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주석달기
이번 전시는 유독 본문과 주석의 위계가 전복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발표의 대상인 ‘작품’보다 그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정보의 파편들이 더 높은 비율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의 세 번째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Room 3에서 김성환은 자신의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2007)을 재방문해 이를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확장된 설치로 새롭게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추가된 다채로운 기록과 이미지, 영화의 장면과 연표로
구현된 정보는 보충하고 풀이하는 주석의 기능을 수행하며 (한국의) 역사를
비롯해 작가가 구축해 온 작품의 역사와 밀착되어 읽힌다. 김성환은 특히 역사 속에서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광화문의 기록, 2008년에
불탄 숭례문의 이미지, 불과 관련된 작가의 영상 작품과 불타는 장면을 담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희생〉(1986),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의 〈란〉(1985) 등을 발췌해 생성과
소멸, 변화의 과정에서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며 소실되는지 묻는다.
특징적으로 Room 3는
살아남은 기록의 소유와 유통에 관한 사유를 영화적 언어를 통해 확장한다. 예를 들어 〈희생〉과 〈란〉은
모두 감독에 의해 세트장이 불태워졌지만, 동시에 영화로 생성되어 영구히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매체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한편, 전시장 중앙에서는 〈표해록〉의 일환으로
제작되어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관람이 가능한 영화 두 편을 정해진 시간에 상영함으로써 작품의 접근성과 순환성을 간접적으로 다룬다. 스크리닝 작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에도 등장하는 가상의
유튜버 액츄얼리나가 전통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 〈액츄얼리나의 막걸리 만들기〉(2020)는 전통의
원형이 존재한다는 믿음 체계를 의심하며, 오히려 유튜브 형식을 소환한다.
작가는 “늘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석화되기를 반복하는 ‘경계’라는 개념, 그리고 그 오해된 개념 안에 안주하려는 지식이란 것의 재평가를”3 촉발시키듯
영화 매체의 한계를 실험하고, 역사의 현재에 자신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전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적 연출 요소는 어떠한가. 마치 역사의
테두리를 접고, 그 변형된 테두리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듯이 펼쳐져 있다. 미술관의 목재 바닥과 비정형 패턴의 직물 카펫, 합판 좌대를 가로지르며
방을 배회하거나 앉아 머무를 때면, 우리의 몸은 다른 물성과 표면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경계를 자연스럽게
횡단하는 주체가 된다.
장소에 괄호치기
전시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두 방 사이에 괄호 쳐진 Room 2는 유동적인 대상을 향한 작가의 사유와
시선이 가장 뚜렷하게 발현된 곳이다. 텍스트에 새로운 리듬과 층위를 부여하는 괄호 안 공간은 때론 모호하고, 임시적이며, 공동체적인데, 이를
반영하듯 전시장은 〈표해록〉의 세 번째 비디오 설치 〈무제〉를 미완결의 상태로 선보인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단연 건축적 언어이자 실험적인 전시 문법이다.
각기 다른 높낮이와 경사로로 구성된 단, 기능적 역할이 지연된 듯한 기둥, 복도, 계단 등은 직사각 형태의 방을 재구성하고, 관객의 몸은 이러한 구조물들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자신만의 관람 동선을 그린다. 다채로운 이미지와 소리, 글과 말, 움직임과 빛이 채우는 공간 속에서 기록 사진과 작가가 제작한 이미지는 느슨한 연결성만을 가질 뿐이다. 천장의
중앙 부분에 설치되어 피라미드 형상의 천창을 향해 빛을 쏘는 무대 조명, 그리고 바닥 중앙의 개구부를
통하여 연결된 2층 전시장에 드리운 커튼은 마치 두 공간을 무대의 위-아래
또는 앞-뒤로 연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Room 2를
편집실이자 스튜디오로 제안하는 작가는 3월 한 달 동안 본인이 작성한 대본을 토대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호주 및 한국의 창제작자들과 진행하고 이를 기록 촬영할 예정이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제작된
푸티지는 머지않은 미래에 작가가 구상할 ‘새로운’ 작업에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참조 관계에
놓인다. 〈머리는 머리의 부분〉에서 핸드폰 라이브 사진 촬영 기법을 활용해 ‘지금’의 순간을 재정의한
것처럼, 작가는 〈무제〉를 통해 특정 기간에 종속된 전시의 ‘지금’을 재정의하려는 것은 아닐까.
김성환 작가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표해록〉 자료 중에는 롤랑
바르트의 『중립』4에서 발췌한 구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엉켜있는 대상에서 ‘올을 풀어내는(unthread)’ 제스처를 묘사하는 바르트의 글은 이번 전시의 주요한
개념적 비유로 작용했다. 하지만 해당 문구가 수록된 지문의 전과 후를 살펴보면 올을 풀어내는 행위는
사유의 대상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게 아닌, ‘기술(describe)’하는 것이며, 이는 곧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nuances)’를 포착하는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표해록〉을 중심으로 활성화한 사유의 틀(구조)은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끈을 세심하게 풀어내고, 상이해 보이는 대상들 가운데 존재하는 공통점, 그 차이 속 닮음의 뉘앙스를 현재의 시점에서 포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앎’의 순간, 배움의 기록들을 쓰고 읽는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그래서 실험적이며 동시에 실천적이다.
1 김성환 작가 홈페이지 https://sunghwankim.org/study/lessonsinthefall.html
2 박가희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리플릿
서울시립미술관 2024 p.45
3 김성환 「머리는 머리의 부분 작업 이전 2019년 작성된 프로젝트 스테이트먼트」『21GB』 광주비엔날레 2021
4 Roland Barthes, Neutral, trans. Rosalind Krauss and Denis Hollier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