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신 이진주는 힘에 겨울 정도로 고독한 실내의,
그리고 실외의 조건들을 견디고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실존적 내러티브를 그린다. 이진주의 이야기들은
그녀가 엄청난 정밀성과 명료성을 가지고 그리는 상황과 환경들이 대상(아니면 피해자인가?)이 놓인 영토적 풍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과 관계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의적(寓意的) 함축을 지니고 있다.
이진주가 그리는 무대세트와 같은 시나리오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끈질긴 약탈
상태를 겪은 고립된, 피난된 세계처럼 끔찍하고 암울하다. 이진주의 그림들은
그의 인물 혹은 인물들을 우리가 실제로 가여워한다는 점에서 통절하다. 작가는 쉬운 상투적인 것들과 과장된
시각적 핵심대목들을 거부한다. 그의 복잡한 환영은 고통의 함의를 띄고 있으며, 눈앞에
닥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암시하지 않는 함의들은 전시(戰時) 조건들, 혹은 오염된 종말 이후의 세계의 여파의 결과이다. 대신 이진주가 창조하는 세계와
그가 만드는 내러티브들은 유예 상태에 있는 것 마냥 실재 위를 맴돈다. 작가의 증류한 세계들은 우리의 세계와
평행하지만 분리된 것들이다.
이진주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그의 기술적인 그림이, 색채의
사용과 표현 능력이 놀라운 만큼 강렬하고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의 비범하리만치 세련된 능력들은 묘사를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잘 실현된 균형잡기는 기교 너머에 있는 본질인 감정적 진실이 환영을 침투할 수
있도록 어떠한 디테일을 고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관한 신중한 선택이다.
이진주의 구성적 통달과 그의 회화적 터치는, 작업이 과장을 피해갈 수 있도록
조종하고 지나치게 깔끔하거나 지나치게 거칠어지는 데에 정착하지 못하게 하면서, 마술적 리얼리즘과 팝적 초현실주의의
느낌을 자아내는 토양이 된다. 땅을, 그것의 지형과 폐기물들과 사람형상까지
집요하게, 진을 뺄 정도로 정교하게 붓질 없이 맑고 섬세하면서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만드는 그의
능력은 그 어떤 고상함의 흔적은 없애면서도 정확하게 그리는 일에 헌신하여 아우라를 내뿜는 플랑드르 르네상스 화가들 작품에서의 명료성의 현대적 버젼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축소된 세계들의 느낌-그러나 훨씬 큰 스케일로-을 만들기 위해 한국 전통 채색화법인 분채와 작은 붓을 이용한다. 게다가 작가는
베케트Becket적인 절망을 띤, 불안감을 야기하는 참혹한 특성을 지닌
장면들을 꼼꼼하게 그린다. 그럼에도 이진주는 이와 같은 측면을 너무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그는 그의 장면들을 충분한 시적 우아함으로 어떻게든 가득 채워 작업이 조악하거나 근거 없이 그로테스크해지지 않도록
고양시킨다. 이진주의 환영에는 관람자를 심리적으로 붙드는, 전반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밀폐되고 폐쇄된 측면이 있다. 그의 주요 인물은 모호한 표정을
지닌, 미묘하게 밋밋한 얼굴 생김새와 야윈 체격을 지닌 머리가 짧고 가슴이 발가벗긴 성인 여성이다.
이 여성 인물의 유니폼은 팬티 위에 스타킹이다. 그녀는 이러한 볼품없는 조합을
모든 상황 속에서, 눈과 비를 포함해 모든 기후적 조건들 속에서 입는다. 간혹
작가는 동일한 인물로 보이는 것을 같은 그림 속에 다른 곳과 다른 포즈로 여러 번 넣는다. 이 환각적인, 혹은 꿈과 같은 설정은 중국 태생 화가 웡 수엔 Suen Wong이 팝적인
그림들에서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형태들을 그리는 데에 사용되었던 회화적 장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진주의 장면들은
정밀하게 관찰되며, 그의 표현방식은 신선하고 떨리도록 필사적이다. 작가의
사실적인 디테일에 대한 강박적 집중, 그의 초현실주의적 병치와 표현주의적 왜곡은 그레고리 길레스피 Gregory Gillespie의, 그가 절정에 있었던 때의 작업 정신을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이진주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
〈경계〉(2012)는 식탁 위에 앉아 실험이나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몸짓을 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오른쪽 가슴에 펌프가 연결된 채 앉아서 자해하는, 가슴이
발가벗겨진, 병원 마스크를 쓴 여성을 그리고 있다. 식탁 위에 펼쳐진
마그리트 그림들의 복제본 책이 한 손으로 (방금 자른 생선의 머리를 쥐고) 펴놓고
있는 동안 대상의 다른 손은 검사하기 위해 작은 열매를 높이 들고 있다.
