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윤은 조각 매체에
대한 해체적 접근을 통해 일상의 비기능적 사물과 건축 자재를 결합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해 왔다. 도어
스토퍼, 자물쇠, 바퀴, 카펫
등 기능이 제거된 채 재배열된 오브제들은 스테인리스 파이프, 시멘트,
스티로폼, 실리콘, 레진 등과 결합하면서 익숙한
물질에 낯선 형식을 부여한다.
초기작 Retirement(2018), On My Knees(2019)
등은 이질적인 재료 간의 물리적 접촉과 충돌을 통해, 억압된 신체와 도시 구조물의 관계를
드러내며 조각을 단순한 형태가 아닌 장면으로 확장시켰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You Again》(os, 2019)과 《울며 수영하기》(송은아트큐브, 2020)에서 본격적인 내러티브 구조로 발전한다. 작가는 실리콘, 클레이, 철망, 수경, 자물쇠, 도어
스토퍼 등을 활용해 물성과 의미가 이중적으로 작동하는 오브제들을 구성했다.
예컨대 Cooling my heels 4, 5와 On my way
1,2는 본래 기능이 제거된 사물들 -자전거
없이 자전거 자물쇠만 달린 조각이나 도어 스토퍼를 달아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지 않는 형태의 조각 - 로
전시되어 고립감과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송은아트큐브 개인전
대표작 〈울며 수영하기〉(2020)는 감정의 유출과 억제를 재료의 투명성과 밀도를 통해 감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이처럼
그의 조각은 물질 간 접합 방식, 재료의 촉각성, 무게 중심의
배치 등에서 조각의 조건 자체를 재정의한다.
2021년
단체전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구조물과 신체가 충돌하는 양상이 반전된다. 예컨대 Gently holding you(2021)에서는 알루미늄 구조물이 외부의 억압
장치라기보다는 조각의 일부인 것처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는 억압에 대한 수동적 저항을 넘어, 주체가 시스템에 자의적으로 결합하거나 공존하는 형태를 실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작 Dancing Spiral 2, 3(2023), Feeling you
and Feeling me(2023) 등에서는 재료 간의 물리적 긴장과 조각의 촉각성, 생성성이 더욱 강조된다. 실리콘과 레진, 쇠파이프가 유기적으로 휘감기는 구조는 생물체를 연상시키며, 성별이나
종을 식별할 수 없는 모호한 형상을 통해 오늘날 인간 정체성과 생명에 대한 재인식을 촉진한다. 이처럼
현정윤의 최근 조각은 정지된 오브제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