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서울시립미술관, 2024. 12. 19. - 2025. 3. 30.)의 설치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다중 연구 미술

전시명이 낯설다. 어렵기도 하다. 알파벳과 한글이 병기되어 있지만 활자들만 낱개로 도열한 형국이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묵음으로 읽어보려 해도 막상 발음이 연결되지 않는다. 외계인의 언어와 맞닥뜨리면 그럴까 싶게 소통이 막막해진다. 고대 원시 언어를 발견하면 그럴까 싶게 글자가 아니라 미지의 파편들로만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2024. 12. 19. - 2025. 3.30.)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성환은 개인전 제목에 하와이원어와 그것을 음차音借한 한국어를 공통으로 넣었다. 말뜻은 “그는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이라고 한다. 이조차도 모국어로 알아듣기에는 참으로 곤란한 직역인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일까? 작가는 우리에게 뜻밖일 수밖에 없는 그 고유어와 번역어를 품고서 어떤 작업을 한 것이고 어떤 개인전을 만든 것일까?

사실 김성환에게 언어의 다름, 지리환경과 문화의 차이, 오리지널과 변질, 산종과 이식은 언제나 문제적 테제였고 작업의 논쟁적 콘텐츠였다. 그 점에서 내가 전시명을 두고 서두에 언급한 말들에는 이 작가의 이십여 년 작업에 내재한 성질들이 상징어처럼 박혀있다. 독자에게는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의도했다. 즉 대상의 낯섦, 이해의 어려움, 원어와 번역이라는 핵심어에 얹어 그의 미술에 대한 주요 인상을 그려본 것이다. 

김성환은 1975년 서울 생으로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와 MIT에서 건축, 수학, 미술을 전공했다. 그런 학업 이력과 이행적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이 작가는 매체 및 표현법을 다원적으로 구사한다. 그리고 비교 문화적 요소들을 감각적/심미적 형상으로 가시화하는 데 능한 현대미술가다. 그의 작품과 전시가 준학술적quasi-academic 스탠스를 기반으로 비디오, 텍스트, 디자인, 설치, 음악, 퍼포먼스, 조명, 드로잉 등 여러 분야를 횡단하고 조합하는 양태로 나타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김성환은 2000년대 초부터 암스테르담, 베를린, 뉴욕 등 최첨단 컨템포러리 아트가 펼쳐지는 도시들에서 레지던시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유목적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하와이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감상자 일반에게 김성환은 즐기기에 용이한 작가는 아니다. 작품과 전시를 접할 기회가 드물고 작업 자체가 꽤 어려운 주제와 복잡한 제시 방식을 띠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외 미술계 전문가들은 김성환의 작업이 구현하는 미학적 수준, 예술적 독창성에 주목해왔고 중요한 기획에 빈번히 그를 초대해왔다. 예컨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은 2012년 새 갤러리인 더 탱크스The Tanks 개관전(2012)을 김성환 커미션으로 개최했다.1 그리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개인전(2021),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반아베미술관Van Abbemuseum 개인전(2023/2024)2이 이어진 데서 보듯 영향력 있는 미술관들은 김성환의 창작을 꾸준히 부각시켜왔다.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 또한 미술관이 역점을 두고 전개해온 “동시대 한국미술 대표작가 연례전”으로서 이불(2021), 정서영(2022), 구본창(2023)에 이어 김성환이 위촉된 결과다. 이상의 사실은 한 작가를 설명하기 위한 정보적 내용에 가깝다. 하지만 김성환이 그간 해온 작업의 전위적 수준과 실험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적 데이터이자 평판 지표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작가의 미술이 대중에게 친숙한 향유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들이 특정 지역이나 문화 취향을 가로질러 보편성을 추구하는 길에 있음을 유추할 대목이다.


김성환,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 2023 © 서울시립미술관

 뜻밖의 시대, 다른 언어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김성환의 작업 세계와 작가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반응, 유수미술기관과의 예술적 협업과 기획전 참여 성과들이 한 전시 속에 여러 겹으로 포개져 응축된 형태다. 요약이 어렵지만 이 전시의 중심점은 한국 출신 작가 김성환이 ‘하와이’라는 실제 공간을 역사, 정치, 문화, 지리, 인간 삶에 관한 탐사의 공간으로 상정해 수행하는 “다중 연구 미술”이라는 데 있다. 2017년 시작했고 2020년에는 작가가 아예 하와이로 근거지를 옮겨 집중하고 있는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이 그것이다.

