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e U-Ram, Ouroboros, 2012, Metallic Material, Resin, 24K Gold Leaf, Motor, Machinery, Custom CPU Board, 12(h) x 130(Ø)cm. 2012 © Choe U-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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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은 ‘기계 생명체(Anima Machine)’를 만드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예술적 상상력과 탁월한 조형감각이 돋보이는 키네틱 아트 작업을 선보이면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에서 주목 받았다. 1998년 첫 개인전 이래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바탕으로 펼쳐진 최우람의 작품세계는 지난 15년 간 형식적,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예술은 내용면에서도 확장하고 진화하고 있다. 바로 2012년 개인전에서 최우람 작품의 다양해진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십년 만에 열리는 국내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가는 아마도 지금까지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일곱 살 때 그림부터 최근 작업까지 아울렀던 그 전시에서 작가는 자기 예술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내게 예술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는 순환적 고리를 제시했다. 작품 〈우로보로스〉의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형상처럼 직선적 시간 개념은 해체되고, 과거, 현재, 미래는 끊임없이 맞물리고 있었다.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발견되는 우로보로스는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도 주목했던 오랜 종교적 상징이며, 상반되는 것들이 하나가 됨을 의미하는 이미지이다. 최우람의 예술은 바로 기계와 자연, 신화와 과학,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 가운데 존재했다. 〈우로보로스〉의 원 운동이 이분법을 해체하고 대립되는 것을 통합하는 상태를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순환과 확장, 나는 이 두 단어로 작가 최우람의 ‘지금 여기’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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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은 어렸을 적부터 공상과학 만화를 좋아했고,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늘 그림 그리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그는,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찾았던 〈살바도르 달리 조각전〉에서 특히 심장 박동을 재현한 보석 디자인을 인상 깊게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의 그림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로봇을 그리더라도 그럴듯한 외관을 꾸미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윤곽선으로 형태를 잡은 후에 내부를 상상해서 그 안을 채우는 일에 몰두한 것이다. 일곱 살의 최우람은 고래 안에도 내장 대신 기계 부품을 그려 넣었다. 어쩌면 이미 이 당시에 기계와 생명의 만남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계 생명체라는 작가의 오랜 상상은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다. 역사 속 수많은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최우람에게도 역시 자연이 예술의 모범인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랫동안 움직이는 것에 매력을 느껴온 그는 기계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에서 느낀 감동을 재현한다. 평소 자연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는 최우람은 “기계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광활한 자연과 다양한 동식물의 투쟁적인 생명력을 목격하며 느낀 경외감을 얘기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의 작업들은 자연과 기계가 교차된 이미지를 제시해왔다. 그의 상상을 통해서 곤충, 물고기, 식물 형태는 정교하게 고안된 기계 구조물과 결합되고, 그럴듯한 라틴어 학명이 붙여지며 생명체에 대한 텍스트가 제공된다. 

Choe U-Ram, Opertus Lunula Umbra (Hidden Shadow of Moon), 2008, Aluminum, Stainless Steel, Plastic, Electronic Device (BLDC motor motion computing system), Closed 420 (w) x 130 (l) x 420(h)cm, Open 490(w) x 360(l) x 500(h)cm © Choe U-Ram

기계 생명체에 내러티브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소개된 동식물에 관한 설명글처럼 가상의 기계 생명체에 대한 정보를 텍스트로 첨부한 것이다. 이로써 텍스트를 읽는 감상자는 실제로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는 그의 작업에 더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때로는 작품이 설치될 공간에 맞춰서 장소특정적으로 내러티브가 구성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서식지에 맞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8년 런던 테이트리버풀에서 전시된 작업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가 그러하다. 이 작품은 리버풀 선창에서 수면에 반사된 달빛에 의한 환상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과거에 침몰된 배와 현대의 배를 구성하는 구조 및 기계들로 이루어진 생명체’라는 설명이 첨부되었다.

