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토이리퍼블릭, 2015.8.7.─8.26.)는 맥도날드를 관둔 후 만든 전시다. 신민은
아이스크림을 건네면서 아이스크림에 깔린 형상, 목이 잘린 형상, 근무에
지친 몸을 이끌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지쳐서 넋이 나간 형상, 텅 빈 눈에 옅게 깔린 분노를 머금고
계산대 앞에 있는 형상을 선보였다. 그는 여기서 맥도날드를 그만두었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다. 자신을 대체할 노동자는 넘쳐나고, 자신은 또 다른 형식의 노동자가
되어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함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아래 서비스직 노동자는 언제나 ‘패자’일 수밖에 없다.6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자신의 분노 대상이 결코 맥도날드 하나만이 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노동에서
얻은 분노가 단순히 노동 현장만이 아닌 복수의 엉켜있는 사회에서 발현된 것임을 인지한다.
이후
작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신자유주의 사회 아래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낸 기록을 돌아보며 자신의 분노의 원인이 어디서부터였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형상화할 수 있는지 천천히 짚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전쟁이라는 상황에 ‘성 노동’의 이름으로 희생됐던 여성의 인권은 여성이기에 겪었던 비인도적
폭력에 주목한다. 그는 이 무자비한 성폭력에 분노를 표하며 〈Basketball
Standards〉(2016)라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작가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게 형상화한 신체에 농구 백보드에 목을 집어넣은 10명의 퍼포머가 움직이며
상연하는 몸짓과 퍼포먼스가 가진 선형적인 서사 형식에 주목한다. 협업자 김주현의 말처럼, 작가는 “퍼포먼스가 각자의 위치에 선 다양한 사람들의 ‘차이의 담론들’을 형성하기에 적합한 장르라는 것에 착안”하여 강요받은 몸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서로 다른 몸으로서 해체되고 또 다르게 재구성되는 흐름을 조직했다.7 이는 조각과는 다르게 공간의 쓰임에서 오는 유연한 시간이라는 무한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으리라 짐작한다. 종이 소재로 형상화했던 조각 형상에서 점차 자신의 ‘몸’을 소재로 이용하며,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해적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신노동 시리즈─VOW 라디오〉(2021) 그리고
〈Invisible Semi: 인비져블세미〉(2022)에서는
작가 또한 퍼포머로서 참여, 자신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SNS 집필에서는
자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8 이는 그가 처음 선택했던 조각의 특성인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비틀어
골격이 크고 눈빛이 센 형상이 어디든 침투할 수 있도록 “삐라 제작자의 마음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음을 보여준다.9 이것은 내게 작가가 주체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 조각 형상에서의 연장선으로서 공간에 정박하지 않아도 되기에 시간의 유연성이 허락되는 ‘몸’으로 확장해 나가는 흐름의 전환으로 읽히며, 그가 사회와의 연대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과도 같이 더없이 긍정적인 행동으로 느껴진다. 세월호 참사부터
미투 운동을 시작하게 한 동시대 사건들이 잇달아 맞물렸던 2010년대 중후반의 기억은 작가에게 쉬이
지워지지 않아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분노를
동력으로 미술을 한다는 건
이
기억은 지금까지도 물음표로 남겨진 시간이며 그가 질문을 던지고 소리 내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가 작업하는 이유인 분노가 점차 선명해질수록 그는 궁극적으로 미술을 하는 의미를 잃어갔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작품으로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현실과 닿을수록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다정하지 않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외면, 길항, 동일시…… 당사자가 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쳐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은 보이지만 내 경험은 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10 즉 당사자성이 짙어질수록 작업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이지만 자신조차도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숱한 자기검열과 깊은 감정의
골은 반드시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민은 씩씩하게 “상상력이 발휘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보다는 실제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왔다.”고 말하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분노를 “추상화하지 않고, 삭제하지 않으려 하며” ‘리얼리즘’ 미술의 본유적 상황을 전면화한다.11 미술에서 리얼리즘은 대체로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실적 형상을 담고” 있으나 “눈에 보이는 대로 옮겨놓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 개념으로 파악된다.12 작가가 당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리얼리즘에는 그의 주관적 인식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하니 신민은
“누구든지 자신의 작업을 보고 웃고 떠들고 공감하고 신나길 바란”다.13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체득해 온 것뿐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형상의 두 눈으로 타자에게 세상이 보이게끔 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지금의 그는 세상에 침투하는 방식으로 덩치 큰 체구의 형상이 정박해 있는 전시장만이 더 이상
답이 아님을 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은 운영 시간이라는 제약상 사실 진정한 ‘모두’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민은
안다. 미술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임을. 그럼에도 그는
미술을 계속한다. 미는 윤리를 견인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어도, ‘자기 재현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회적, 윤리적 작업을 지속할 때 창작자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무렵 내가 신민 작가의 작업을 흥미롭게 여겼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신민의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를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연대한다〉(2022)의 뒷모습과 〈Invisible Semi: 인비져블세미〉의
멜로디를 떠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체구가 큰 여성 토르소에 요새는 보기 드문
머리망이지만 ‘위생상의 이유’와 ‘통상적인 심미안적 이유’로 착용할 수밖에 없는 쪽을 진 머리 스타일을 한 형상. 앙다문 입과
결의에 찬 두 눈은 익살스러움을 넘어 어딘가 결연에 찬 눈빛. 몸이 있지만 결국 눈빛이 전부인 얼굴. 그리고 노래에 맞춰 서비스직 노동자의 규격화된 행위를 반복하는 율동. 작업을
보는 내내 이 시대의 노동자가 누구를 향해 저항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탐하는 사슬고리를 끊고 일어나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일을 상상하는 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순간의 공감은 투쟁과 연대라는 아릿하고도 덧없는 행위가 끌어올린 에너지였을 테다. 이 힘은 우리가 그의
작업을 보는 이유임에 충분하다. 이 충분함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작가에게 닿아 그가 작업을 계속 발표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이 되리라 기대한다.
