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최후의 겨울〉, 2011, 천에 채색, 148 x 110 cm © 이진주

16번지에서 열리고 있는 이진주의 개인전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파편화된 기억과 기억의 불완전성을 다룬 마르셀 프루스트(Marecel Proust)의 글을 연상시키는 전시이다. 기억, 일상, 비밀스러운, 은밀함, 일상의 밋밋함, 삶의 움직임과 유동성 등의 단어 퍼즐처럼 구성된 형상들은 때때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성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교차한다. 기법적으로는 사실적이면서도 부유하는 지형과 풍경은 초현실주의적인 무의식의 흐름 내에서 나름의 질서 안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진주를 단순하게 '수동적인 화자'의 입장에서 기억을 형상화하는 작가라고 정의할 수 없는 요소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한국화의 채색기법으로 제작한 심리적인 풍경화에서 스타킹을 신은 여성 이미지, 황량한 나무, 널부러진 도구나 공구, 기저귀를 찬 아기 같은 일상적 기호를 일관성 있게 표현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호들은 작가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요소이자 기억을 분석, 치유, 극복하게 하는 요소로 작가와 상호작용하는 '대면' 관계에 놓여있다. '도려내진 기억'들은 그림 속에 재배치된다.
 
이진주가 사용하는 회화의 프레임은 프레임이라는 실질적인 기능을 넘어선 '심리적' 경계의 도구로 작용한다. 이 경계는 이진주가 반추하는 기억에 거리두기를 설정하는 요소이자, 몰입을 끌어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진주의 거의 모든 그림에는 심리적 몰입을 방해하거나 돕는 건축 공간이나 지지대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특정 공간 안에서 작가가 과거의 기억을 옭아매고 다시 끄집어내고 곱씹게 하는 '화자'로 설정하는 연극성을 띤다.
 
이러한 심리적 풍경화는 상처 입은 슬픈 기억을 아우른다. 거의 모든 그림에 등장하는 스타킹을 입은 여인은 실제로는 거의 발가벗겨진 '나체'에 가깝다. 뇌(두발)가 없는 여성, 축 늘어진 가슴 아래로 뱃살을 지탱하는 여성은 검은 스타킹을 신고 무표정하게 도식화된 타입으로 등장하는 인간이다. 그녀는 이진주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다. 그녀는 〈공기로 만든〉 풀장에서 호스를 붙잡고 있고, 〈경계의 계절〉에서는 독일 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의 겨울 풍경처럼 황량한 장소에서 일상에 몰두해 있다.

〈검은 눈물〉과 〈921번〉에서는 과일과 김치 옆으로 칼이 놓여 있다. 칼은 과일과 김치를 다듬는 데 쓴 도구지만, 곧 공격적인 무기로도 등장할 수 있음을 스산한 풍격 속에서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상 작용은 〈어제의 거짓말〉, 〈매장과 침묵〉에서도 작용한다. 특히 후자의 그림에서 목욕하고 있는 바비 인형과 그 옆에 있는 케이크 조각과 포크는 일상적인 의미를 떠나 폭력성이 은밀하게 내재된 제스처를 설정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가 어릴 때 경험한 '트라우마'는 기억 속에 잠재해 있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반복-강박' 작용에 의해 계속 등장하는 '사후작용' 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진주가 구축하는 심리풍경화(psycholandscape)에서 작가는 이러한 트라우마와 사후작용의 희생양이 아닌, 이를 관찰하고 주도하여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는 정신분석학자와도 같다. 작가는 트라우마와 연관된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상처'를 조금씩 도려내고, 또 이를 감싸는 '그리기'를 통해,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파편화된 기억의 의미를 파헤치는 여행가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