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름다움이다 –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전부이자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 – 존 키츠(John Keats, 1975-1821)1
존
키츠의 불가사의하면서도 사려 깊고 가끔은 도전적이기도 한 ‘아름다움’과 ‘진실’의 덕목에 대한 말들은 상상 속 고대 그리스 도자기의 경우처럼
예술로 체화되며, 이것은 초기 이수경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던 기본적인 이분법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름다움’ 혹은 ‘진실’의 각각의 정의에 관한 것이기 보다 광범위하고 상대적으로 그것들이
새로운 개념이나 사물, 문맥들에 적용되었을 때 이 개념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창의적인 발전 과정은 생성의 지속적인 상태를 다룬다는 명백한
사실로 인하여 절대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미학적 목표를 향한 도덕적 진행과정으로 인식된다. 완전함은
결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혹은 따라가기 위한 용이한 방법이 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파라다이스
호르몬, 2008》전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작가에 대한 탐구로서 설명하였다.2
키츠의
시에 응답하듯이 그녀의 대표적 작품이자 현재까지 진행 중인 작업 〈번역된 도자기 Translated Vase,
2002/2006-〉는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설치되어 있으며 영상과 사물들이 상호교환하고, 2001년
처음 소개된 이래 한국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도자기는 작가가 세계를 향해 질문하는 행위의
매개가 되어 왔다. 이 작품은 이행에 대한 은유를 지니고 있으며 문화의 차이에 대한 것, 그것들의 조화에 대한 것, 서로 대립하고 다른 이미지들을 마법처럼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우아한 곡선과 백자의 매끈한 표면 질감은 여성의 신체를 암시하며 이는
균열이 나있고 어색하게 재구성되어 고통과 역경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또한 이것은 동시에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키츠의 경구에 내재되어 있는 균형처럼, 혹은 더 단순하고 대칭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처럼, 유기적인 분열의 모티프와 그것의 반영은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수경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이수경은1992년 서울과 도쿄에서 개최된 첫 번째 개인전 《나와의 결혼 Getting
Married to Myself, 1992》을 통해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나에 대한 필요성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을 강하게 표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이수경이 자라온 환경은 이 아이러니한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고립된 남쪽의 섬 제주도에서 자란 그녀는 늘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홀로 지내야만 했고, 외로움과 싸울 용기가 필요했다. 이수경은
이를 위해 드로잉을 통해 또 다른 세계 그리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그려냈다. 그녀는 “5살 무렵, 마치 나는 이것이 나의 업보인 것처럼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3고 말한다. 불교
가정에서 자란 이수경은 불교의 가르침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작인 〈가장 멋진 조각상 The
Very Best Statue, 2006〉을 보면 그녀가 고정된 하나의 종교에 대해 매우 회의적임을 보여준다.4
모든
결혼이 그렇듯이 그녀가 걸어온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수경이 걸어온 여정은 그녀의
믿음직한 ‘도플갱어 doppelgänger’인 작가에 의해
이끌어져 왔으며 그녀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새로운 시도와 실수가 반복되는 먼 길을 항해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해 자기 발견과 타인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발현을 행한다. 베르길리우스가 이끈 단테와 같이 예술은
그녀가 작업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1963년생인
이수경은 한국에서 여성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처음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세대에 속한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모더니티는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는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대신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한국의 예술은 상당히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5 그 결과 ‘현대’ 미술은 고전적인 회화의 진화이거나 혹은 민속 미술을 정교하게 하는 것에 기반하게 되었다. 한국전쟁(1950-53)이후 국가는 분단되었고 중국과 (구)소련은 북측에, 미국은
남측에 각각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반쪽이 된 나라 양쪽 모두에서는 군사적 폭동 일어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남쪽의 문화적 상황은 프랑스로부터 연유한 ‘국제적’ 추상
미술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또한 그 이후 제국주의로 가장한 미국과 일본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6 이 시기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이나 이우환(李禹煥, 1936-)과 같은 작가들은 나라를 떠나 작업을 시작했고 국내에 남은 작가들은 국제주의 양식으로부터 비롯된
속이 텅 빈 보편주의와 1980년 광주학살과 계엄령 선포 이후 규합한
‘민중’ 미술 운동으로 대표되는 좌파 계열로 양분화되었다.
이 엄격하고도 해소될 수 없는 극단적 이데올로기적 상황 속에서 개인에 대한 탐구와 솔직한 자기 비평 그리고 반성이 가능한 작은 틈새
공간이 존재했다. 사실 그것은 진실도, 아름다움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수경의 작업과 그 발전 과정 그리고 그녀와 같은 세대인 다른 작가들의 작업 역시 바로 이러한
교착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수경은 1989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이 시기 ‘어떤
교수도 나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예술의
아방가르드적인 모델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도 그녀는 “백남준의 작업을 정말로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작품의 중요성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고 단호히 말한다.7 이보다 이시기
그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설치미술가이자 디자이너 그리고 제작자로 활동하며 일부 작품들을 대중문화와 협업하고 있는 최정화(1961-)였다. 그녀는 “많은
젊은 작가들이 최정화의 집에 모이곤 했다. 그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실험영화와 최신 예술 서적 그리고
잡지들을 공유했다. 나는 현대미술을 학교가 아닌 그에게서 배우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1990년대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한다.8
사실
이 시기는 이수경에게 있어 혼란의 시기였다. 벌거벗은 채 회전하는 와이어로 두른 갑옷을 입은 신부의
모습을 한 인형이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 전시장의 중앙을 차지하였고 이 신부는 벽에 고정된 꼬인 형태의 문양들이 휘둘러져 있는 유리 그릇들로 가두어져
있었다. 그 다음 제작된 작품 역시 냉소적이었으며 덫이 지니고 있는 현실에 가까운 환상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세련되고 단정하게 재단된 알루미늄 와이어로 엮은 껍질로 만들어진 작품 〈갑옷 Armor, 1993〉 절대 닳지 않을 것만 같이 눈부시게 장식된 하이힐로 된 〈하이힐의 죽음 Death of High-Heels, 1993〉과 같은 작품들은 일상의 고통들을 암시하는 듯 했다. 이후 이수경은 남편의 직업 관계로, 뉴욕으로 이주하여 1990년대 초 2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아이를 출산하였고 이 때는
거의 작품을 제작하지 못했다.
