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wyo Rhii, Love Your Depot, 2019 © MMCA

작품은 사람이 아니다. 예술 작품은 그 말의 일반적인 의미로 보아도 살아있는 것이라 볼 수 없다. 예술 작품은 비활성의 물질 또한 아니다. 세상의 원재료들은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의미와 일관성을 지닌 무언가로 바뀐다. 이것은 연금술과도 같이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을 사물이나 물질을 변환하여 그 가치를 환기한다.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관객에게 예술로 인식되면, 이는 집합적 문화의 한 자료로서 새로운 지위를 획득한다. 개별 작품에는 보존을 위한 적절한 보살핌이 요청되는데, 사회가 이에 필요한 조건을 기꺼이 제공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특정 작품이 가지는 ‘예술’로서의 정체성은 작가는 물론 무수한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겸손하지만 필연적으로 인간 표현의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서 작품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책임이 발생하고 이는 작가 개인에서 점차 사회 전체로 이관되고 공유된다. 예술 작품은 이렇게 한 공동체의 유산(heritage)이 되고, 이는 구성원간의 가치와 상호존중을 협의하는 길이 된다. 또한 이 유산은 개인은 누구인지, 무엇이고 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상식을 형성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인류의 문화 공동체는 문화와 역사의 한 시점에서 생산된 예술 작품과 또 다른 시점에서 나온 예술 작품들을 통과하면서 스스로 무엇인지 정의하는 방법을 배운다. 실제로 예술 작품은 공동체와 그 근원을 정의하고 공동의 목적지를 밝혀 주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예술 작품은 인류 문화의 유산이 되는 긴 여정을 떠날 것이고, 각자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대개 그 시작은 매우 위태롭다. 이주요의 프로젝트는 바로 이 초기 단계에서 시작한다.

이주요의 〈Love Your Depot〉는 예술과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제안이자 프로토타입이며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작품을 돌보는 방법이다. 작가로서 이주요는 예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와 감정 노동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또한 교육자로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변형하는 예술의 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인력과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남과 다른 것을 배척하고, 정형에서 위배되는 것들을 몰아내려는 시장 경제와 도시 개발에의 강한 요구에 저항하는 동료작가들의 투쟁을 목도하였다. 효율성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예술 작품이 공동체의 이익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주고 예술가들에게 실존적인 어려움을 주었다. 예술 시장에 부적합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부적합한 시장이 만나면 서로의 가치를 폄하 하고 반목하며 투쟁하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가치들은 반드시 경쟁하거나 서로 관련되지 않고도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가치와 돌봄의 수평적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호 공존은 매우 실용적인 선택이자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이다. 이주요는 〈Love Your Depot〉에서 필자가 아는 한, 상호 공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응을 제안하였다.

많은 이들이 근래의 유산을 보존할 사회적 책임을 위임 받은 제도가 미술관이고, 이곳에서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술관은 시장 경제 법칙의 예외가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많은 미술관들은 외부 기업의 성패에 예산이 좌우되는 사적 주체이다. 시(市) 또는 주(洲)의 세금을 지원받아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술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시장의 우위에 구조적으로 압도당했고, 예술 시장의 기호를 따르거나 다수의 부유한 계층의 관심을 끌도록 창작된 작품을 수집하면서 시장의 언어와 가치 관념을 받아들였다. 이제 예술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일한 사회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제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일부 미술관들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Love Your Depot〉가 요구한 것 같이 대안적이고 수평적 체계를 제공하는 장소가 절실해졌다.