배경은 전부 미술, 과학, 자연 그리고 종교와 관련된 물질 또는 사물 또는 형상들이 아우라를 풍기는
모습으로 가득 차 있는 실험실이다. 겉모습과 본질, 신념의 세계, 의미와 무의미의 세계, 계획된 그리고 우연에 의한 세계가 충돌하는 기표들이
하나로 묶인 이 제한된 세계 안에 있는 모든 몸짓, 모든 사물 또는 형상에 패티시적인 에너지가 스며들고 있다. 방 안 일대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그림 자체의 정확한 의미는 살짝 짐작할 수 있게 남겨진다. 그림의 기이함과 뒤틀린 스토리텔링 감각 면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이진주의 작업과 가장 흡사한 미국 여성 작가는
에이미 커틀러 Amy Cutler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유사점보다 더
많다. 커틀러가 담고 있는 가족관계의 부조리함과 모순, 사회적 풍습과
환경에 관한 걱정은 꽤나 순수한 동화 같은, 신비롭게 만들고 매혹시키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반면, 이진주의 장면들은, 아무리 어둡다 해도, 후기
패미니즘적 그리고 후기 식민주의적 반추에 맞게 재조명된 그림 형제보다는,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적인 감수성에 의한 더 병적인 경향을 갖고, 더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며, 더 내몰려 있고 망가져 있다. 커틀러는 작은 크기로 미세하게
작업한다. 하지만 이진주는 훨씬 큰 공적인 크기에서도 밀접한 크기의 작업에서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작업한다. 이진주는 또한 투시공간을 사용하는 (그리고 훌륭하게 개발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고, 커틀러는, 내가
알기로는, 그러하지 않다.
〈기억의 방법〉(2010)은, 예를 들어, 112 x 224cm 크기의 박스모양 캔버스로, 스토리텔링을 위한 설정들이 자연적인 것을 인위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된 디오라마 속에 집어넣어진 것처럼
보이는 따분한 일상적 활동들의 입체화된 지형의 “추출물들” 또는 “조각들”을 구성적으로 그리는 이진주의 경향을 나타낸다. 이진주는 자신의 세계를 등각 투영도와 부등각 투영도, 그리고 등장인물 혹은
인물들이 자신들의 내적•외적 삶을 실연하는 공간과 장소를 해부하는 듯 한 단면화,
평가적 시점, 그리고 대지계획 시점까지 포함해 다양한 원근법을 활용해서 그린다.
〈기억의 방법〉에서 이진주의 인물은 고립된 야영지, 그리고 육체적이거나 감정적인
학대와 노역을 입증하는 징후들을 담고 있는 어떤 범죄 현장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하고 있다. 인물은, 두 마리 경계태세의 우짖는 개가 그녀를 보호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아기를 움켜쥐고
눈 위에 누워있다. 알아볼 수 없는 사인이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비치볼이 떠다니는 머리 위 공기 중에 여러
새들이 쉬고 있거나 날아다니는 동안, 위쪽 나무에 있는 둥지 안에는 또 다른 갓난아기가 자고 있다. 이와 같이 이진주는 세계를 여러 겹의 피부를 지닌 몸으로 그리는 데에 빠져있으며, 그의
작가로서의 역할은 분석, 탐지, 해부 그리고 묘사를 하는 것이다. 그의 대지 표현은 무엇이 있는지, 그 위에 무엇이 떠다니는지, 그리고 그 밑에는 무엇이 머물고 있는지를 포함한다.
그의 지하 형상은 터널, 둥지, 굴과 같은 지하 장소와 함께 육체의 동맥과 정맥이 떠오르는 피하공간과도
같은 느낌을 지녔다. 이 지하 지역들은 땅의 숨은 구석진 곳 속에서 많은 정보가 드러나는 거대한 열정을 비추는
것들로 그려져 있다. 이진주는 이러한 굴공간을 효과적으로 회화화(繪畫化)시킨다. 친숙한 것은 비(非)-친숙한 것이 된다. 이러한 지하 공간과 그것의 조건들은 비유적으로 대지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공간 혹은 영역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이진주의 지하세계는 대지에 남은 인간 거주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진주의 지상세계 묘사는 어쩌면 의식과 관련된 이해, 또는 인과관계 분야인 명백한 축어의 막 뒤편에 거주하고 있는 마냥 우리 앞에 베일이 벗겨진 현실 면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흔히 관음증적 센세이션을 계시적인, 심지어는 황홀한
센세이션과도 결합시킨다.
두산 갤러리에서 열린 이진주의 전시는 미국에서 처음이다. 그의 환영은 불안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현세적인 것과 초현세적인 것을 섞는다.
이것은 승리의 한 패이다. 그것은 운 좋은 방문객에게 놓쳐서는 안될 매혹적인 감상의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