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명호!” 누군가 사진작가 이명호를 부른다. 그가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찬찬히 둘러보니 비로소 무엇이 보인다. 빠져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윽고 그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보이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조용히 그것을 부른다. ‘나무/신기루/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사진작가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는, 비유적으로 말해, 누군가의
호명(呼名)으로부터 시작하고 작가 이명호의 명명(命名)으로 전개되고 그의 호명으로 완성된다고 하겠다. 아! ‘명호(明豪)의 호명’?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누군가의 호명으로 그의 작업이 시작된다니 여기서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인가? 게다가
이 글의 제목인 호명과 매개는 “슬래시(/)를 통한 호명, 하이픈(━)을 통한 매개”라는 말로 해설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지닌 채,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천천히 살펴보자.
I. 재현 – 나무
먼저, 사진작가 이명호의 최근까지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작가가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범주화된다.
➀
재현(再現, Re-presentation)–현실(現實)
➁ 재연(再演, Re-production)-비현실(非現實)
➂ 사이(間, Between) 혹은 너머(超, Beyond)-간현실(間現實) 혹은
초현실(超現實)
그리고
이 ‘세 범주를 실험하거나 활용하는 ‘또(&)’라고 하는 범주가 하나 더 있다. 다만 이 범주는 훗날 변용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현재까지의 연작을 정확히 분류한 카테고리 이름으로 자리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는 “무제(無題, Un-Title) 혹은 미제(未題,
No-Title), 부제(不題, Non-Title) 혹은
비제(非題, None-Title)”로 작명되거나 “적용(適用, Use As This) 혹은 적용(適用, Use As That), 사용(使用, Use This) 혹은 사용(使用, Use That)”으로 작명된 정도이지만, 향후 변동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글, 한자, 영문으로 병기된 ‘세 범주’는 관객에게
여러 차례 소개된 연작을 작가 자신이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기 위한 차원의 카테고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예를 들어 ‘재현(Re-presentation)’의 범주로는 ‘Heritage’, ‘Heritage_[drənæda]’,
‘Petty Thing’, ‘Tree’, ‘Tree...’, ‘Tree......’와 같은 연작으로 소개된
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재현의 영문을, 하이픈을 넣어 ‘리-프리젠테이션(Re-presentation)’로 표기한 작가의 의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야생의 나무나 어린 잡풀 또는 문화유산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일련의 연작에 함유된 공통의 미학과 더불어 ‘재현’의 일반적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작가가 현실이라는 말을 재현 옆에 병기했듯이 현실과 비현실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생각해
보자. 미술에서 일반적으로 ‘재현’이란 “현실 속 풍경, 인물, 사물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나 사진에서는 3차원의 실재를 2차원 평면 위에 눈속임(trompe-l’œil) 기법과 투시 원근법을 적용해서 진짜처럼 보이는
허구(simulacre)를 창출하는 것이고, 조각에서는 3차원의 실재를 3차원의 대체적 구조 위에 ‘다시(re)’ ‘현전케 하는 것(presence)’을 의미한다. 사진이나 회화의 재현이 ‘2차원 허구로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조각의 재현은 ’3차원의 대체물이라는 허구에 실재를 다시 현전케
하는 일’이 된다. 즉 재현이란 근본적으로 비현실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명호의 작업에서 재현이란 범주 옆에는 현실이란 용어를 병기되어 있다. 그의 재현이란 비현실을 창출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창출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범주의 연작들인 ‘Heritage’, ‘Petty Thing’, ‘Tree’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비현실/현실이라는 양자를 함께 작동하고자 한다. 즉 ‘사진’으로서는 허구를, 3차원의 조각적 설치를 병행하는 ‘사진
행위’로서는 ‘실재를 다시 현전케 하는 일’을 실천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작가 이명호는 상기의 연작과 같은 이 범주의 작업을 ‘Re-presentation’처럼
하이픈으로 명명하거나 ‘Re/presentation’처럼 슬래시로 호명하고, ‘Re-presentation’처럼 하이픈으로 매개한다. 그 매개란 사진이나 회화의 2차 비현실을 지우고 조각적 설치, 사진 행위와 같은 3차원의 현실을 일깨우면서 ‘캔버스-행위-사진, 작가-작품-관람자, 그리고 다시-현전’을 하이픈으로 잇는 일이 된다. 이것은 그의 사진 작업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관계를 잇고, 매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정보다 결과물을 중시하는 관성화된 ‘재현’ 개념을
비틀고 과정을 창작 안으로 견인하고 연장하는 의미의 차원인 ‘재현 혹은 재-현’을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