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피드백 – 온전한 죽음의 불가능성 속에서
음모와
술수와 협잡과 온갖 아는 척과 인정 없는 세계관에 상응하는 대응은 철저히 거리를 두거나 산만함의 상태에 지독하게 몰입하는 것 말고는 없을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환경은, 떠나도 떠날 수 없음을 재차 확인하며
자조의 굴레를 반복하는 상황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미 미디어 환경에 체화된 사용자로서 피할 수
없는 피로를 감당하는 일은 어떤 재현의 난관을 또한 품고 있을까.
그
세계는 오히려 죽어도 상관없고, 죽어서도 그의 흔적들이 데이터풀을 유영하며 온전히 기억되지 못하지만
망각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회색의 폐허가 끈적하게 이어지는 모습일지 모른다. 항상 자동 로그인되어 연결을
중단할 수 없는 일상에서, 사용자들 사이의 위계와 계층을 무대화하고,
이를 소비하며 변주하고 증식하며 상품과 언어를 만드는 일은 성원으로 하여금 상황에 몰입하고 금세 분리하기를 끝없이 이행하도록 한다. 세계에서 탈주할 수 없고, 그 안에서 수탈당함을 알면서도 온전히
서는 것도 어려운 상황은 체념과 분열, 냉소를 직진의 충동으로, 엉망의
몸짓으로, 웅얼거림과 외침 사이 어디쯤 있는 리듬을 만들며, 그에
불화하는 표상들을 남긴다.
그것은
그리고 오늘의 가혹한 현실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류성실 작가가 설계한 체리장의 세계관이 반영하는 모든
것이 유희이고 밈으로 연결된 세계는, 실존을 위협하는 긴급한 상황을 필연적으로 잠재해둔다. 말하자면 그의 세계는 현실에 틈새를 벌려 유머를 양산하고 세계의 감각을 재분할할 가능성을 열지만, 한편으로 누구라도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상품일 수 있으며, 타인으로서 무게가 증발 당할 수 있는 지옥도를 연다고도 쓸 수 있다. 특히
현실의 위계와 위험의 감각이 허구의 생태계에 확장 반복되어 누군가는 딥페이크의 데이터로 전락하여 얼굴과 몸으로 수탈되고 착취되는 상황은 배제할
수 없는 재현의 조건이 되지 않았을까. 착취물을 소비한 이들 또한 협박과 채무에 시달려 그들이 다시
급전을 위해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쉬운 방법으로 이어진다. 몸의 파괴 자체를 생산물이자 상품으로 바꾸는
‘고어 자본주의’가 온라인 미디어 시장에 이르면, 여성혐오와 성적 대상화를 유머의 층위로 소비하며 제
극단성을 세탁한 채로 악순환을 재생산한다.[9]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밈 천하가 그저 균질하게만 펼쳐지지 않음을, 죽음과 멸망도 사리사욕
아래 펼쳐내는 농담지상주의의 세계에서 사회의 위계와 구조가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음을, 농담의 세계는
그 자체가 빈틈 자체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인다.
하여
여성의 실존까지도 밈이 되고 장식이자 교환 가능한 도구가 되는 상황에서, 체리장은 저승에서 어떤 딥러닝을
하며 암중모색하고 있을까. 요지는 그것이 더 이상 일등시민의 계도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
[1]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로 정의되는 온라인 하위문화의 남성들은, 수잔 팔루디의
지적처럼 신자유주의 질서와 정상성, 나이주의(ageism) 아래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배신당한(stiffed) 채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에 압도되면서도 국가를 비롯한 거시구조와
기구에 불만을 가지며 자신의 권리와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며 적개심을 높여가며 나이 들어간 일군의 남자 집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수잔 팔루디, 『스티프트:배신당한 남자들』, 손희정 옮김,
arte, 2024.를 참고할 수 있다.
[2]
〈BJ 체리 장 2018. 9〉, Youtube ‘Cherry Jang’ 채널, 2018. 12. 15 게시, 마지막 접속: 2024. 8. 31.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RLUwQOEQ8k
[3]
〈대왕트래블 2020〉은 류성실 작가의 홈페이지 https://www.bigkingtravel.com/ 에서 접속할 수 있다.
[4]
2022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진행한 전시 《불타는 사랑의 노래》에 설치한 이미지 정글에 담긴
QR코드를 타고 들어가면 이대왕의 실체를 폭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은 온라인 전시
가이드북을 통해 알 수 있다. 링크: https://assets.hermes.com/is/content/hermesedito/_South_Korea/The_Burning_Love_Song_guidebook.pdf
[5]
생각해 보자. 작가가 체리장으로 하여금 직접 쌍방향 라이브방송을 진행하도록 했다면, 방송은 허구의 캐릭터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사례로 이반지하의
라이브 방송을 떠올릴 수 있지만, 체리장의 경우 작가의 언급처럼 방송 자체보다 화면에 레이어를 올리는
작업의 조형성을 강화하는 점에 소통보다는 과도한 소통임 직한 방송의 프레임을 조형 문법으로 따른다는 점에 그와는 다르다. 류성실이 방송 컨텐츠의 조형성을 논하는 내용은 다음의 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다. 〈체리 장, 그녀는 누구인가 : 류성실 _interview〉, 앨리스온::국내
최초 미디어아트 채널, 2019. 12. 23. 게재, 마지막
접속: 2024년 8월
31일. 링크:
https://aliceon.tistory.com/3114
[6]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박진철
옮김, 리시올, 2018. pp.44-45.
[7]
〈대왕트래블-직진(feat.Omega
Sapien, Mudd the student, Lil Cherry, GOLDBUUDA)〉은 아래 링크로 접속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r0PxjE1zI
[8]
뮤직비디오에서 왜상처럼 보이는 이는 노인 여성이다. 그는 불만을 표시하고 조롱받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앞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남성 노인과는 달리 눈을 흘기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로서
그들에게 포획되기 위해 나타난다. 모두가 욕망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중에 노년 여성의 모습은 제일
어색하게 등장하지만, 또 어딘가에 존재했을 마지막 비평적 관객의 알레고리는 아닐까. 이후 그가 재현하는 노인 여성은 《불타는 사랑의 노래》전시에 선보인 ‘대왕애견상조’에서 반려견 ‘공주’를 화장하고
하늘로 보내는 의식을 지켜보며 의심은커녕 하염없이 슬퍼하는 노인 여성의 마스크로, 액자형 예능 프로그램의
리액션 화면 안에 등장한다.
[9]
고어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은 샤아크 발렌시아, 『고어 자본주의』, 최이슬기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1. p.18.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악플문화-여성에 대한 능욕과 멸시, 괴롭힘이 자원과 돈이 되는 시장-사이버레커-여성을 착취하는 포르노그라피 산업-n번방/딥페이크-디지털교도소-불법도박사이트-사채시장’ 의 고리를 언급한 바 있다. 손희정, 〈어떤 놀이의 결말〉, 경향신문 오피니언, 2024. 9. 24. 링크: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911205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