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가는 저 사람이야 잡아!”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영하 15 도의 추위를 가르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유쾌하게 흐르던 차 안의 훈훈한 공기를 일순간 갈라 버렸다. 창밖을 보니 어두운 밤 속에 켜진 희뿌연 가로등 사이를 비집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하얀 입김을 뿜어가며 잰 걸음으로 제 갈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추격전처럼 김태동은 이 그림자가 향하고 있는 방향의 도로를 휙 앞질러 가더니 격하게 핸들을 꺾고 마침내 차를 세웠다.

차의 움직임에 따라 덩달아 몸이 앞으로 갑자기 덜컹하고 기울었다 새벽 1시 다급히 카메라를 들고 뛰어간 그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잔뜩 경계를 하느라 몸을 더 작게 경직시킨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작가의 간곡한 촬영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박에 이를 거부하고 총총히 제가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고 왜 이 한밤에 토성 근처를 걸어가고 있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짧게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결국 한 고등학생이 촬영에 동의하였다. 칼날처럼 차가운 냉기 속에서 그는 작가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자세를 참을성 있게 취해 주었고 열악한 인공조명,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바로 전송된 노트북의 데이터를 통해 마침내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갔다.

한밤의 도시 거대한 인공 구조물 속의 기묘한 상황 속에 놓인 작가와 소년은 불과 5분전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이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순간 찰칵이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길고 불안한 그림자들 텅 빈 적막함 속에서 갑자기 공통의 목표를 가진 열정적이고 친밀한 예술적 동지가 되었다.

순간 〈Day Break〉는 어쩌면 그 그녀의 일상에 대한 일종의 중단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약간 흐른 뒤 목적을 채운 작가는 잡았던 사람을 놓아주고 소년은 이제 이미지로만 존재하게 되는 미지의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소년은 다시 제 갈 길을 나섰다.

이처럼 도시의 어느 공간에서 낯선 타인을 만나 만들어 낸 순간의 초상이 바로 〈Day Break〉 시리즈이다. 작가는 타인이 가장 경계하는 시점과 공간에서 말을 걸고 그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남기고 있지만 정작 그는 그들에게 정작 아무 말도 걸지 않고 있다.

이는 『타인에게 말 걸기』 은희경의 한 소절처럼 서로가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최소한의 신뢰있는 관계 맺기도 형성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의 작품 전체를 감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로 표출된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초상사진 작업을 위해 많은 인터뷰와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기록하던 기존의 태도와는 매우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초상사진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프레임 안에 인물들을 오브제처럼 자리 잡게 한 후 학생 아줌마 군인 레즈비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개인을 묘사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각인하는 기호적 수단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정의에 동의한다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이들의 모습이 비록 그 개인에 대한 심도 깊은 정보가 없다고 하더라도 낯선 얼굴에 드러난 표정 그들이 입은 옷과 매무새 심지어 담벼락에 기대앉은 모습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이들이 번잡한 소음과 화려한 불빛이 점멸된 거대한 박물관 같은 도시의 텅 빈 공간에서 삶의 맥락이 거세된 하나의 피사체로서 존재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좀더 객관화된 정보를 찾게 되는 것이고 또 동시에 모순적으로 개연성 없는 상상력으로 빈 맥락을 채우려고 하게 된다.

또한 열정적으로 서로 마주보지만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끝내 밝혀지지 않은 작가와 인물들의 태도에서 포착된 작품 속의 분위기는 사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계 지향을 표식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브레이크는 작가와 작품 속 인물 보고 있는 우리들 각각에게 다양한 의미와 해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