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Korea Artist Prize 2012》© MMCA

서울의 도시 풍경은 액체적 건축과도 같이 부서지고 이내 곧 다시 지어지면서 중단과 이화(異化)를 반복하며 변화한다. 서울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도시를 둘러보았을 때 하나의 공간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 예로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한다고 가정해 보라. 기사는 그곳 주소를 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 예전에 어떤 빌딩이 있던 자리요?” 혹은 “어떤 빌딩 옆이죠?”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짓고 있는 어떤 빌딩 말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서울은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었고, 이는 마치 시간차를 두고 촬영된 비디오와 같은 리듬으로 작동한다. 얽히고 설킨 도로들과 대중교통 시스템, 지하 터널 그리고 공중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들은 모든 것을 뿌리 뽑듯이 사라지게 하였고, 무수한 개발과 재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공동체는 터전을 잃고 갈 곳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의 풍경은 마치 본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성형중독 환자와도 같다. 또한 이것은 마치 이 도시 안에 절대 같이 엮일 수 없는 역사와 기억 그리고 일상의 현실이 위태롭게 간신히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시간에 대한 나의 감각은 일반적인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성이 아닌 과거-미래-현재의 순차를 따른다.”1

이것이 바로 임민욱 작업의 출발점이다. 임민욱은 지난 15년간 걷잡을 수 없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양상들을 비판하는 도발적인 신체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자신이 “현대화의 유령”이라고 부르는 산업화 이면에 놓인 침묵과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주변적 양상에 관심을 가진 임민욱은 소속감과 장소의 상실에 대해 표현하여 왔다. 그녀의 작업은 시위 같은 선언적 행위에서 애도와 같은 상징적 제의로 옮겨간다. 미학과 정치 사이를 오가는 임민욱의 작업은 새로운 방식의 관점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정치적인’것을 특수한 목표의 성취나 권력의 관계가 아닌 주도적인 문화가 이루어낸 합의를 다시금 분열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임민욱의 작품은 랑시에르적 의미에서의 ‘불화-dissensus’로 작용하거나 혹은 현대 서울에 만연해 있는 정치와 선전주의 수사학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임민욱에게 있어 이의를 제기하는 위치에 선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과 감각의 과정을 재조정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집단의 기억과 우리 일상의 경험들 속에서 옳다고 판단되었던 것들에 대해 재고 할 수 있는, 말하자면 다르게 보고 인식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도덕적인 책임은 이미 몇몇 작가들에 의해 주목 받고 있는 주제이다. 나의 관점은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1930-)가 〈작은 병정 Le petit Soldat, 1963〉에서 “윤리는 미래의 미학이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진실된 것이 ‘좋다’라거나 미를 ‘아름답다’고 하는 현상에 대한 감각적인 판단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 가를 살펴보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자크 랑시에르가 지적한 것처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감각들을 재조직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2

임민욱은 최근의 작업에서 퍼포먼스, 비디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노골적으로 혼합시키는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하였다. 페스티벌 봄의 의뢰로 제작된 〈S.O.S.-채택된 불화 S.O.S.-Adoptive Dissensus, 2009〉는 한강을 따라 가는 유람선의 불빛과 소리들을 담은 쓰리 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임민욱은 이 작품을 “퍼포먼스 다규멘터리 극장”이라고 묘사하는데, 〈S.O.S.〉에서 탐조등은 유람선에 탑승한 승객들과 함께(혹은 비디오 설치작업을 보는 관람객들과 함께) 서울의 야경을 훑으며 비춘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25시간 동안의 여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층적이고 생생한 감각적 경험이다.

긴 시간 동안 유람선의 선장은 이 여행의 안내원이 되고 이 여행은 정부와 서울시의 ‘한강의 기적’ 사업과 같은 도시 발전 계획들을 재고찰하고 그 안에서 사라져간 잃어버린 역사와 기억들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실시간, 양방향 라디오를 사용하여 강둑에서 벌어지고 있는 3가지 짤막한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의 집단 시위 모습, 노들섬에서 서로의 감정적 유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연인, 전 정치수감자가 자신이 투쟁해온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회적 문맥 하에서 개인의 삶과 기억들을 쫓아가고, 이는 현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물질적 희생들을 다시금 인간화하려는 시도들이다.

