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스》 전시전경 © 갤러리현대

이슬기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 초 파리로 이주한 이후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공예와 조각, 대중적 디자인과 민속적 요소들이 결합된 혼성적인 작업들을 지속해 왔다. 전시와 다양한 협업, 그리고 공공 프로젝트 영역을 아우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직접 대안공간 파리 프로젝트룸(Paris Project Room)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작가의 개인전인 《다마스스(DAMASESE)》에서 보여준 이슬기의 대표작인 ‘이불 프로젝트: U’는 한눈에 화면구성과 시각적 기호들이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잇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싹이 노랗다”, “우물 안 개구리”, “엎질러진 물”, “독수공방”, “내 코가 석자”와 같은 작품의 제목들은 이러한 강렬한 시각적 요소들을 뚫고 우리가 더욱 명쾌하게 작업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누빔천 이불 위에 견고하게 지어진 기하학적 추상 면과 문양들은 작품의 제목인 ‘속담’과 결부되면서 어떤 한 공동체가 지닌 집단의식이 내재된 속담의 서사와 함축을 간결하고 명징하게 드러나게 한다.

아를렌 베르셀리오 쿠르탱과 이슬기의 글에서 “속담은 어떤 상황, 그림을 통해 구축되는 하나의 은유이다. 사람들은 속담을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다. 속담은 우리의 무의식을 움직인다. 어떤 형태, 기호들을 함께 알아보기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어디서 태어났던 상관없이 말이다.”고 언급한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집적을 통과하면서 증발되지 않고 살아 있는 설화와 속담이 가진 함의는 이슬기의 작업에서 통영 누빔 공예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수공적인 방법으로 시각화된다. 작가는 ‘이불’에 대해 “꿈과 현실의 경계선인 장소이자, 꿈에 영향력을 행하는 주술적인 조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는 잠을 자는 행위를 위한 쓰임을 지닌 물건으로써 이불은 현대적인 미감의 시각언어와 공예가 지닌 촉각성과 결합되고 간결하고 해학적인 체계를 이루는 속담의 서사를 응축한다.

누빔 장인과의 작업 이외에도 이슬기는 결이 다른 다양한 협업들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과거로부터 소재 또는 재료를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사라지는 언어와 문화를 지속하게 하는 방식을 모색하면서 그 여정을 작업으로 끌어오는 것으로 확장한다. ‘바구니 프로젝트: W’는 멕시코의 오악사카 북부 지역의 작은 마을 산타마리아 익스카트란의 장인과 함께한 작업이다. 멕시코 소수 공동체의 사라져가는 주술문화와 언어는 이들의 상징적인 물건인 바구니와 그것을 직조하는 이들과 그 과정이 일종의 조형물과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업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그러나 지금은 소멸되어 가는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현재로 불러내고 이것들의 원시적 형태와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이는 어디론가 질주하는 이 시대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과 존재를 소환하며 이들의 사라짐을 유예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현재의 삶을 환기시킨다.

일상과 사물에 대한 탐색에서 시작된 이슬기의 작업은 그것들에 대한 고정된 개념들을 허물고 새로운 바라보기를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순수미술과 공예, 추상과 구성, 전통과 현대, 문학과 미술,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들의 혼성된 서사를 구축하는 촉각적인 직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직조는 이슬기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방법이자 장치로서, 작가가 언급했던 “엮기”, 즉 직조가 가진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이전 동작과 이어지며 다음 동작을 예견하는 리듬 속에 펼쳐지는 서술적 특징을 포함한다. 다 장르간의 혼성과 변환이 유연하게 작동해온 작가의 작업방식과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본다면 ‘올해의 작가상’은 이슬기에게 앞으로 작업의 반경을 보다 넓게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지금이 그 어느 때 보다 적절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