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광》 전시 전경 ©SeMA Storage

문신 같은 인물들

윤미류는 대학원 재학 당시 폭주족이나 사이비 종교 등에 관심이 있었고, 작가의 말로 한동안 ‘다크 한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인간이 왜 그와 같은 폭력이나 무법, 비상식과 비일상적인 상태가 되는지 호기심을 가졌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리고 필자의 눈에는 윤미류 회화의 다크함이 그의 화면에 눈길을 머물게 하는 특징 중 하나이자, 최근까지 공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그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적당한 길이의 평범한 나뭇가지를 주술의 재료처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라든가, 낙엽 더미 위에 앉아 사냥 포획물의 가죽처럼 롱부츠의 지퍼를 붙잡아 올리는 모습, 물에 잔뜩 젖어 엉겨 붙은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에 옷가지를 강하게 움켜쥔 모습 등이 그러하다.
 
다크함에 대해 좀 더 보편적인 언어로 살펴본다면, 멜랑꼴리하거나 심각한 분위기, 진중하고 비장한 모습 등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미류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럿이 아닌 하나의 화면에 단독자로 존재하며,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얼굴에 드리우고 있거나 표정 없이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인 경우가 많다. 작가의 적극적인 연출로 물이나 눈을 배경으로 인물이 물에 젖거나 눈을 맞은 상황을 만들고 파랗고 붉은 조명이 인물 위로 가득 드리워지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연출은 앞서 말한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크함을 지닌 윤미류의 인물들은 화면 안에서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지만 그의 인물을 마주할 때 일순 눈길이 멈추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문신을 온몸에 잔뜩 입고 있는 낯선 사람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 보게 되었을 때와 같이 말이다.
 
위와 같은 의미의 측면에서 윤미류의 회화가 사람이 몸에 새긴 문신 같은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문신의 과정이나 형식, 표현의 방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신은 일종의 이미지이자, 그것을 지닌 자가 스스로 보기 위하여 새기거나 타인에게 드러내는 이미지이다. 다른 한편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불법일 때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금기시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겨질 이미지는 진지하게 고안되기도 하지만 가볍게 기분에 따라 선택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화면 밖을 쏘아보기도 하고, 불을 지르려는 듯 보이거나 주술적인 행위들을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에는 특정한 목적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문신처럼 그곳에 정지해 있는 것이다.
 
윤미류는 이처럼 인물을 통해 화면 안에서 내러티브를 읽어 내려는 독자와 회화적인 표현에 집중하는 자신과의 의도적인 괴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에 정답이 없는 상태’, 즉 공백감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그가 재현될 인물을 선택하고 모델의 특징을 의상과 배경 등으로 증폭시키지만 관계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자신의 여동생이나 친구, 동료 등 주변에 실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림으로 그려지며 모델과의 관계적인 맥락은 사라진다. 같은 인물이 여러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할수록 해당 인물의 개성이나 특수성이 증가하지 않고 반감되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윤미류는 가장 적합한 회화적 표현의 피사체로써 인물을 선택한 것이지, 성격이나 철학, 직업 등 누군가의 초상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예외의 지점도 존재한다. 인물이 표현의 수단이 아닌 개별성을 지니는 경우이다. 그리고 눈에 띄는 차이점은 윤미류가 여성이 아닌 남성을 주인공으로 다룰 때는 인물이 지닌 기존의 맥락이 강하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studio〉(2021) 시리즈에서 화면 속의 남성은 작가의 할아버지이다. 서재로 보이는 듯한 방에서 그림을 다루며 이리저리 몸을 숙이고 뻗고 있는 그를 평범한 노년 남성의 모습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한편 2022년 개인전 《B형 비염 귀염》(2022)의 중심이 되는 한 명의 인물은 윤미류가 당시 자주 교류했던 작가 김민석이다.1) 그들은 ‘할아버지’와 ‘작가 김민석’이라는 특정한 누군가이며 그의 행동이나 존재가 그림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읽는 방식도 함께 달라지게 된다.