김성환은 이 연구 과제를 2021년 광주비엔날레, 2022년 하와이트리엔날레와 같은 해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을 통해 시리즈로 지속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 그 탐구의 국면은 세번째 장章에 다다랐다. 따라서 이번 전시 전체로 보면 신작 비디오 설치 〈무제〉(2024)가 앞선 영상작품 〈머리는머리의 부분〉(2021), 〈By Mary Joe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2023)와 함께 제시되어 연속하며 중층을 이룬다. 흥미롭게도 〈무제〉는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전시장(“Room 2”)에서 편집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져 그때 그곳에 있는 관객이 작업에 연루되는 진행형이자 현장형 작품이 될 것이다.

미술관 2층과 3층에는 스크린과 모니터로 김성환의 〈표해록〉 3부작뿐만 아니라 미조구치 겐지의 1941년 영화 〈겐로쿠 주신구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1985년 작 〈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6년 작 〈희생〉, 크리스 마커의 2000년 작 〈안드레이 아르세네비치의 어떤 하루〉 등이 재생된다. 그리고 아카이브 출처가 있는 복제사진, 출판된 텍스트의 일부, 미시사적 기록물들, 시트지나 아크릴로 디자인된 사인물들이 리좀처럼 ―말하자면 뿌리식물처럼 덩어리지면서 서로 연결되고, 들쭉날쭉하게 웃자라거나 뻗어나간― 공간을 분할하며 배치되어 있다.

김성환, 〈활성화된 사진 틀〉, 2022, 복합매체, 가변크기 © 김성환

감상자로서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읽고 볼거리들이 쫙 펼쳐진 한가운데 서게 되는 셈인데, 일순간 방향 감각을 상실하며 정작 두뇌와 눈의 가동성이 떨어지는 난처한 경험에 빠진다. 하지만 그런 전시 면모 또한 김성환으로서는 의도적이며 특히 전시의 질적 수준을 고려할 때 피할수 없는 부분이다. 그 모두(전시물, 작품, 기성 자료들, 전시 구성)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작가가 매달려온 특정 방향의 조사·연구·시각화의 입자들이자 실체 전반이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부터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 이유는 그런 작업 배경과 상관있다.

김성환이 미술로 탐구해온 주제를 학계와 미술계에 유통되는 전문어들로 다시 정리하자면 역사, 근대, 이주/이산, 식민, 민족, 문화 이식 등이 될 것이다. 특히 전시를 근거로 비평해보면 〈표해록〉에서 그 키워드들은 하와이 원주민의 주권 운동, 다른 민족과 인종의 하와이 이민사, 구한말 일본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조선의 상황과 민초들의 이민, 하와이에 정착한 한국인들의 말해지지 않은 서사, 하와이라는 지리적·환경적 토대와 그에 대한 외부의 침탈 및 소진이라는 논점들로 풀려나온다. 김성환의 작업 목적과 전시에 제시된 지각적 사물들을 상호 교차해 의미의 조각을 맞춰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다만 이미 그 개념어들만으로도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주제가 감상자에게는 전시를 통해 독해literacy 대상으로 닥친다는 점이 부담이다.


김성환(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 aka dogr와의 음악 공동작업), 〈머리는 머리의 부분〉, 2021, H.264 QuickTime 2160p on SSD, 16:9,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22분59초 © 김성환

그것들이 작가의 탐사와 실행 과정, 증류와 종합을 거쳐 미술작품과 전시가 되기까지 이뤄진 지적이고 조형적인 과정을 알고 즐기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득 원초적인 의문이 들 수 있다. 김성환은 왜 하와이를 선택해 위와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일까? 감상자의 예술적 수용이나 지적 이해의 어려움은 일단 제외하고 본인 자신부터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큰 에너지와 자원, 시간과 수행성을 들여야 하는 이 어려운 다원 연구 미술의 대상이 왜 하와이인가 말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휴양지로서 하와이’를 어떻게 깰 것이며 그곳에 대해 작가는 물론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비평적 관점에서 파악해보자면 아젠다는 첫째, 하와이가 원래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섬이었다가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병합되기까지 역사의 굴곡이 깊다는 점이다.
둘째,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의 독립운동사 및 한인들의 미국 이민사와 결부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셋째, 김성환의 작업관에서 하와이는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그 아내 및 아들들의 미주 이민사, 음악가 윤이상의 “조국”, 『압록강은 흐른다』의 재독작가 이미륵을 전해 본 “한국을 떠나는 경험”, 『딕테DICTEE』의 차학경이 ‘男’ 자와 ‘女’ 자를 갖고 실험한 언어와 젠더, 1903년 하와이 이민자 “김순건이 발급받은 여권”3이 공적 문서로서 실증하는 국경과 이동의 문제 등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일종의 전극電極 공간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그 방대하고 복잡하며 각각은 과거의 부서진 파편에 불과한 사안들을 고찰하고 앎을 구축하느라 은유적에피스테메(인식론)의 공간으로 하와이를 품은 것이다. 한국 출신으로서 북미와 유럽을 떠다녀온 작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망명자 또는 “뜻밖의 시대에 이민을 갔던” 이들의 “다른 언어”를 아는 것이 〈표해록〉의 뼈骨이고 《Ua a‘o ‘ia ‘o ia e ia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로 구현하는 살肉인 셈이다.


