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희는 한 편으로 핍박 받고 희생되는 약한 존재들을 찾아 위로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와 현대의 신화들, 거대 권력 등을 끊임없이 들춰내 비판하는 작가다. 약한 존재들은 여성과 아이들, 역사의 희생자들이고, 그 반대편에는 가부장적 권력, 전쟁, 식민, 자본 등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에는 여린 존재를 어루만질 때의 섬세함과 거대하고 무자비한 힘을 묘사할 때의 기괴함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2009년
무렵부터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미지들을 주로 사진을 이용해 풍자하기 시작한 작가는 〈달맞이 꽃〉에서 암스테르담의 성노동자 여성들의 시를 모아 집창촌
거리에 불빛으로 조심스럽게 투사한 바 있다. 이후 송상희는 각 서사마다 적합한 매체와 소통방식을 찾아내
점점 더 복합적인 구성을 해 나간다. 〈변신이야기 제16권〉은
오비디우스의 신화적 텍스트를 가상으로 확장시켜, 상상의 개체들의 사랑 이야기에 생태계 파괴, 석유자본, 국가권력 등을 녹여 넣은 애니메이션이다. 이외에도 작가는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엽서, 우라늄 유리 그릇, 말린 꽃 등 이름 없는 개인의 수집품들을 가져와 환경파괴, 멸종, 핵 문제 등 인류의 비극들을 길어올리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의 무게에
짓눌린 노래들로 라디오 방송을 구성하거나, 역사의 비극적 장면들을 드로잉이나 영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민간기 격추사건에서 희생자들의 신발들이 바다에 떠 있는 장면을 재현해 하염없이 찍은 영상 〈신발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최근 송상희의 이런 수집과 불러내기(호명 혹은 초혼)의 방법은 텍스트, 음악, 영상, 드로잉 등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복합 설치에서 한층 더 견고하고 풍부해지고 있다. 〈그날 새벽 안양: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에서는 낙원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도시의 장면들을 무너진 유토피아의 꿈이나 디스토피아를 그린 텍스트, 드로잉, 음악들과 조합하였다. 한 편의 “비디오-오페라”라고 부를만한 이런 기법은
2015년의 개인전과 이듬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전시된 〈변강쇠歌: 사람을 찾아서〉에서
한결 더 다층적이 되었다. 송상희는 역사적 비극의 장소를 찾아가 전쟁포로, 종군위안부 같은 희생자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을 투사해서 찍은 영상에 다시 비천하고 저속하다고 일컬어지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덧붙인다.
이 낯선 초혼의 의식은 다시 세월호 희생자와 지중해 난민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형의
비극들로 이어진다. 때로 이런 감당하기 힘든 복합성과 다층성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송상희는 규명과 애도조차 없이 스러져가는 수많은 존재들이 매일매일 누적되는
이 비극의 포화 상태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아마도 송상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역치가 너무
높아져버린 우리의 통각을 깨울 방법이라면 그 어떤 불편한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그 불편한
아름다움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