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rks》 전시전경 © 파이프갤러리

전시장 가득 크고 작은 인물들의 모습이 들어차 있다. 이렇게 인물‘만’ 그린 작업을 보는 일도 참 오랜만이다. 회화에서 인물(초상)과 재현이 금기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사실적으로 재현된 윤미류의 인물화를 보고 있자면 꽤나 용감하게 느껴질 정도다. 목공소에서 평소와 같이 나무를 다루는 인물,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걸어가는 인물,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인물 등 화면 속 표현은 무척이나 구체적이지만 그려진 인물의 서사나 역할이 분명치 않으니, 인물의 정체도, 이를 담아낸 회화의 의미도 묘연하다. 다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움직임의 순간을 담고 있다는 거다.

윤미류의 회화를 마주하면 우리는 쉬이 인물이나 인물이 처한 상황을 읽어내려 할테다. 작가가 그려낸 화면 속 인물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등을 말이다. 회화 속 인물은 쉽게 관습적인 읽기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그가 그려낸 인물들의 표정은 생생하고 선명하며, 배경과 잘려나간 풍경은 화면에 담긴 순간의 전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들은 당신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회화 속 인물에 대해, 그리고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읽어내려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을거다. 고백건데, 나 역시도 그랬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열 세점의 회화를 가져와 장편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을 만든 구스타프 도이치처럼 말이다. 도이치가 호퍼의 회화 속 평면에 갇힌 인물에게 셜리라는 삶을 주었듯 윤미류의 인물이 담긴 회화들 역시 그런 충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호퍼의 회화 속 인물이 도이치 감독의 상상력을 통해 특정한 인물로 탄생했듯이, 윤미류의 회화 속 인물들 역시도 작가에 의해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 등으로 둔갑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우리에게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이들은 물에 젖어 있거나, 산 속을 배회하는 인물 등으로 보일 뿐이다. 작가의 상상이 입혀진 설정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이들은 작가의 이상한 요청과 설정에도 기꺼이 응해줄 수 있는 가족이고 친구이다. 작가는 왜 이들을 불현듯 상상 속 캐릭터로 호명했을까?

제목에 기대어 보지만, 단서는 인물이 아닌 인물을 그려낸 장소(〈The Studio〉)나 시간(〈The Moment〉, 〈Waiting〉), 회화적 표현이나 조건(〈The Play of Light on the Surface〉)을 지시한다. 그러니 작가가 그려낸 것은 인물이 아닌 다른 무엇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 속 인물을 “매개체”라고 부르고, 양효실 비평가 역시 그의 회화 속 인물을 “껍데기”로 표현하며, 그의 회화가 “인물들이 아니라 회화성에 대한 실천”임을 드러낸다, 문혜진 비평가는 “작가가 대상을 마주쳤을 때 느낀 감각”의 표현이라 말한다. 그럼 다시 그의 인물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한 ‘The Studio’ 연작(2020-2021)에서 작가는 한 목수 부부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인물들을 그렸다. 이 연작에서는 인물 뿐만 아니라 장소적인 요소들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인물과 함께 시간이 담긴 이 장소들 역시 주요한 읽기의 대상이 된다. ‘Dripping Wet’ 연작(2021)부터 인물은 본격적으로 매개체가 된다. ‘The Studio’ 연작과 달리 작가는 실내가 아닌 실외(계곡)로 인물을 불러낸다. 그리고 연출과 설정을 구성하며 익숙한 대상에서 낯선 감각을 찾듯 본래 인물과는 다른 독립된 이미지를 생산하고자 한다.

이때, 작가의 상상을 위해 익숙한 인물에 붙여진 것은 장소, 의상, 소품, 제스처 뿐만이 아니다. ‘채비, 다짐, 기대, 신경질, 멀미, 도망/서늘한, 선명한, 그늘진, 반사되는, 무거운/태연한, 굳은, 당황한, 깜깜한/더듬다, 버티다, 다물다, 덤비다’ 등의 새로운 상황에 놓인 인물에서 작가가 연상하는 명사, 형용사, 동사와 같은 언어가 인물에 달라 붙는다. 작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에서 멀리 떨어져 새롭게 투영하는 감정과 성격을 인물을 수식하는 성질로서 회화 속에 번역된 조형으로 드러내는 실험을 한다.

최근에 있었던 그의 개인전 《방화광》에서는 이러한 실험을 좀 더 극단으로 밀고 나아가 인물을 매개로 특정한 장면과 캐릭터를 통해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한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캐릭터를 포착하기 위해 인물에게 여러가지 지시를 내린다. 인물은 요청에 호응하며 움직임과 표정을 만들며, 이내 그 요청은 허구와 실제가 교차하는 불씨가 되어 다른 인물을 낳는다. 인물의 성격이 변화하고, 실제와 허구가 교차하는 찰나의 감각을 윤미류는 회화로 번역하기를 시도한다. 작가는 이처럼 약 3년에 걸친 시간동안 인물을 매개로 삼아 회화를 통해서 사물과 장소, 언어와 감각, 상황 등을  번역하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작가는 자신이 인물에게서 발견한 작은 불씨를 단서 삼아 불씨가 타오르며 만드는 환영과 같은 다양한 장면을 만들고 불이 일기 직전의 상황을 당신에게도 제안한다. 따라서 윤미류의 회화는 많은 순간 벽에 가지런히 놓여 있기를 거부하고, 전시장에서도 끊임없이 상황을 만들기를 위해 부단히 불씨를 피운다. 그의 회화는 인물의 동세와 크기에 맞춰 두 개의 각목에 지지하여 설치하거나, 라이브 포토의 프레임을 길게 늘여 연사된 사진들을 보여주듯이 그 움직임의 흔적들이 연달아 설치하기도 한다.

또, 전체 화면에서 일부를 도려내어, 마치 범죄 현장에 놓인 단서처럼 설치된 이미지들은 어떠한가. 그의 회화는 앞과 뒤의 상황에 대한 공백을 암시하도록 설치되어 당신으로 하여금 다양한 상황을 상상케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회화에서 무엇을 실험하는 걸까? 인물이라는 “껍데기”를 통해 회화에서 담아내려는 ‘성질'이란 무엇이며, 그 실험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 독자적인 개별 작품을 이어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일이었다면, 윤미류의 회화 역시 인물을 통해 어떤 서사를 꿈꾸지만 인물을 상상하는 일은 이내 중요치 않게 된다. 셜리와 같은 구체적인 인물을 떠올린다면, 작가의 회화적 실험을 읽어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윤미류의 회화 속 인물들은 파악되어야 하는 읽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회화 속으로 어떤 상태를 끌어들이는 실험의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윤미류의 인물화는 번역된 명사로서의 장소와 시간, 형용사로서의 감각과 정동, 동사로서의 장면을 제시한다.

읽기의 대상은 인물 자체보다는 회화로 번역된 인물이 만들어낸 명사이자 형용사이며 동사로 존재한다. 그리고 인물은 언제고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다음 작업에 관해 작가에게 물었을 때, 작가는 늪을 배경으로 한 인물화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늪에는 인물을 둘러싼 설화와 이야기가 덧붙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어둠 속에서 촬영을 해야 할텐데, 자신이 본 빛과 형태를 그대로 담아 낼 수 없는 아이폰의 성능을 걱정했다. 인물을 둘러싼 어두운 늪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작가가 번역하는 인물은 회화 안에서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