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양아치에게 미디어는 자신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말 그대로 ‘미디엄’이다. 그러므로 그가 특정 매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매체/장르에
도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양아치 역시도 어떤 상황을 이야기할 때 가장 적합한, 혹은 사회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매체라면 장르를 떠나서 흔쾌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시 카메라는 양아치가 찾은 또 다른 미디어로 볼 수 있다. 감시 카메라의 실험적인 사용은 2007년 종로에 있는 한 은행의 주차장에 설치된 무선 감시카메라를 해킹하여 작업한 〈감시드라마:연애의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감시드라마:킬빌〉, 〈감시드라마:007〉
등 몇 편의 ‘감시드라마 시리즈’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감시카메라를 매체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한다. 감시카메라는 양아치가 가지고 있던 감시체계, 즉 판옵티콘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매체였다. 게다가 한국사회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것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정부차원에서 감시카메라의 설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지역성에 대한 이슈를
늘 가지고 있던 양아치에게는 그 무엇보다 완벽한 미디어였다. 그렇게 감시카메라를 활용하는 ‘감시드라마’
시리즈를 통해서 양아치는 점차 퍼포먼스/공연 다시 말해 현장성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갔다. 다른 작업들에 비해서 ‘감시 드라마’시리즈는 그리 오래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양아치의 작업을 특징짓는 ‘밝은 비둘기 현숙씨’ 시르즈로 넘어가는 이행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양아치가
처음으로 〈밝은 비둘기 현숙씨. 경성〉을 내놓았을 때, 관객들은
〈미들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난감해 했다. 이제야 ‘미들코리아’가 전해주는
이야기 전달 방식에 조금 익숙해져갈 무렵이었는데, 작가는 돌연 ‘미들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는 처음
계획했듯이 3부작으로 끝이 났다며, 퍼포먼스와 감시카메라를
사용한 현숙씨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숙씨
이야기의 첫 편 〈밝은 비둘기 현숙씨, 경성〉은 앞서 언급했던
2007년 시작된 ‘감시드라마 시리즈’와 2009년 작업인 〈그럼에도 빙의소녀〉(2009)에서 모티브를 빌어 왔다. 특히 일관된 주체가 없는 현숙씨의
모습은 〈그럼에도 빙의 소녀〉에서 발전된 캐릭터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비둘기의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처럼 되뇌는 현숙씨가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올 뿐 아니라, 파편화 된 그녀의 이야기를 소화하기에도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어본다면, 현숙씨는 지금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표상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주입되는 의견들을 마치 자신의 의견인양 헷갈려
하고 반복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비둘기의 세계와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되뇌는 현숙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둘기
현숙씨 시리즈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지점은 양아치가 현숙씨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미디어시티 서울 2010" 출품작인 〈밝은 비둘기 현숙씨, 경성〉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을 통해서 전개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비둘기 현숙씨가 광화문 광장, 정동극장, 그리고
덕수궁을 본다. 머리에 쓴 헬맷에는 박제된 비둘기가 앉아 있고, 비둘기의
날개짓을 흉내 내는 듯한 동작들이 이어지고 나래이션이 깔린다. 여성 나래이터의 목소리가 비둘기 현숙씨의
동작과 움직임을,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입장을 읽어간다. 1031년
스톨홀름대학 경제학 학사가 된 조선시대 여성 최영숙, 순종폐하와 순정효황후를 부르는 윤택영 후작. 안기영, 신여석 박인덕,
소다 가이찌등 낯선 인물들의 이야기가 비둘기 현숙씨를 통해서 전달된다. 역사와 픽션, 퍼포먼스와 비디오, 나레이션 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넘나들고 있는
이런 모습이 바로 비둘기 현숙씨의 기본 구조이다.
이후 비둘기 현숙씨는 〈엘르〉, 〈사옥정〉 등 그 버전을 바꿔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기본 구조는 박제된 비둘기가 올라앉은 헬맷을 쓴 비둘기 현숙씨의 움직임과 동선을 따라가고, 촬영(혹은 공연)장소에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넘나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강남의 유명 명품멀티숍은 꼬르소 꼬모에서
촬영한 〈밝은 비둘기 현숙씨: 엘르〉에서 현숙씨는 청담 고등학교, 갤러리아
백화점, 패션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현숙씨가
트리니티 플레이스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가 하면 〈밝은 비둘기 현숙씨:사옥정〉은 문래예술공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양아치의
비둘기 현숙씨의 작업은 지금까지의 양아치 작업에서 시도되었던 다양한 양상들이 한 데 어우러진 총체극과 같다. 주어지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미들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와 닿아 있고,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감시드라마에서 시도되었던 퍼포먼스적 양상은 현숙씨의 퍼포먼스 안에 남아 있다. 물론 이전 작업들에서 보여주었던 요소들이 파편적이었다면, 비둘기
현숙씨 시리즈 안에서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안정된 구조이다.
끝으로
비둘기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비둘기 현숙씨에서의 비둘기는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의 입장을 현숙씨에게 대입시킨 것일 수 있다. 비둘기가 흔히 보이듯이 현숙씨 역시 특별한 어떤 인물에 대한 표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가 도시에서 차지하는 위치이다. 평화의 상징이었으나 도시 공해의 원인이기도 한 비둘기. 양아치의
다른 작업들이 그러하듯 작품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도 확정되고 고정된 의미층은 늘 슬쩍 비껴간다. 그런가
하면 비둘기는 새이다. 하늘을 나는 새. 하늘을 난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숙씨에게는 불가능한 시선. 그
시선을 비둘기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둘기의 시선은 감시카메라의 시선과 같은 층위에 있기도
하다.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감시카메라. 실제도
비둘기 현숙씨 시리즈에서는 감시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전면에 들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비둘기-새-감시카메라는 동일한 시선의 층,
나아가 의미의 층에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양아치의 작업은 늘 우리의 예상을 비껴간다. 예상했던 매체에서도 비껴가고, 예상했던 스토리에서도 비껴간다. 과거와 현재를 주무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전시와 설치, 비디오와 공연이라는 장르의 벽도
깨버리고, ‘양아치 식’의 내러티브를 구성해 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양아치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양아치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만의 미디어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늘 그의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을 설레이며 기다리며 ‘양아치의 미디어’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