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혜리의 신작 설치 작업 〈니로〉를 위해 시작된 퍼포먼스가 진행되자, 운하 프로젝트(Canal Projects) 아래층 갤러리에는 한국어와 영어
단어, 문장들의 파편들이 흩어지듯 채워진다: 스바루(Subaru), 니로, Eat Clean, Never run it cold,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노혜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이 단어들을 하나씩 낭독하며, 의도치 않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발화는 작가가 작고한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미국 횡단 로드트립의 기억,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서 떠오른 기억의 파편처럼 나타난다. 그것은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의 잔향이자, 스쳐 지나간 생각, 관찰, 그리고 만남의 흔적들이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노혜리는 실물 크기의 기아 니로 자동차의 목재 골조 주변을
천천히 움직인다. 이 구조물은 작가의 아버지가 로드트립에서 실제로 운전했던 자동차와 같은 모델이다. 자동차의 앞에서 뒤까지 강철, 도자, 체인, 주석, 종이 마셰로 만든 여러 오브제가 부착되어 있다. 다루기 쉽지 않은 이 설치는 곧 세 부분으로 분해되고, 작가는 각각의 구조물을
끌고 밀며 전시장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시킨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움직이기 위한 작가의 고군분투는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그 기억이 지닌 무게와 파편성을 은근하게 환기시킨다.
노출된 나사와 단단한 목재 막대들은 이동 가능하지만 불안정하게 조립된 자동차
구조와 강한 대비를 이룬다. 작가가 “묶여 있는 스크랩(bundled scrap)”이라고 표현한 이 골조는 서로 다른 파편들로 이어 붙여진 삶을 반영한다. 친밀함과 거리감 사이의 순간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유대, 그리고 이민자의 삶 속에 흩어진 잔여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고, 십대 시절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노혜리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주자의 여정을
체현한다. 그의 작업은 소속감, 문화적 정체성, 기억이라는 감정적 풍경 사이를 오가며 그것들을 연결하고 가로지르는 과정을 탐색한다.
자동차를 마주한 전시장 가장 안쪽 벽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곳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태평양을 건너온 경험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영상이 65분
분량으로 상영된다. 이 다층적인 구성은 노혜리가 2022년 전시 《폴즈》에서
선보였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전시에서 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여덟 명의 이민자를 인터뷰하여 개인적 서사를 IMF 외환위기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미국과 각자의 출신 국가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역사와 교차시켰다. 만약 《폴즈》가 개인적 이야기에서 집단적 서사로 이동하기 시작한 지점을 보여준다면, 〈니로〉는
그 변화가 계속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업에서 노혜리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하나의 공간 안에 모아 놓으며, 관객이 고정된 해석을 넘어 새로운 연결과 가능성을 사유하도록 열려 있는 구조를
만든다.
〈니로〉에서 공간 자체는 이민 경험을 드러내는 강력한 은유로 등장한다. 그것은 물리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을 동시에 품고 있다. 노혜리가 바퀴 달린
집처럼 이동시키는 구조물이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듯, 그리고 한때 작가와 그의 아버지를 태우고 미국을 횡단했던
기아 니로처럼, 이주는 흔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직선적 여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두 개의 집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엮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들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노혜리는 이러한 이동이 지닌 유동적이고 다차원적인 성격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니로〉에서 공간 자체는 이민 경험을 드러내는 강력한 은유로 등장하며, 물리적 차원과 감정적 차원을 동시에 담아낸다.”
〈니로〉의 공간은 층위적이고 복잡하며, 때로는
불편하다. 그것은 목재 막대 사이에 보이는 틈에서, 뒤엉킨 단어들 사이의
멈춤에서—다언어적 삶이 만들어낸 말하기의 리듬처럼—, 그리고 현재의
순간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틈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범주화에 저항하는 장소가
된다. 그것은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 ‘재현의 공간(representational space)’—개인적 의미, 기억, 부재, 그리고 문화적 생존의 회복력이 축적된 장소—으로
변모한다. 노혜리는 관객에게 이민의 경험 속으로 들어와 관찰과 몸짓, 상상력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연결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니로〉는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인식이 교차하는
능동적인 공간이 되며, 아시아계 미국인 이민자들이 과거의 정체성과 새로운 문화적 환경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해야
하는 현실을 비춘다.
퍼포먼스가 끝날 무렵 노혜리는 조용히 말한다. “그는
어제 도착했나요?” 그리고 부드러운 어둑한 주황색 가죽 오브제를 아버지의 흔적을 붙잡듯 들어 올리며 낮게
속삭인다. “그는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 마지막 몸짓을 통해 노혜리는
출발과 도착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는 순환적 여정을 완성한다. 그것은 곧 이주가 지닌 영속적인 전이 상태를
몸으로 드러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