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상과 믿음
《불
피우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보자. 서재웅은 직접 망치와 도구로 제작한 조각들을 공간에 ‘세워두었다’. 조각들은 마치 전시장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서로를 마주하거나 거리를 두고 공존하고 있다. 각각 반인반자연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서재웅의 신(神)은 인간이 이해 가능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있다. 번개를 불러일으키는 〈벼락신〉은 얇은 나무로 균형을 잡고 있는, 빨간
눈동자를 단 구조물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여섯 명(개)의 존재에게 붙여준 이름은 〈화석을 든 손〉, 〈대장장이〉, 〈벼락신〉, 〈소〉, 〈말〉, 〈불〉이다. 그리고 주홍빛 불덩이를 그린 그림 〈불〉이 있다. 서재웅이 제작하고 불러낸 여섯의 존재는 동시대 기후 위기를 이해하고 이를 타계하기 위해, 작가가 ‘세계를 (미술로서)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근래 아시아의 옛 그림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작업 안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모티브, 작가가 수집한 나무 재료는 모두 과거와 관계 맺는다. 전시장의 〈대장장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을 모티브로 했다. 〈벼락신〉은 산업 혁명 이전의 전기를 의미하는 “번개, 뇌신, 벼락신”이다.² 전시된 작업 사이를 거닐며 불과 석탄, 재료와 가공, 만들기와 순환, 내년의
운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작가는
동시대 기후 위기를 ‘바라보고’, 대상화하는 데에서 나아간다. 그는 기후 위기의 역사를 탐구하고 그 안으로 걸어들어 간다. 작가는
오늘날 기후 위기를 발생시킨 온실 가스 농도 증가의 문제를 산업 혁명 시기에 채굴되어 태워진 ‘석탄’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후 위기를 초래한 온실가스가 배출된 원인으로
제조, 전기, 가축, 이동을
자기 식대로 뽑는다. 책에 쓰인 여러 연구들을 자기의 감각과 기운에 따라 소화하고 해석한 것이다. 제조, 전기, 가축, 이동의 형상을 현재가 아닌 과거, 특히 산업 혁명 이전의 상황에
대입시킨 작가는 이제 이 생각과 바람을 만들기로 이어간다. 전시장에서 보이는 이 조각들의 부분 재료(나무, 때로는 조롱박, 때로는
흑연, 때로는 붓) 등을 이어 붙이고 연결하고 그린다. 그렇게 특정한 세계 안에서 튀어나온 듯한 형상으로 만들었다. 즉
작가 서재웅은 이야기를 짓고 과거를 향해 시뮬레이션 한다. 기후 위기의 역사 안에 주체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조각을 구현했다.
작가는 “불은 문명을 상징한다. 석탄을 불태움으로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작가는 대장장이(제조), 벼락신(전기), 소(사육과 재배), 말(이동)이 ‘화석을 든 손'을
만나 불이 일어나는 상상을 한다. 이 상상은 믿음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향해 목표와 무관하게 천천히 움직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규칙적으로 인왕산 주변을 달린다. 버려진 나무를 주어오고, 오랜 시간 작업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음양오행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결과를 말뚝 하나로 딱 박아주지는 않는다. 결정은 순환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꽤 오랜 시간 작가 서재웅이 나이와 마음이 어린 사람들의 그림을 돕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듯 하지만, 어딘가 빠르다. 아니 빠르다기보다는 과정과 결과를 ‘수평적으로’ ‘연동’ 시킨다. 버릴
것이 없다. 버려진 것들이 다시 사람이 된다. 예를 들면
고양이가 사람보다 크다. 나무가 사람을 덮친다. 불이 물을
차갑게 한다.
전시장에
있는 서재웅의 채색화, 작은 조각 등은 모두 ‘생각 그림’이자 ‘생각 조각’이다. 그 중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작가는 오행 중 하나인 ‘수’를 주제로 네 점의 그림을 그렸다. ‘수’를 ‘쉰다, 잔다'의 의미로 해석한 작가는 휴식, 공상, 몽롱, 수면이라는
네 점의 그림으로 그의 생각을 남겼다. 전시장에 있는 파란 색 〈수면〉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우주의
모습과 음양오행론을 연결시킨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애니미즘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던 중, 인왕산의 산신령을 생각하며 만든 작업입니다.
세상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 니미즘의 세계관은 산업 혁명 이후 세계관과 차이를 보입니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관은 인간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비인간을 도구적 존재로 나눕니다. 애니미즘의 세계관은 인간과 비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 산업 혁명 이후 세계관이 만든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서재웅은
이 전시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이렇게 썼다. 그가 나무를 재료로 가장 처음 만든 조각인 〈산신할머니와
맷돼지〉에 관한 생각이다. “비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된다는 그의 생각은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눈앞에 이렇게 나타나 있다.
¹
이 제목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며 읽은 책 중 하나의 제목이다.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쓴 책이다. 작가는 내게 이렇게 책을 소개해 주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어릴적 경험한 빙하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경험한 빙하와 관련된 이야기를 서술하며 달라지고 있는 빙하의 모습을 통해 3세대의 체험으로 기후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²
글 안에 별도의 표기 없이 등장한 따옴표(직접 인용)은 작가와의
이메일 인터뷰(2022.11.15 - 11.22)에서 서재웅 작가가 쓴 글에서 착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