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승은
대상의 본질과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그 간극을 포착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의 사진은 사진이 대상의 물리적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의 일부로 현존하고 있는 이미지의 속성을
독립시키는 일임을 보여주었고, 그럼으로써 정희승의 사진은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
이미지로서 인정받는다.
지난 10 여 년간 정희승은 인물, 사물,
공간 등 다양한 대상을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냈다. 〈페르소나〉, 〈리딩〉, 〈고스트〉와 같은 초상 연작을 시작으로, 〈스틸-라이프〉, 〈부드러운
단추들〉,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 〈사라짐〉과 같은
정물 사진, 그리고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를 통해 역사적 공간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우선
〈페르소나〉 시리즈는 정희승이 인물을 대상으로 삼아 ‘마스크(mask)’와 ‘페이스(face)’의 관계에 대해서 탐구한 작업이다. 작가는 〈페르소나〉를 비롯하여 일련의 초상 작업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우선 〈페르소나〉는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현실(reality)과
무대(stage), 몰입(absorption)과 자기현시(self-revealing)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다뤘고, 〈리딩〉은
배우들의 대본읽기가 타자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읽어가면서 자기를 상실해가는 행위가 되는 것에 주목하여 이 과정을 사진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고스트〉는 19 세기 중반 초상 사진들을 레퍼런스 삼아, 사진의 발명후 산업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약 15 년간 제작된
초상 사진들에서 발견되는 정서,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벤야민에
따르면 아우라가 될 수도 있는)에 대해 파고들었다.
오늘날의
사진에서는 상실되어 있는 이 초기 사진들의 정서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작업을 위해 정희승은 대형 카메라와 슬라이딩 플레이트를 이용해 약간의 시간과
시점이 어긋난 두 장의 스테레오 이미지를 제작했고, 이는 19 세기
다게레오타입 초상 사진의 제작방식을 의식한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긴 촬영 시간으로 인해 모델의 시선이
카메라보다는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함으로써, 인물의 표면을 즉물적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상에
관여하고자 했다. 이 작업에 대해 정희승은 자신 역시 표면을 묘사했지만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들의 징후로서 드러나는 표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1
정희승의
〈스틸-라이프〉 작업은 주변의 여러 사물을 촬영해온 사진들인데, 사물을
촬영하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제시, 배치하여 낯선 이미지 또는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여주거나,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 시리즈를 통해서는 사진이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을 반복적인 장미 초상 연작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부드러운 단추들〉 작업은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유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대상이나 신체를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대상은 부드러운 상태의 사물이지만 그것에 붙은 이름과의 관계는 느슨하며, 또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공격적이지도 않은 속성을 지닌다.
〈부드러운
단추들〉은 〈장미가 장미인 것〉, 그리고 〈사라짐〉이란 작업과 함께
‘의미의 불가능성에 대한 세 개의 소품들’로 묶이는데, 이
표현 그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탐구 작업이다. 이 작업들에는 정희승의 여타
작업들이나 전시, 그리고 작품집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 그리고 그 행간에 대한 숙고도 포함되어 있다. 정희승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 편집의 행위를 통해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실험해 왔는데, 그가 일련의 작품을
배열/배치하는 편집은 하나의 사진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치시키기도 하며, 한 편의 시처럼 언어와 같은 호흡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관람객 또는
독자는 전시장 벽을 따라 걸으며, 또는 작품집의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행간과 호흡을
읽어내어야 한다.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는 제 12 회광주비엔날레(2018)에
참여하면서 촬영한 옛 국군광주병원 사진들이다. 정희승은 광주의 비극적인 시간이 몇 겹으로 중첩된 채
폐허로 남은 건물을 시차를 두고 마주했을 때 그 공간이 지닌 경험과 기억을 가늠하는 일이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가
비로소 자신이 담아온 공간의 디테일을 들여다보며 사진가적 입장을 되돌아보게 된 것은 해를 넘길 정도로 시간을 묵힌 후 편집작업을 시작하면서다. 우리는 작가가 인용한 에밀리 디킨슨의 싯구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Remembrance has a rear and front)’로부터 더이상 재현불가능한
경험과 기억이 기억의 장소로 남아 있는 공간에 의해서 환기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의
장소를 촬영한 사진이더라도 사진은 시간을 차곡차곡 거슬러서 과거의 공간으로 완전히 우리를 데려다 주지 못한다. 따라서
사진이 역사를 기록한다는 미명하에 행하는 것은 결국 기억을 재구성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희승의 사진은 옛 국군광주병원을 현재 우리가 위치한 시간대에서 바라보고자 하였으며, 역사로
규정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현재의 공기와 풍광, 소리까지 암시하는 사진이다.
정희승은
한 인터뷰에서 “매체로서 사진의 특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사진은 정의하기 어렵다, 고정된 아이덴티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 적 있다. 그는 사진 이미지가 현실과
맺는 관계란 비가 새는 천정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결국 사진이 하는 일은 그 균열과 구멍들에 대한
탐구라고 덧붙였다.2 사진은 세상에 등장한지 200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등장 순간부터 미술사에 의해 재현 수단으로써 회화와의 대결 매체로서, 또는 영상미학이나 미디어이론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되어 왔고,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데이터로서의 속성이 중요해졌다.
현재의 사진은 회화, 그래픽, 영상과 함께 다같이 이미지이자 데이터로 귀결되어가는 상태이고, SNS 플랫폼을 타고 광속도로 무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이 새로운
플랫폼을 외면하여 고립되거나 아니면 결탁함으로써 속도에 휩쓸려 가거나 그 운명을 양자택일 해야 하는 지경이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정희승은 고집스럽게 이미지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면서 사진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1.
정희승, 『Unphotographable』(서울: 두산아트센터, 2011)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 참고. (페이지 번호 없음)
2.
위의 인터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