미술 언어의 교합, 즉 영상과
아카이브의 병치를 통해 그 실체의 진위를 파악하기 더 힘들게 만든다. 일상의 사물이나 장소에
새겨진 특정 기호가 작가가 직조한 서사 속에 과장과 삭제를 거쳐 삽입됨으로써 특정한 상징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 최초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한 자료들이 서로 뒤섞여 하나의 지도처럼 제시되는 방식은 단서는 되지만 절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관객은 눈앞의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각자가 가진 경험이나 기억, 지식과 같은 자신만의 도구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렇게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결합과 해체의 방법론은 집단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기억을 호출하고, 그로부터
사회와 집단의 관계망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게 만든다.
이렇듯 신정균 작가는 자신이나 타인의 기억과 경험을 호출하여 과장과 삭제의 변주 과정을 거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서사로
직조해낸다. 그리고 여기에 삽입된 일상의 기호는 기존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사회/ 정치/ 문화적 상징으로서 기능하며, 가상과 실재 사이에 위치한 서사의 모호함을 증폭한다. 하지만
기호와 상징으로 치환된 일상의 이미지는 꽤나 명백한 의미로 도드라져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조건을 직시하게 한다. 집단의
정체성 아래 개인에게 주입되는 이념이나 사상의 문제, 그리고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는 사회정치적
사건들은 그저 때때로 예민하게 사회의 표면으로 돌출하는 문제가 아닌 현실의 도처에 깔려 우리의 사고에 작용하는 배경 그 자체이다. 발견된 오브제로 이루어진 아카이브나 첩보영화 같은 작가의 은밀한 행적을 담아낸 영상, 일상적 풍경이 특정한 함의를 지닌 기호로 치환되는 개별의 순간은 개인이 집단과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와
그 속에 내재하는 긴장과 갈등과 균열의 지점을 가시화한 현실의 분열적 풍경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하는 행위는 일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비범한 의미를 획득하는 특별한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관객에게는 작가의 시선에 기대어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추적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여정에 동참하는
일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