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視線
어떻게 볼 것인가. 작업노트에는 진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준과 가치가 담겨있다. 지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을까.
- 지니는 동물보호소에서 4개월, 구조단체에서 4개월을 지내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랜 시간 입양되지 않았다. 지니는 경상북도 울진, 경기도 남양주, 인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작년 여름 나와 만났고, 현재 뉴욕 주 브루클린에서 지내고 있다. 함께 보호되고 있던 다른 삽살개들보다
지니의 입양이 늦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인간과 사물에 적용되고 있는 선호 기준과 가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이가 많고, 크고 뚱뚱하며, 임신과
유산을 했고, 젖이 늘어졌으며, 병에 걸린 상태로, 혈통 인증이 안된 삽살개 지니는 입양 문의조차 없었다. 원하지 않는 조건을
가진 존재로, 여러 장소를 거쳐 이주한 땅에서 삽살개 지니는 이민자의 현실과 비슷한 장면들을 마주한다. 들어본 적도 없고 발음하기 어려운 낯선 이름, 외부에서 온 존재. 사회가 부여하는 기준과 기대, 그것을 빗겨나가는 존재가 대면하는 상황들을 지니를
통해 다시 경험한다.
- 작업실에서 지니는 특정 사물들(작업)은 넘어뜨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작업이 아닌 사물들은 밟거나
그 위에 올라가 앉는다. 사물이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작동하는 방식이 있는가, 지니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언어나 논리,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물의
규약, 시각세계의 규약이 존재하는가.
- 미국에서 사용하는 길이의 측정 단위, 인치와
피트는 인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마디(인치), 발 크기(피트),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큐빗), 몸 중심에서 손가락까지의 길이(야드) 등 몸을 기준으로 한 단위는 많다. 인간의
몸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한 인간의 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길어지고 늘어나며 얇아지거나 넓어지고 또
작아진다.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사용하기에는 꽤나 작위적인 단위가 아닌가 싶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마음이
이끌리기도 한다.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공동으로 정한, 그러나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 사물의 높이와 길이를 정할 때, 만드는
사람의 몸과 지니의 몸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주머니까지의 높이, 섰을
때 턱까지의 높이, 앞발과 뒷발을 모두 쭉 늘어뜨렸을 때의 길이, 머리를
치켜들고 섰을 때의 높이로 측정된 기준을 따랐다. 또한 전시된 사물은 모두 테이블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테이블의 구조는 다리와 무릎, 발 등 신체 부위의 명칭으로 불린다. 각각의 사물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 또는 동물이나 사람이 통과할 수 없게 가로막는 구조물, 제한된 신장을 가진 몸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 이렇게 몸과의 관계가 다
다르다.
- 〈다리〉, 〈서기〉, 〈가락〉은 낮음-수직-높음, 나무-쇠-흙,
조각-주조·조합-소조로
구분되는 각기 다른 조형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리〉에는 사실
구리 파이프로 된 다리와 도자로 만든 조각이 있다. 또한 길쭉한 나무 중 하나에는 나무가 아닌, 건조한 무광 회색빛 점토로 만든 사물이 솟아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낮은 사물에서
유일하게 솟아오른, 직립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기〉에는 격자가 아닌
그물과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이 있다. 〈가락〉의 테두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에 도자가 아닌 것이 하나
있다. 아주 얕은 반달 모양의 나무인데, 곡면은 삼각형의 모양이 뾰족하게
깎여나가 마치 톱니처럼 보인다.
함께 생활하며 작가는 지니의 시선으로 주변 공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리에 갇힌 지니의 입장에서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는 어떻게 인식될까. 이
구조물은 인간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제한하고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울타리는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행동과 심리, 감각을
제약하고 통제한다. 몸의 접촉과 통행이 가능한 구조물부터 시선과 대화만 오갈 수 있는 장막, 소리와 시선마저 차단되어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거대한 차단 장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관계가 이렇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장막으로 구분, 분리된다. 변화하는
몸과 생각처럼 안과 밖의 시선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없는가.
전시의 동선은 여러 층위의 높이와 경계를 설정하여,
시선의 잣대를 물리적으로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연출되었다. 희뿌연 막으로 둘러싸여 첫눈에 파악할
수 없는 전시장 구조, 막 너머의 어렴풋한 풍경을 주시하며 완만한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장막의 높이가 주는 위압감은 완화되고 올라온 높이에 대한 감각은 흐트러진다. 높은
단상부터 전시장 바닥에 도달하기까지 관객은 자신의 움직임으로 3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1인칭 주인공의 시점 등 다양한 감상의 시점을 결정한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안에서 밖을
보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누가
안과 밖을 결정하는가. 나는 세상과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