“나의 작업은 속도에 의해 지워진 기억들과 그것에 대한 저항 그리고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와 자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문들을 던진다. 이 급속한 환경의 변화는 우리의 기억들을 지우고, 우리는 기억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없이 그것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지구화’를 위한 이와 같은 어지러운 과정들은 쉴 새 없이 바빴던 시간들 속에서 마치 ‘우리가 이미 보았던 것’ 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어떤 것’인 듯 보인다.”3

임민욱은 자신의 작업에서 관객을 역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목격하는 증인으로써 더욱 중요하게 부각시키면서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형태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새롭게 선보인다. 작가에게 있어 본다는 행위는 감각하고 접촉하는 행동과 같은 것이며, 실제 시공간 속에서 체화된 시학과도 같다. 〈S.O.S.〉가 잃어버린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소리와 탐조등을 사용했다면, 〈손의 무게 The Weight of Hands, 2010〉에서는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흔히 군대에서 감시를 목적으로 설치되는 적외선 카메라는 여기서 출입이 통제된 건설 현장을 탐색하기 위한 직접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도구가 된다. 마치 일종의 장례 의식처럼, 작품 속에서 체류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접근이 제한된 건설 현장들로의 침입을 시도한다.

이 영상은 버스에서 돌아다니는 여성 탑승객에 의해서 중단되고, 이 여성은 상실과 절망, 소외에 대한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 때 적외선 카메라는 이 장면들에서 발생하는 온도와 열을 각기 다른 색상과 채도의 추상적인 문양으로 기록한다. 그것들은 공간 속에서 잃어버린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면서 은유적인 대리인의 역할을 하며, 제한된 혹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신체적 공간을 암시하는 동시에 우리의 실제를 보고 경험하는 데 있어 접촉이나 체온과 열이라는 새로운 감각적 장치들을 일깨워준다. 적외선 카메라의 사용은 임민욱의 이후 작업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 기술은 신체적 특징 너머에 위치하는 인간 존재의 흔적을 쫓고 이를 인식하고자 하는 개념을 드러낸다.

“오늘날 지구화로부터 야기된 변화들로 인하여 장소는 그저 하나의 공간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은 네트워킹을 위한 한낱 재료에 불과하다. 니체는 혹사당한 말을 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지만, 나는 장소들을 껴안아주며 눈물을 흘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동시에 나는 비애감에 휩싸여 무기력함에 대항하여 싸우고 싶다. 그것이 니체에 의한 것이든 다른 것에 의해 생긴 감정이든 말이다. 이를 위해 나는 단절의 순간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그 제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4

현재 3개의 시리즈로 된 퍼포먼스 〈불의 절벽 FireCliff〉에서 임민욱은 도시와 신체와의 관계, 현상의 증인 그리고 장소성과 역사라는 그녀의 관심사들을 보다 확장시킨다. 첫 번째 시리즈는 2010년 스페인의 ‘La tabacalera(권련공장)’- 마드리드의 전 담배 공장 부지에 위치한 문화 커뮤니티 센터-에서 선보였다. 이 퍼포먼스 작업을 위해 임민욱은 담배 공장에서 근무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서 보여주면서 그들이 일하는 근로조건과 휴식 그리고 그들이 쓴 글을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임민욱은 이를 ‘장소 특정적 설치’ 혹은 ‘사운드 퍼포먼스’라 부르는데, 후자의 명칭은 이것이 힙합음악과 다른 음악들의 효과 그리고 조명 효과에 크게 영향받고 있기 때문이다.

임민욱에게 있어 이 작업은 장소의 역사를 다시금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이며 새로운 것들로 인해 없어지고 잊혀진, 즉 건물의 벽 안에 단단히 박혀 있는 혹은 땅 속 깊이에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의 절벽〉 퍼포먼스는 위태로운 방법들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소환하는 일종의 제의이다. 〈불의 절벽 2_서울 FireCliff 2_Seoul, 2011〉은 2011년 서울에서 열린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였다. 임민욱은 기억과 증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전 기무사 수송대 터에 자리잡은 실제 극장보다 좀더 고전적인 극장의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한다. 이 퍼포먼스에는 두 명이 등장한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와 오랜 기간 정치 수감수 생활을 했던 김태령씨가(임민욱과는 ‘진실의 힘’ 재단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등장하고 이로 인해 극장 공간은 다큐멘터리적 공간으로 전환한다.

