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체리장'이라는 BJ가 있다. 기괴해 보일 정도로 하얀 분칠과 강렬한 화장으로 얼굴을 덮은 젊은 여자는 음성변조된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종알종알 지껄인다.

'한민족 평화통일 홍보대사', '일등 시민 홍보대사', '최초 일등 시민권자', '국제평화기구 친선대사' 등 사기 냄새 풀풀 나는 직함을 모니터에 띄우며 대한민국 모든 어른 남성을 '오빠'라 부르는 정체 모를 여인, 체리장. 그녀가 바로 미술작가 류성실이 수행하고 있는 아바타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 4(BJ Cherry Jang 2018. 4)〉, 2018, 싱글 채널 영상, 6분 ©류성실

체리장의 복음이 들리십니까

그야말로 1인 미디어의 시대, 이제 BJ나 유튜버는 버젓한 하나의 직업일 뿐 아니라, 초등생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꿈꿔보는 스타의 길, 부와 신분 상승의 초고속 엘리베이터다.

맛집, 요리, 여행, 시사, 교양, 강좌, ASMR까지 인터넷 방송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파급력 있는 문화의 배움터이자 유행의 집결지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방송은 이제까지 '공신력'이라는 간판 아래 군림해온 지상파 방송이나 국가/사회적 공보의 일방향성 정보가 아니라 다른 저마다의 필요와 취향, 요구에 따라 정보를 발신하고 수신하는 자유로운 상호 소통의 플랫폼이다.

하지만 그 플랫폼의 현실 한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수많은 정보들이 양산되고, 많은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정보들, 소문, 음모론, 종말론,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친다.

인터넷 방송은 인류 역사상 어떤 다른 매체보다 이러한 허구들이 총천연색 마케팅 포장지와 만나 거대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마법의 전장이 되었다.

체리 장은 〈CHERRY BOMB〉(2018)이라는 영상작업으로 미술 전시장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지만, 아프리카TV, 유튜브 그리고 비메오와 같은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 '체리 TV'라는 채널로도 누구나 만나볼 수 있다.

미술작가 류성실이 수행하고 있는 작업은 이렇게 1인 미디어의 생산자(BJ , 스트리머, 유튜버 등으로 불리는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생산 방식을 패러디하는 일이자, 이를 둘러싼 동시대인들의 소비, 믿음, 감수성을 노이즈로 재생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체리 장은 가짜 정보와 사기성 짙은 온라인 마케팅 산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CHERRY BOMB〉에서 그녀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공표하며 천국 시민권을 위한 입금을 종용한다. 상황의 긴박함을 알리는 정신 사나운 경고음과 함께 모니터에는 많은 자료들이 떠다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과도한 자막과 영상 클립, 진위와 출처가 빈약한 채 굉장한 증거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뜨는 자료화면 등은 가짜 뉴스들로 유통되는 영상들의 특징을 과잉적으로 재현한다.

꿈에서 숫자를 받아 북한의 난수 방송을 해독하고 핵미사일이 떨어질 위치를 풍수지리적으로 분석했다는 체리장의 블랙코미디는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낸다.

굉장히 허구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실제로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루머와 종말론의 유행을 모방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음모론, 종말론을 단순히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논리들과 교묘하게 얽혀있는 신자유주의적 욕망과 전략을 드러낸다. '세 가지 원칙', '비법'과 같은 마케팅의 만능 어법이 체리장의 선의와 인류애를 힘입어 복음처럼 전파되는 것이다.

류성실, 〈BJ 체리장 2018. 9(BJ Cherry Jang 2018. 9)〉, 2018, 싱글 채널 영상, 11분 ©류성실

소시민적 불안과 취약성을 마주하며

체리장이라는 아바타도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다기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과한 연출과 조잡한 편집술, 캠에 맞춘 시선과 말투, 배경으로 엿보이는 허술한 공간과 자극적인 선정성은 폐쇄적이면서도 다른 세계와의 접선을 갈구하는 BJ들의 낯익은 풍경이다.

그렇게 가장 '먹힐만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야매'들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따라하고 패러디함으로써, 작가는 1인 미디어 시대를 둘러싸고 소시민들에서 벌어지는 욕망, 감각 그리고 소통의 층위를 복합적으로 폭로한다.

한편, 모든 블랙코미디가 그렇듯이 체리장의 영상에는 초라한 존재들에 대한 가느다란 연민이 박혀있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거나 신빙성이 부족한 음모론에 휘둘린다는 것은 엘리트 계급이 아닌, 그래서 질 높은 정보의 유통에서 소외되는 소시민들의 불안과 취약성을 나타낸다.

1인 미디어의 시대는 20세기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시대, 바꿔 말해 폐쇄 회로의 시대에서 21세기 열린 정보 시대가 실질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린다.

그러나 그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시스템의 이면에 언제나 바이러스처럼 침투하는 것은 가장 취약하고 믿을 구석 없는 이들을 향한 '구원'과 '성공'의 거짓 약속이고, 그 맹신의 구조 속에 충성스럽게 복무하는 또 다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이다.

하늘에 미리 금은보화를 저축해 놓아야 천국 시민이 된다며 모니터에 계좌번호를 띄우는 체리장은 교활한 마녀 혹은 사기꾼이라기보다 맹목적인 선의로 그 구조에 철저히 봉사하는 집사이자 대리인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가부장제라는 현실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나타샤와 김첨지 또한 우리 사회에서 유쾌한 존재라기보다는 불편한 존재들이다.