 
그리기의 향방

윤미류가 인물을 통한 회화의 표현에 집중한다고 보았을 때 어떤 새로운 양상을 지니고 있을까? 우선 작가가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인물의 의복이다. 유도복의 이중 짜임을 일컫는 ‘Double Weave’를 개인전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그는 옷과 신발의 질감, 재료, 생김새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종 브랜드의 로고나 장화의 재질, 바지의 컬러가 화면의 균형을 깨뜨리거나, 장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으로 그가 의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착용한 사람의 개성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상징이라기보다는 회화적인 즐거움을 쫓아가는 화가적 면모의 발현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눈여겨볼 점은 의상의 동시대적인 패셔너블함이 전통적인 구도와 방식을 지닌 인물화의 고풍스러움을 신선한 방식으로 중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윤미류의 회화에서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작지 않은 캔버스에 묵직하게 그려져 있지만 막 움직임을 멈춘 상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주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붓질을 살펴보면 작은 붓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비교적 넉넉한 크기의 붓을 사용해서 여러 겹의 터치를 쌓아 올리거나 짧고 빠르게 그어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물의 이마와 코, 코끝의 표현을 가까이서 살펴보게 된다면 작가가 인물에게서 낚아챈 인상을 최소한의 붓 터치로 재현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빠른 붓 터치를 작가 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으로 보기는 어려우나 이렇게 획득한 화면의 속도감은 심각한 모습으로 거기 있는 인물들을 한층 불안해 보이게 하거나 흔들리는 생동감을 부여한다.
 
사실 오늘날 회화에서 새로운 표현을 찾는 일이란 도전하기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인물’에 ‘환경’을 더하는 방식으로 형식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그가 몰두하고 있는 방식은 자연의 빛 변화와 물의 다양한 상태를 활용하는 것이다. 2023년 개인전 《방화광》에서 윤미류는 인근 뒷산에서의 눈 쌓인 풍경과 계절에 따라 달라진 자연광을 조건으로 삼았다. 물과 빛 이외에도 그가 구사하고 있는 표현과 잘 붙어 시너지를 내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그가 대학원 졸업 후 잠시 머물렀던 2020년의 아일랜드에서의 작품들은 작가가 감각하는 것들이 완전히 낯설어질 때, 따라서 변모하는 화풍을 보여주었다. 그가 계속 회화의 표현과 형식에 집중하며 나아간다면 새로운 조건과 시도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윤미류는 그리고 싶은 동기가 일어나는 이미지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처럼 작가 자신이 느끼는 그리기와 재현의 즐거움, 매료된 장면이 회화로 옮겨지는 호기심과 흥미로움이 관람자에게 전해져 그의 화면을 쳐다보고 싶도록 만든다. 바꿔 말하면 그는 어떤 수행이나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닌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을 자유롭게 탄생시키고, 회화의 상태로 뒤바꾸는 것이다. 상대방을 일루전에 빠지게 하거나 미스터리 한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주술사, 길이든 길이 아닌 곳이든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산책자, 무언가를 목표하고 달려나가는 사냥꾼의 속성. 이러한 윤미류의 즉흥과 계산이 섞인 복합적인 태도를 《방화광》 전시를 위해 그가 작성했던 작가노트 속 인물들로 비유해 보려 한다.2)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주술사, 사냥꾼, 산책자의 중간 지점을 그가 그리는 인물 속에서도, 쥐고 있는 붓 끝에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1.       윤미류는 2021년 아트 플러그 연수 레지던시에서 만난 김민석에게 협업을 제안하였다. 김민석은 윤미류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윤미류는 그것을 촬영하여 김민석과 오브제 등을 그렸다. 퍼포먼스와 회화의 협업 과정에서 퍼포먼스 기존 동작에 윤미류의 의견이 더해지기도 하였다. 2023년 11월 윤미류 작가 인터뷰
2.       “…(중략) 나는 한 인물을 두고 떠올린 여러 키워드를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이어보았다. 가상의 상황과 설정을 입혔을 때 인물이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느낄지를 상상하며 배경, 의상, 소품, 제스처 따위를 연출하고, 결합한다. 두 사람은 이유 모를 행동을 하는 주술사의 몸짓으로, 무언가를 쫓는 사냥꾼의 얼굴로, 어느 순간 길을 잃은 산책자의 눈으로 이미지화 된다.” 2023년 7월 윤미류 작가노트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