최근작에서 내러티브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최우람의 사유 공간은 기계 생명체에 관한 상상을 넘어서 신화, 종교, 현실사회로 확장된 것이다. 석사학위논문 「기계 과학 문명의 비판을 통한 기계 생명체의 표현 연구」(1998)로부터 시작된 비판적 사고는 가상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을 향해 있다. 또한 현실사회라는 주제로 묶어볼 수 있는 그의 작품에서는 허무주의적 시선을 내비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회전목마〉를 보자. 어두운 전시 공간 중앙에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회전목마 미니어처가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수천 개의 기계 부품이 겉으로 드러났던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형식을 보여준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형태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서는 순간, 회전목마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점차 속도가 빨라져 정신없이 돌아가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회전목마의 형태는 사라진다. 한마디로 미쳐 날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바라보는 이는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끼게 된다. 우리의 추억 속 놀이공원 회전목마는 결코 빠르게 도는 법이 없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회전하는 게 상례인데 그 기대를 저버리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속도 기계가 눈앞에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에 당황한 관람객은 이내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회전목마〉는 끝없이 속도를 강요하는, 다름 아닌 이 사회의 초상일 수 있는 것이다. 

Choe U-Ram, Merry-Go-Round, 2012, Hand Made Merry-Go-Round, Sound System, Metallic Material, Motor, Gear, Custom CPU Board, LED, 190(h) x 110(w) x 110(d)cm © Choe U-Ram

그런가하면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최우람의 기존 작품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허수아비(Scarecrow)〉나 〈파빌리온〉이 그것이다. 검은 전선줄로 만들어진 4미터 높이의 거대한 유령형태인 〈허수아비〉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의 체계와 그 허상에 이끌려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상한다. 한시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으며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안심하는 우리의 현재를 뒤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실제로는 대화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이와 ‘페친’이 되고 웹상에서 상대방의 소소한 사생활을 시시콜콜히 확인한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의 친구가 되는가. 〈허수아비〉에서 보이는 허무함은 〈파빌리온〉에서도 이어진다. 황금빛의 화려한 장식 구조물 위에 떠있는 싸구려 검정 비닐봉지는 모든 것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 그만큼의 공허를 느끼게 하는 현대 사회를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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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인터뷰에서 최우람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하드웨어에서 감성과 정신으로 가고 싶다.” 지금 그는 당시의 포부대로 그렇게 가고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되새기며 그의 작품을 살피다보니 〈잊혀진 꿈의 동굴〉이란 다큐멘터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독일의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프랑스 남부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 벽화를 촬영한 이 영상을 보면서 3만 2천 년 전 구석기인의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에도 감탄했지만, 나이 지긋한 어느 고고학자의 말 중에 등장한 ‘호모 스피리투알리스(Homo Spiritualis)’란 단어가 뇌리에 남았다. 선사시대의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옛날부터 우리 인간이란 영적인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존재라는 사실이다. 

최첨단의 새로운 키네틱 아트 혹은 로보틱 아트를 보여주는 작가 최우람 역시 지금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얘기하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색과 더불어, 정교한 디테일, 놀라운 기술적 구현, 완벽한 형태의 미감을 특징으로 했던 최우람의 작업은 단순히 신기한 볼거리를 넘어서고 있다.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선보인 기계 생명체의 외양에 매료되었던 감상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의 작업을 통해 묘한 정서적인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작가는 답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며 “대상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이라고. 진정 인류의 역사는 자기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 구조인 것일까. 최우람의 대답은 왠지 그 옛날 동굴벽화를 그리던 구석기인의 태도와 무관하게 들리지 않는다. 

상상으로 창조해낸 기계 생명체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적인 것을 통해 정서적 감동을 주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우람은 올해 말에 열릴 전시를 앞두고 있다. 준비가 한창이던 7월에 만난 그는 ‘완전히 비운 상태’라고 했다. 어쩌면 그는 로봇 설계도를 열심히 그리던 일곱 살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모습 그대로였다. 과학자, 엔지니어, 발명가 등의 면모를 지닌 미술가이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이기도 한 작가 최우람이 또 어떤 상상력과 예술적 실천으로 공간을 채울지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