나타샤는 체리 장 이전에 류성실 작가가 먼저 입었던 아바타로서, 대왕트래블 칭첸 투어의 현지 가이드이며 "근본 없는 외국인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창한 명승지 설명과 이북식 말투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마냥 믿을 수 없고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한국식 선입견을 환기시킨다.

2019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개인전 “대왕트래블 칭첸 투어- 김첨지 리바이벌 2019(Bigking Travel Ching Chen Tour – Mr. Kim's Revival 2019)”에서 나타샤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판타지와 황홀경의 나라 '칭첸'으로 시골 영감들을 이끈다.

광대처럼 웃으며 효도관광에 나선 영감님들과 단체 사진을 찍는 나타샤는 칭첸과 더불어 늙은 남성들의 욕망이 투사된 환상의 대리물로, 익명성과 껍데기로만 이루어진 왜곡된 기표로 자리매김된다.

류성실, 〈대왕트래블 칭첸 투어-김첨지 리바이벌 2019(BigKing Travel Ching Chen Tour-Mr. Kim's Revival 2019)〉, 2019, 싱글 채널 영상, 25분 ©류성실



구복 신앙과 가족주의에 깃든 물신

류성실, 〈대왕트래블-개선장군 시리즈(BigKing Travel-Series of victorious Return)〉, 2017년 디지털 프린트, 30.5x42cm ©류성실

전시장에 입장한 관객들은 본격적인 칭첸 관광을 시작하기 전, 김첨지라는 노인의 서사가 등장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김첨지는 아들이 보내준 효도관광을 떠나 가이드 나타샤를 만나고 와중에 복상사한 시골 노인이다. 2019년 칭첸 투어에서는 혼령으로 등장한다.

매춘 관광과 효도 상품의 착종을 모티프로 삼으면서 작가는 관광 상품, 성 산업의 문제, 혹은 생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거나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고 모순적인 코미디로 남겨놓는다.

그래서 이 기이한 투어에서 서그럭거리며 남는 이물감은 가족, 효도, 죽음, 무병장수와 같은 삶의 건전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물질과 성(性)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욕망과 맞붙어 있다는 사실, 나아가 이를 미끼로 삼는 자본의 편재성에 우리가 속박되어 있다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다.

한때 유행했던 원적외선 팔찌처럼, 칭첸 투어 속에 건강이나 행복을 약속해줄 실체란 없다. 거기에는 구복 신앙과 가족주의를 파고드는 물신적 성격만이 아우라처럼 둘러싼 채 웃지 못할 현실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체리장이나 나타샤를 통해 작가는 비릿한 욕망이나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기표를 기꺼이 아바타로 뒤집어쓴다.

또한 작가는 영상이든 입체 조각이든 소위 '야매', '키치', 싸구려의 미감으로 그 구조를 조밀하게 채운다.

전시장의 '유람선' 위에서 구경하는 허구의 관광도시 칭첸은 홍보영상에서부터 나비, 꽃, 폭포, 무지개가 어우러진 원색적인 가짜 자연으로 박제되어 있으며, 자수정 동굴, 수중 별장, 황금궁전과 같은 익숙하고도 상투적인 신화의 명칭들을 달고 번쩍거린다.

전시장 구석들에 자리한 조각 설치들은 찬연하게 구축된 가짜 낙원, 가짜 죽음, 가짜 부활을 장면화한다.

김첨지가 누운 무릉도원의 분홍빛 폭포수, 금빛 용안으로 거듭나 구름 위에서 외치는 김첨지 등 작가는 볼썽사나운 허상, 가짜들의 이미지를 지극히 공들여 아름답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가짜들을 거듭 죽였다 부활시킨다.

그렇게 유령처럼 결코 죽지 않는 그녀의 허구적 캐릭터와 인공적 세계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처럼 포장된 현실의 이면을 들추며 패러디의 역설적인 힘을 광선처럼 발산한다.

류성실, 〈나 안 죽었다!(I'm Not Dead!)〉, 2019, 모터, 혼합매체 설치, 150x200x280cm ©류성실

추천의 변

1인 미디어 시대의 1인칭 화자들, 그 이름도 모습도 다양한 복수의 ‘나’는 정치, 경제, 사회의 이슈는 물론 여행, 음식, 쇼핑, 건강, 연애 등의 개인 관심사까지 현재가 발산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출현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세우며 다양한 현재를 기록, 전달하기도 또 서로 논쟁하고 헐뜯으며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퍼트리기도 한다.

류성실 작가는 1인 미디어 시대의 콘텐츠 제작 방식을 전유하며 오늘의 모습을 전사한다.

작업에서 평화통일과 일등시민을 말하는 BJ 체리장과 대왕트래블 칭첸 투어의 현지 가이드로 일하는 나타샤는 전쟁, 안보, 종교, 효도, 성, 관광, 죽음과 같이 쉽게 증언할 수 없는 현재, 소화되지 않는 오늘의 기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블랙코미디의 가상주체들이다.

이들(작가)은 가짜 세상에서 진짜 가짜가 돼보겠다는 듯 실재가 부재한 오늘의 사안들에 낭자하게 덤벼든다.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현재의 말단을 무작위하게 드러내고 치밀하게 속된 가짜를 만들어 소유할 수 없는 현상의 내부로 틈입한다.

인가받은 미술 공간과 유튜브, 비메오 같은 온라인 공간에 동시 출현하는 작가는 은폐되지 않은 오늘이 뒤섞여있는, 매체의 기능과 환상을 동시에 지시하는 1인 공간에서 자신의 미술을 고안한다.

 
추천인 권혁규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