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ho Jung, A Women of the Sea and the other 32 works, 2017, acrylic on Korean paper, 80 x 120cm © MMCA

정재호의 2010년작 〈혹성〉 은 그가 해온 작업의 관심사와 주제·태도·개념을 잘 알려주는 표지라고 할 수 있다. 희끗희끗 굵은 눈송이가 사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거친 눈밭을 달리는 구식 증기기관차가 화면 오른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것은 해방공간 사진 자료 가운데서 선택한 이미지인데,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 그는 증기기관차가 눈밭을 “표류”한다고 말한다. 정재호가 보기에 과거사의 특정 순간을 지시하는 이미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 살다가 죽어 없어진 게 아니라, 마치 유령처럼 우리 앞에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 우리/현재의 방향·좌표·이념·욕망을 트집 잡는다. 이미지는 역사이고 심지어 우리 자신이다: “나는 차가운 눈밭을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이미지에서 그 어떤 것보다 심한 고독감을 느낀다. 그것은 정해진 궤적을 달리지만 결국 종착지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같은 것이다.”

내가 화가 정재호를 《올해의 작가상 2018》에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자의적인 해체·재구성·해석을 앞세운 일종의 심상 풍경이 유행하는 우리 동시대의 회화 상황에서, 그는 태도 및 개념 차원에서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파트 연작 〈청운시민아파트〉(2004), 〈오래된 아파트〉(2005), 〈황홀의 건축〉(2007), 〈열섬〉(2017)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세세하게 대상과 그 주변 맥락을 탐사한다.

특히 도심 재개발에 밀려 헐려나가는 낡은 아파트나 도심 내 서민용 집합주거 빌딩을 세밀한 필치로 그려냈는데, 여기서 그의 목표는 사진처럼 정확하게 풍경의 파사드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역사와 내력과 체취를 머금은 포괄적인 환경 또는 살아 숨 쉬는 육체로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아파트는 저기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개인/집단/역사 와 함께 호흡하는, 우리 자신의 몸 그 자체이다. 아파트 연작과 더불어 잘 알려진 것이 아키비스트와 같은 자세로 한국근현대사에 관한 특정 사진이미지를 선택해 그린 연작 〈아버지의 날〉(2009), 〈혹성〉(2011), 〈먼지의 날들〉(2014) 이다.

글머리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연작에서 정재호의 과거/이미지는 유령이나 안개처럼 우리/현재를 둘러싸거나, 우리의 삶을 폐허 한가운데로 자꾸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화가가 심해에서 건져 올린 과거/이미지를 통해서, 수면에서 흔들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우리 자신을 어렵사리 만난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근현대미술사의 거시적 판도 안에서 정재호의 작업이 전통매체 및 미학과 관련된 맥락화된 성찰의 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20세기 수묵화와 관련된 실천과 담론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우리 화가들에게 내면화된 식민주의 미학을 해방 이후에조차 버리지 못했거나, 그에 대한 극단적 반동으로서 과거 문인화 미학을 교조처럼 떠받듦으로써 현대 삶과 회화를 접목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동시대에조차 수묵화가들에게는 한편으로 식민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민족·전통주의를 근본 차원에서 해체할 감각과 안목·역량이 과제로서 주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서화라는 고전예술의 미학을 밀쳐두고서 서구식 시각예술의 체제와 문법·관례를 규준 삼아 근대화의 여정을 밟아오는 동안, 지필묵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화가가 과연 자신의 몸을, 현실을, 세계를 오로지 자기 육신의 감각을 통해 새롭게 받아들이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해석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정재호의 그림그리기는 한국근현대미술사 즉 시서화 이후의 미술사에서 돋보이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6월에 열렸던 개인전 《열섬》에서 그는 홍콩에서 보고 겪은 집합 주거 건물을,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보다도 더, 그 건물 구석구석을 칠하는 페인트공보다도 더, 심지어는 거기 사는 사람보다도 더 깊이 관찰하면서, 그림 기계가 되어, 그렸다.

다소 과장하는 듯이 들릴 수도 있지만, 정재호는 20세기 한국 수묵화(지필묵 그림)의 역사를 통틀어 1950년대의 이응노 다음으로 지필묵이라는 전통회화의 매체를 쓰면서도 자신이 속한 시간대의 문제 안에서 동시대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익히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통해 도시와 도시 삶이라는 늪에 뛰어든 거의 첫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이응노는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줄곧 우수에 잠기거나 적막감이 감도는 풍경화를 중심으로 참여했지만,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안에는 도시 삶을 배경으로 곤고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서민계층의 일상을 활달한 필치와 즉흥적인 리듬으로 담은 생기발랄한 풍속화를 제작했다.

해방을 전후하여 그는 식민주의 규범이나 맹목적인 고전주의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누추하면서도 발랄하게 세속 삶이 펼쳐지는 거리로 나아갔다. 그것은 세계의 늪으로 자기 몸을 던져 자신의 손과 발, 눈과 귀와 코와 피부를 통해 세상과 맞부딪치기, 그렇게 해서 비로소 얻게 되는 생생한 감각과 감흥으로 그림을 그렸다. 정재호 역시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역사와 전통이 교시하는 것을 물리치고 그 대신 “몸으로 가서 만나는 것”과 대화했다. 문인화 이념이 강조하는 흉중일기(胸中逸氣)나 사의(寫意) 대신 정재호의 작업에서는 화가의 몸이 지닌 감각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이 곧 매체가 되었다. 이때 비로소 화가의 몸은 세계와 예술을 잇는 매체가 되고, 여기서 감각과 매체의 근대성이 비롯한다

한국의 수묵화가들이 20세기에 놓친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유럽식 미술개념을 통해 시각차원의 근대성은 얼핏 보기에 해결했는지는 몰라도, 감각과 인식, 태도, 그리고 몸 전체의 차원에 관해서는 질문할 줄 몰랐다. 1950년대에 이응노는 흉중일기·사의라는 관념적 투사와 재구성을 뿌리치고 자기 몸이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맛본 것에 즉각 반응하며 자기 감흥을 더해 시원시원하게 수묵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갔고, 거기에 더해서 정재호는 실제 풍경이나 사물이든, 한국현대사의 문맥 안에서 어떤 순간에 생산된 몇 장의 이미지이든, 그것을 다만 세계에 관한 하나의 그림자가 아니라 도리어 세계에 과거든 현재든 관여하는 엄연한 육체라 이해하고 탐구한다.

정재호가 어떤 대상에 육박하는 핵심적인 개념은 일종의 생생함인데, 이 생생함 또는 생기라는 것은 대상의 외관을 묘사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오히려 화가의 몸과 세계가 맺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요컨대 이응노와 마찬가지로 정재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육신을 일으키고 감각을 곧추세워 세계의 모양·소리·냄새·맛·질감을 실질(實質)로서 맞이하는 일이요, 삶과 죽음의 낌새 볕과 그늘을 알아차리려는 몸가짐이자, 자기 몸 안팎의 모든 존재와 어울리려는 마음가짐이다(근대는 그러한 몸과, 그 몸이 여는 감각, 그리고 그 생생한 감각을 통해 해석하는 세계를 통해 생성된다. 수묵화가들이 이 점에 관해 온몸으로 깨우치지 않는 한, 그들이 말로는 그토록 벗어나고자 하는 식민지근대성의 트라우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 예술가는 예술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자기 몸을 열어야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