우리는 〈Love Your Depot〉의 프로토타입이 미술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곳, 그러니까 외부의 상업적인 요구와 분명히 구별된 잠재력을 가진 공간에 〈Love Your Depot〉가 있다. 이들은 미술관에 이미 존재하는 규칙과 규정, 그것이 야기하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이곳에 집을 지으려고 한다. 이 시도는 미술관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와 미술관이 실제로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을 제작하는데 영감을 주고,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돌보고 지원하며, 보존하는 힘과 능력을 가진 곳으로써 미술관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미술관이 구체적이고 비(非)이데올로기적인 경험을 공유한 관객들과 21세기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미술관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자원 뿐 아니라 사회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데 〈Love Your Depot〉는 바로 이러한 조건을 구체화한 제안이다. 미술관의 이상은 사람들의 창의적 표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포용하여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주요는 지금 당장의 생존 경제학을 넘어 유효하고 가치 있는 사고를 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으며 〈Love Your Depot〉를 통해 미술관 제도에 새롭게 필요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전시 이후 어디론가 보내지고 때로 폐기되기도 하는 미술 작품과 전시의 물리적 과정은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주요는 이번 설치작업에서 전시 이후 작품의 모습과 그것을 돌보기 위한 과정들을 관객의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그는 여러 종류의 보관과 진열을 위한 장치를 전시하고 때로 가능한 높게, 최대한 많이 작품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설치 방식으로 작가가 대면하고 있는 짐/부담(burden)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준다. 작품의 보관 장치들은 야심차게 조각의 외양을 취하면서 미술관의 통상적인 구분법을 허물고 예술 작품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같은 의문을 제기했던 앞선 예술가들이 있음에도 우리가 〈Love Your Depot〉에 주목하는 것은 이 전시가 보관의 형식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고, 보관하는 동안 작품의 삶이 확장 될 수 있는 실용적 방법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Love Your Depot〉에서 팀디포(TeamDepot)는 전시장 안에 작업공간을 짓고 각자의 채널을 운영한다. 창고 안에 보관된 개별 작품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팀디포의 젊은 창작자들은 친밀하고 설득력 있는 중개자이다. 이들은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활동하며 창고에 보관된 작품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같이 사적이며 주관적인 형식의 작품 해석 앞에서 미술관은 더 ‘중립적’인 곳이고 제도적인 담론을 위한 장소라는 스스로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대면하게 된다. 〈Love Your Depot〉가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열린 수장 공간에서 한 작품이 다른 작품 옆에 임의적으로 배치되고 그 사이의 연결이 형식이 되는 공동의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미술관 큐레이터의 역할과 유사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서사가 바로 이 현장에서, 작품을 보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앞서 보관 장치와 작품의 해석 방식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주요는 전시 중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서도 미술관 관행의 한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게 하고, 예술이 그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촉발하기 위해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미술관과 아카이브는 〈Love Your Depot〉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관심은 예술가가 독립적 개체이자 감정의 주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가는 연약하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잠재적으로 강력하고 중요한 행위자로 제시된다. 이 연약함(또는 불안정함)은 예술가들이 처한 독립적 상태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문화 생산자나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의 밖에 위치하며 어떤 제도적 지원 없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각자의 작품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반면 예술가들은 각자의 독립적 상태 때문에 남과 다른 삶과 인류에 대해 통찰력을 얻어 나간다. 물론 이것도 그들에게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에 한해서 가능할 것이다. 제도적 장치가 없는 이러한 상황은 예술가에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스스로 모든 정신과 감정을 쏟아 부어 만들었을 과도기적 작업들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Love Your Depot〉는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시간을 달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이것이 예술가들이 최선을 다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더 생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까지 작품의 삶을 연장하도록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면서, 이주요는 불안정한 상태에 어떤 위안을 제공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이주요의 제안이 작품의 영구적 보존이 아니라는 점이다.

〈Love Your Depot〉는 스스로를 시간이 제한된 구역으로 제시한다. 그 안에서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작품이 존중 받으며 폐기되도록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려 깊은 폐기는 이주요의 프로젝트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부이다. 따라서 〈Love Your Depot〉는 작가의 작품이 언제 보편적 의미의 예술이 되는가, 또 그것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려하고 성찰하는 동안 작품의 죽음을 유예시키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예술 작품이 만들어진 후 작품이 작가가 바라는 대로 되어가는 사이의 시간을 이해하고 인간이 각자의 유년기를 보살피는 것처럼 작품들을 보호한다. 논의의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예술작품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주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듯 작품을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사려 깊은 태도와 존중감을 환기하며 우리에게 주변의 사물과 사람의 가치를 재고하게 하는 시작점을 제시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