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12일부터 평창동의 갤러리2에서 손동현의 개인전 《Hep》이 4월 18일까지 진행된다.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부터 작가의 전시가 시작된다. 지속적으로 한국화의 확장을 모색해온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전통과 현대 예술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전통 소재가 지닌 형태만을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도 새롭게 조명했다.
 
왼편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눈길을 끈 작품은 〈만월(滿月)〉이었다. 보자마자 혹시 작가가 책가도를 조형물로 만들어 현대적으로 작업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칸칸마다 배치된 오브제들은 전통적인 산수화 그림의 일부를 조형적으로 다양하게 구체화하고 있었다. 레고, 레진, 물감, 붓 등 쓰임이 다한 사물과 실용성이 떨어지는 물체들이 집합되어 있었다. 전시 서문에 의하면 권위와 과시를 보여주는 다보격(多寶格)은 전통과 대중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다. 또한, 장 위에 놓인 물체들은 기존의 물질성 외에 작가가 새로 부여하는 특성이 조합되면서 과거의 형태를 유지하되 현재의 질서를 보여준다.


손동현, 〈만월〉, 2025-2026, 목재 진열장 안에 사물, 회화, 드로잉, 영상, 조명으로 구성된 혼합매체 설치, 199.5 x 200.5 x 40.5 cm © 손동현

전통적인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손동현 작가는 평면에서 벗어나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바탕체처럼 활용했다. 창문에 붙인 구름 모양의 시트지가 햇빛이 투과되면서 전시장 바닥에 채색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 이외의 형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손동현, 〈구름〉, 2026, 필름지 설치, 가변크기 © 손동현

오로지 구름과 창틀 그림자가 전부이다. 구름은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있지만 주변부에 속하며 창틀은 어디에나 있지만 지나치는 건축 요소이다. 하지만 손동현 작가는 이 둘을 중심부로 끌고 온다. 작품의 주제로 흔히 쓰이지 않는 소재와 공간의 특성을 살린 〈구름〉은 바닥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천천히 벽면으로 이동한다. 이와 유사하게 주변부를 주목하여 공간을 소재로 삼은 또다른 작품이 옆 전시실에 있었다.
 
〈이야기〉는 갤러리2에서 연 과거 전시들을 소환한다. 하나의 전시가 끝나면 다음 전시를 위해 그들이 사용한 흔적을 지우고 나가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워졌던 흔적들을 선별하여 노출했다. 깔끔해야 할 벽면에 검은 스프레이를 뿌려서 그 자리에 걸렸던 작품의 크기, 모양과 위치를 보여준다. 각 벽면에 응축된 시간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 〈이야기〉는 비연속적인 요소들의 조합과 이로 인해 생기는 시각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손동현, 〈이야기〉, 2026, 벽면에 먹, 가변크기 © 손동현

지속적으로 매체와 장르의 새로움을 추구해 온 손동현 작가는 '헵'이라고 읽히는 전시에서 인지적 불협화음을 보여준다. 전시명부터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며 연속성이 다소 떨어지는 작품들을 배치했다. 다보격 위에 올려진 수많은 오브제는 뚜렷한 연관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각 기물이 주는 암시와 관람객의 추론 사이에서 다양한 의미가 생성될 가능성을 드러낸다. 〈댄서〉와 〈학〉은 형상의 왜곡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리고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가 왜곡된 형상을 통해 기존 상징을 전복한다.
 
각 작품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하나씩 들여다보면 연관되어 있는 전시였다. 재즈를 연상시키는 불협화음을 한국화 소재로 구현하고 이를 전시장에 둔다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게 한다. 한국 전통 미술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작품과 한국화의 경계와 고유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