IMA 크리틱스 소개
IMA 크리틱스는 일민미술관의 시각문화 비평 연구 프로젝트다. 비평, 글쓰기, 편집
전문가를 초빙하여 비평 쓰기에 대한 원론을 되짚고 담론이 활용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익히며, 유의미한
비평의 결과물을 생산한다. 2023년에는 6인의 IMA 크리틱스 연구자 김해수, 박현, 윤태균, 이희준, 임현영, 최재윤이 활동한다.
박현
박현은
예술을 통해 개인의 서사가 동시대 사회와 닿으며 촉발되는 장면의 전환에 관심을 갖고, 이를 글과 기획으로
풀어내고 있다.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공부했으며 동대학원에서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생태 미학적 가능성에 대한 논문으로 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1. 박현, 신민에게 보낸
이메일, 2023년 9월
19일.
2. 나는 신민에게 자기 재현적 작업을 할 때 초기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가장 경계하였는지 물었다. 신민은 이에 답하며 ‘편지 쓰기’를 작업에 적용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편지는 제 마음을
적은 종이의 목적지, 마음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 목적지가
저를 향해 있으면 편지는 도착할 수 없습니다. 편지는 목적지가 다른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저만 혼자 계속 소유하고 싶은 생각과 그림들을 봉투에 넣어 미련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 보내는 것. 이렇게 편지처럼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행동이
작업에도 반드시 적용되게 하려 노력합니다.” 같은 곳.
3. 《딸기코의 딸들》(플레이스막, 2011.10.18.─10.30.) 전시 서문. 2011. URL:
https://neolook.com/archives/20111018h.
4. “솔직히 이야기 하겠다. 이번
전시, 앞으로의 작업은 남에게 팔기 용이하도록 정돈된 캔버스나 잘 망가지지 않고 기반이 탄탄한 조형재료들을
이용하여 집에 꾸미기에 손색이 없고 사면 살수록 더 사고 싶은 그림과 조형작업을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유화물감과 하얀 캔버스를 샀다. 하지만
나는 그 재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연필을 쥔 손을 들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엄지손톱만한 똥을
찔끔 싸는 것과 똑같은 그림을
그려댈
뿐이었다.” 같은 글.
5. 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신정우 옮김(서울:
리시올, 2020), 47 참조.
6. 서비스직 노동자를 '패자'라 칭하는 것은 맥락상의 이유이다. 에이지의 논지 대로, 신자유주의는 사회 다윈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전제에서 ‘약자를 ‘패자’로 간주하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약자는 곧 ‘생존 경쟁’의
패자라는 것이며, 자기 책임론이 약자를 향하는 순간 곧 패자가 된다.
나는 그의 전제와 논지에 동의하기에 본 글에서 서비스직 노동자를 일부러 ‘패자’라 칭한다. 같은 책, 123 참조.
7. 김주현, 「끝나지
않은 전쟁, 백보드는 없다: 신민 - Basketball Standard」, 2016. URL:
https://cargocollective.com/daughternose/2016-2.
8. 〈Invisible Semi:
인비져블세미〉(2022)는 신민 개인전인 《세미》(더그레잇컬렉션, 2022.9.3.─10.15.)의 전시 연계 퍼포먼스이다.
9. 박현, 신민에게 보낸
이메일, 2023년 9월
19일.
10.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서울: 교양인, 2020), 116.
11.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 난지 오픈소스스튜디오 토크 프로그램 5. 신민’, 2021년 4월 22일. URL: https://www.youtube.com/watch?v=N6Tgr2Vo6Jo.
12. 김재원. 「‘리얼리즘’ 미술」.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2호(2011): 72.
13. 박현, 신민에게 보낸
이메일, 2023년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