이어 실제 인물에 의해 직접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극이 관객들 앞에서 펼쳐진다. 〈불의 절벽 3 FireCliff 3, 2012)〉는 2012년 워커 아트센터의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이전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안무와 춤 그리고 조각을 통합시켰다. 공간을 극장으로 인식하는 것과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발생한 퍼포먼스와 움직임에 대한 임민욱의 관심은 지속되어, 이 작품에서는 안무가들과 협업하여 상상 속 종말의 풍경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에 기반한 움직임들을 만들어냈다. 임민욱은 퍼포먼스에 토템적 형태를 지닌 연작 조각들(비디오 작업 〈포터블 키퍼 Portable Keeper, 2009〉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착용 가능한 조각들을 포함시켰다. 이는 앙드레 카데(André Cadere, 1934-1978)의 나무 봉과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tof Wodiczko, 1943-)의 ‘노숙자 쉼터’, 그리고 헬리오 오시티시카(Hélio Oiticica, 1937-1980)의 ‘파랑골레(parangoles)’ 뿐만 아니라 최근의 후쿠시마에서 일어났던 원전사고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기적 그리고 인공적인 재료들을 샅샅이 뒤져 형태를 만들고 종말의 풍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와 장비들을 제작했다. 임민욱에게 있어 이것들은 변화하는 권력과 통제 불가능한 야망들이 존재하는 이 곳에서 집단적 의식을 방어하고자 하는 욕망과 공감, 정서, 저항과 같은 상당히 인간적인 상태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극장 안에서 태어났다. 나는 액체 극장의 무대로 자궁까지 고려하였다. 우리는 태어난 후에 견고한 극장을 건설해 나간다. 삶의 절반은 허구를 행동하는 것이며 실재 속에서 주어진 우리의 역할들 역시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역할’의 일반적의 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이와 같은 질문들을 받는다.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의 역할은? 교수의 역할은? 그리고 이 역할들은 점점 더 강화된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디까지가 환영인지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이 역할의 개념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이것은 경계를 흐리고자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실과 허구가 공존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장 안에서 우리는 도구화된 신체를 지닌 배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대본을 읽으면서 보다 행동적인 정의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배우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역할을 결정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5

임민욱의 최신작인 〈액체 극장 Liquid Theater, 2012〉은 파리 트리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비디오 설치 작품이며 토템적 조각(포터블 키퍼로 알려져 있는)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업은 최근에 사망한 김정일(Kim Jong-Il, 1942-2011)의 장례와 그 행렬들 그리고 박정희(Park Chung Hee, 1917-1979)의 역사적 흔적들을 비디오로 담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둘은 불가사의할 만큼 구분이 어려우며 여기에는 임민욱의 후쿠시마 사건과 남한의 자살 증가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다. 공공의 애도에 대한 이미지는 사적인 애도로 대체되고, 이는 기념되지 않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삶들의 상실 그리고 그들의 죽음 역시 애도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을 내포한다. 임민욱의 애도 이미지는 파시즘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간애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 특징 혹은 원시성을 지니고 있다.

〈액체 극장〉은 폭발과 함께 비극을 뒤집음으로써 생기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보여주는데,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김정일의 죽음은 끝이기 보다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임민욱은 그녀의 딸이 과들르프의 캐리비안 섬에 있는 장면을 통해 열대의 한국을 상상한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김정일과 박정희가 지닌 특수성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개인의 일대기를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녀는 열대 한국을 상상하며 옛 것(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야망)을 파괴하고 이를 통해 상상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을 열대라는 극한 미장센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그녀는 이를 통해 거짓된 제의의 과정들을 타파하고 다시금 생성이 가능한 원초적인 상태로 돌려놓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현대화의 시기에 존재하는 원시적이고 근본적이기도 한 혹은 독특하거나 평범하기도 한 것이 얽혀져 있는 문화들을 추적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보고, 듣고, 알고, 또 알게끔 믿게 하는 것 너머에 위치한 이야기들에 대해 들려주려고 한다. 나는 미디어의 근본적 정신이 존재하는 어떤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의 근원이 모든 분야와 범위를 아우르는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지점에 있다고 믿으며 정치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6


 
1. Minouk Lim, “The Heat of Shadow,” Walker magazine (May/June 2012)
2. Minouk Lim, “Art Talk, Lim Min Ouk: Taking a Pause—A Methodology to ‘Confront’ Intangible Objects,” SPACE magazine (January 2011)
3. Minouk Lim, from http://www.minouklim.com/index.php?/works/sos–adoptive-dissensus-/
4. Minouk Lim, “The Heat of Shadow,” Walker magazine (May/June 2012)
5. Minouk Lim, “Take-Out Performance: Minouk Lim in conversation with Jody Wood,” movementresearch (March 2012)
6. Minouk Lim, “Art Talk, Lim Min Ouk: Taking a Pause—A Methodology to ‘Confront’ Intangible Objects,” SPACE magazine (January 2011)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