 
노 헤아 마이 오에

이 심오한 전시에서 유독 눈길을 끌고 감상자가 뭔가 직관적으로 공감할 것 같은 작품은 〈몸 컴플렉스〉(2024) 연작이다. 2층 전시장(“Room 1”)의 안쪽 공간에 넓게 자리 잡은 설치작업인데 우리가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배웠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 사진과 아시아인 남녀의 초상, 영상에서 캡처한 것 같은 저화질 이미지들이 기둥들로 서 있다. 마치 독립기념관 교육 섹션의 사인 보드들 같다. 자세히보면 사진들과 함께 이들이 안창호의 부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독립 운동가였던 이혜련(1884-1969)여사와 큰아들 안필립(1905-1978), 그리고 1950년 하와이로 이주해 그곳에서 한국 전통춤을 전수한 배한라(1922-1994)와 현지인 제자 메리 조 프레실리(1934-) 등임을 알리는 텍스트가 제시되어 있다. 이것들을 보고 읽으면서야 비로소 김성환이 〈표해록〉을 수행하는 의미의 무게에 공감하기 시작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학적이라는 반응을 얻을지라도 나의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그것은 하와이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 남성의 서사로 쓰인 독립운동사와 그 서사에서 괄호 쳐진 여성과 아이들, 몇 줄로 요약할 수 없는 이민자들의 고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려 현지에서 융합과 혼성을 실행한 이들을 조명하는 작품인 것이다.

이 작업을 두고 김성환은 “두 개 이상의 언어가 들어와 만들어질 수 있는 번역의 공간”4이라 설명했다. 자신의 〈몸 컴플렉스〉를 공간으로 은유하는 진술인 동시에 하와이라는 지리적이고 정치문화사적인 공간의 특수성을 정의하는 말이다. 두 개 이상의 언어와 국적, 두 개 이상의 인종과 민족, 두 개 이상의 몸과 성性, 두 개 이상의 계층과 라이프스타일…. 만약 어떤 곳이 이러한 다중적이고 혼성적인 특질로 현존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일상의 관계 맺기에서 좋든 싫든 ‘당신은 어디서 왔는가?’ 혹은 ‘당신이 속한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노출된다.

하와이어로 그 말은 “노 헤아 마이 오에?No hea mai ‘oe?”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김성환이 〈표해록〉 창작 과제를 수행하며 알고자 하는 것의 출발점, 전시 《Ua a‘o ‘ia ‘oia e ia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를 통해 감상자와 이해를 공유하고자 하는 지평의 심층에 바로 그 질문이 있다. ‘어디 출신이냐’고, 우리 서로가 서로의 근원을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의 우리는 그러한 질문이 타인의 사적영역을 침범하는 공격적이고 무례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의 기저에는 차별과 배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그것은 타자에 대한 절대적 존중과 인정을 전제로 하는 관계 맺기다. 말하자면 나와 당신의 다름, 나의 기반과 당신의 기반이 다름을 인정하면서 나아가는 동반자 관계의 알아감. 내 뇌리에는 노년의 메리 조 프레실리가 미색 한복을 아름답게 차려입고 햇빛 가득한 스튜디오에서 한국 전통춤을 추는 장면이 각인되었다. 그것은 김성환의 영상작품 〈By Mary Joe Freshley프레실리에 의依해〉에 담긴 존재의 흔적이다. 그리고 내게는 ‘한국-하와이’라는 중첩과 연결, 공존과 지향성의 공간을 표상하는 사유이미지다.
 


1 “The Tanks Commission: Sung Hwan Kim”, Tate, 2012. 7.16. https://www.tate.org.uk/press/press-releases/tanks-commission-sunghwan-kim
2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5308
3 이상 어구 인용은 “김성환/데이빗 마이클 디그레고리오 인터뷰(인터뷰어: 막스-필립 아셴브렌너”, 아시아예술극장 웹고래, 2015. 7, https://sunghwankim.org/study/womanhead.html ;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리플릿의 작품 설명. 서울시립미술관, 2024가 출처다.
4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리플릿.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