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is way to meet you〉(2022)로 이 글을 시작해 보는 게 좋겠다. 금속 체인과 점토(plastic clay)가 함께 결합한 이 형태는 (비밀스러운) 두 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구조적인 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체인과 물질로 존재하는 점토가 서로 결합하기 위한 둘 사이의 (내적) 공간이 있고, 그 둘로 결합된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내는 (외적) 공간이 있다. 그러므로 작품 제목 “All this way to meet you”도 두 개의 의미로 독해될 수 있다. 문장 속의 나와 너의 존재가 단일 조각 형태를 이루고 있는 두 개의 구성 요소 간에 특정될 수도 있고, 조각과 이 조각을 마주하고 있는 신체 사이의 바라봄과 보여짐의 관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어쨌든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독해, 두 개의 응시가 묘한 긴장 속에 비밀스러움을 드러내며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금속 체인은 중력을 향한 현실의/현재의 제 무게와 더불어 양감 없는 표면 탓에 수직으로 설 수 없는 사물로 존재하며, 점토는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응집력과 응고성을 조건 삼아 바닥으로부터 임의의 형상을 단단히 세워 놓는다. 금속 체인은 뼈대처럼 형태의 내부를 관통하여 스케일을 결정하고, 점토는 뼈에 붙은 근육처럼 임의의 형상이 움직임의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양감을 규명한다. 이로써 조각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 셈이다. 이때의 조각은 계속해서 입자의 파동을 일으키려는 충동과 입자의 동결을 강요하는 책임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한다. 예컨대, 체인과 점토의 관계는 조각의 내부와 외부를 정의하며 형태에 대한 (일반적인) 지각과 인식을 견인하지만, 이 둘 사이의 반전이랄까, 뼈가 훤히 드러난 부분에서 점토는 체인 틈새로 스며들어가 간신히 붙은 채 내부와 외부의 위태로운 전환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공간적 전복은 이 조각이 이미 완결된 형태이기 보다는 아직 진행 중인 변형의 징후로서 다가오게 한다.

Jungyoon Hyen, All this way to meet you, 2022, chain, plastic clay, acrylic, 80x67x47cm ©Jungyoon Hyen

같은 시기의 작업 중 〈I grow when you fall〉(2022) 또한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금속 봉과 레진의 결합은 〈All this way to meet you〉의 금속 체인과 점토의 결합이 드러내는 감각과 거의 유사하며, 따라서 둘이 안팎으로 이루는 두 개(이상)의 공간과 작품 제목에 포함된 나와 너의 이중적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 따라 전환되는 응시가 (혹은 응시의 움직임이) 〈I grow when you fall〉에서 또 다시 반복된다.

나는 (적어도) 두 개의 형상, 즉 〈All this way to meet you〉와 〈I grow when you fall〉이 평평한 바닥을 공유한 같은 공간에서 두 개의 모서리로부터 그려진 대각선 상에 서로 마주하여 서 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마크 양(Mark yang)과의 2인전 《Inanimatefy》(2022, VSF)에서 현정윤은 이 둘이 각각의 대사-“All this way to meet you”, “I grow when you fall”-를 주고 받는 것 같이 어떤 장면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때 벽에는 〈I got over you〉(2022)와 〈I got over you (almost)〉(2022)가 부조처럼 나란히 벽에 걸려 있었다. 바닥에 놓였더라면 다른 운동성을 발산했을 텐데, 그 둘은 벽에 걸린 채로 어떤 순간적인 응축의 힘을 강하게 표출하며 벽으로부터 공간 내부를 향해 (혹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도) 제 형태의 범주를 규명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정윤의 조각은 형태의 물리적 조건과 표면상의 윤곽을 경계 삼아 그 외부와 내부를 향한 변형의 징후를 좇아 손을/몸을 뻗게 한다.

Jungyoon Hyen, I grow when you fall, 2022, steel, resin, silicone, silicone pigment, 60x134x66cm ©Jungyoon Hyen

현정윤은 조각적 방식으로 공간에 대한 상상에 뛰어든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감각의 논리(Logique de la sensation)』(1981/한글번역본2008)에서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적 감각을 통해 형상과 공간의 관계를 비롯하여 일종의 전환을 매개하는 “힘과 움직임”을 추적했듯이, 현정윤은 조각적 감각을 통해 어떤 형상들이 출현하는 공간적 상황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들뢰즈는 이러한 ‘형상’에 대하여 “‘드러나 있는 모습’이라는 의미에서 이미지의 하나”라고 했으며, 베이컨의 회화에서 그러한 형상으로서 이미지의 출현을 “받침대를 타고 골격 속을 돌아다니는 형상”이라 설명한 바 있다.[1] 형상에 대해 포괄적인 이미지라고 표현하여 말하는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이미지를 반딧불이처럼 “유령의 잔존하는 물질”과 관계하여 설명한다.[2] 들뢰즈와 디디-위베르만의 사유를 가져와 현정윤의 조각에서 미세하게 변환하여 출현하는 형상은 하나의 이미지로서 공간적 상상과 시간의 분절 및 중첩에 대한 감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조각적인 매체와 기법을 통해 조각적 감각을 새롭게 인식하기 전부터 그의 작업에서 영상과 설치의 형식으로 다뤄졌던 오래된 주제라 할 수 있으며, 이때 그는 현실/현재를 재매개할 수 있는 시공간이 “몽타주”처럼 결합되는 방식을 좇았다. 최근의 조각 작업은 앞에서 서술했듯이, 매체와 형태와 (서사 없는) 서사성을 엮어 개별적인 구성요소 간의 이중적/다중적 관계를 가늠하게 함으로써, 형태 안팎에 잔존하는 형상/이미지를 끊임없이 재매개하는 조각적 감각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좌) Jungyoon Hyen, I got over you (almost), 2022, steel, silicone, silicone pigment, 37x58x16cm | (우) Jungyoon Hyen I got over you, 2022, steel, silicone, silicone pigment, 34x38x14cm ©Jungyoon Hyen

그렇다면, 다시 〈All this way to meet you〉로 이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금속 체인과 점토를 결합하여 만든 이 조각의 형태는 일종의 이미지로서 사물과 물질을 의인화할 뿐만 아니라 그 둘이 아주 찰나에 상상력을 유도하며 인간 형상을 출현시킴으로써 그 안팎으로 공간을 개방시켜 놓는다. 그것은 이미 사물과 물질에 접촉하여 그것을 자신과 마주하는 형상으로 출현시키기 위해, 공간 속에 무수히 많은 선의 우연적인 흔적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계에서의 결코 붕괴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의 형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중첩된 (물리적이고 추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즉 조각적 시공간을 상상하도록 한다. 그것의 단서는 그의 스튜디오 빈 벽에 연필로 그려 놓은 미완의 드로잉에서 흐릿하게 찾을 수 있었다.



[1]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 p. 11, 16.
[2]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김홍기 옮김,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길, 2012(2020개정판), p. 15.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