1996년
이수경은 한국으로 돌아와 사랑에 대한 잔인한 예술적 동화와 결혼, 함정과 욕망에 관한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지속하였다. 〈백설공주 바로잡기 Snow White Revision,
1995〉는 ‘보석으로 된’ 공주의 왕관이 부드러운
분홍색 풍선 껌의 거친 막들로 차 있는 작품이다. 또 〈21세기의
여왕 Queen of the 21st Century, 1996〉은 마치 못난이 자매가 입을 듯한 두
개의 살덩어리와 같은 핑크색 실크 자켓이 벽에 부착된 코트 걸이에 걸려 있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불안정함은
〈손톱 꽃 Nail Flower, 1996〉에서도 드러나는데, 여기서
마녀 같은 여왕의 긴 손톱을 빼서 만든 것 같은 ‘연꽃 송이’는
아름다움과 역겨움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위협적이고 초현실적인 몽타주로 나타난다. 또한 이것은 소변으로
반쯤 채워진 와인 잔의 가장자리에 균형을 잡고 있다. 이보다 더 혼란을 주는 작품은 계단에 두 개의
인형이 던진 설치 작품인 〈먼 길 이야기 Story of Munkil (long journey), 1992〉이다. 여기서 설치된 녹화된 이야기들과 관객들을 위해 마련된 의자들은 결코 행복하거나 도덕적인 결말을 보여주지 않으며, 동화들은 혼합되고 마구 뒤섞여 폭력적이고 냉소적이며 모순된, 그리고
끝이 없는 듯한 그 무엇으로 변화한다.
〈초록색
신발을 신은 부족 Green Shoe Tribe, 1998〉은 뉴스 매체와 가짜 인류학 그리고 감각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혼란스러움을 내포한 글들을 패러디하여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거의 빈 공간 속에 이전에 제작했던 만화와 같은 폭력적인 드로잉들을 투사한 설치 작품이다. 그 너머에는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나오고, 그 목소리는 모두가 초록 색의 신발을 신은, 오늘날 북아메리카나 알래스카 지역에 거주하는 토착민들 혹은 독일의 작은 마을 혹은 한국의 초록 신발 부족의
조상들로 추정되는 유목민들을 발견한 사건을 ‘기록한’ 뉴스를
읽는 듯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공간
속의 창문 바깥으로는 공원이 펼쳐지는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반대편 공간에 마주보고 있는 유리에 거대한 사진을 부착하여 마치 바깥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설치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어떤 실재 혹은 본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곳에는 진실이나 아름다움을 위한 작은 공간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에도
작가-여성-아이로서의 끔찍한 악몽은 계속되었다. 실재의 재현과 충돌하고 있는, 보다 더 거친 시도인 설치 작품 〈코끼리
구조대 Elephant Rescue Team, 1996〉에서는 화염에 둘러 쌓인 험악한 코끼리가 그려진
작은 그림이 벽 높은 곳에 걸려있다. 그림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놓여 있고 밑에는 이미지에 그려진
불을 끌 수 있을 것만 같은 물이 든 양동이가 위치하고 있다. 이 설치 작업은 그녀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불의 모티프와 파괴적인 성향이 드러난 예이다. 그녀는 ‘나는
불을 그림으로써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10년
후에 제작된, 2006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중인 연작 〈불꽃
Flame, 2006-〉을 보면, 불은 다른 종류의 힘,
말하자면 정화와 생성에 관한 것으로 변화하였다.9
〈미니마우스
사진 Colour Blindness Test for a Blind Minnie Mouse, 1998〉는
보기 드문 이수경의 퍼포먼스 작품으로 처음에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가 1965년 선보인 주요 작업인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의 패러디로 작업으로 인식되었다.10 보이스의 팔에 안긴 박제된 토끼에게 진정한 상상력을 동원한 애정을 보여주었으며
꿀에 덮인 머리는 자연, 치유, 살아 있는 물질에 관한 것을
내포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수경의 작품과 같은 위로의 개념은 드러나지 않는다. 퍼포먼스에서 이수경은 미키 마우스의 아내이자 디즈니사의 캐릭터인 미니마우스를 팔에 들고 있는데 그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이전에 입이 없는 헬로우 키티를 선보였던 것처럼 눈 부분은 훼손되어 있으며, 이러한 절단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귀엽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눈이 없는 가상의 창조물에게 색맹 검사를
시행하고 이 때 작가 본인의 눈은 감겨 있지만 눈 위에는 마치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크고 매력적인 눈이 그려져 있는 상황을 통해 이수경은 오랜
시간 남성의 거장들이 지닌 부조리한 권력에 도전하고 여성은 여전히 무시당하고 평가절하되었던 현실을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여전히 많은 젊은 여성
작가들이 갇힌 상태에서 귀엽고 매혹적이기까지 한 저급한 문화와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이 퍼포먼스가 갤러리가 아닌 변기 받침대 위에 앉아 행해졌다는 사실은 격분과 혐오의 감각을 더한다. 잠시
동안 그녀의 예술은 작업을 위해 너무 많은 타협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예술 공간 속에서 갈
길을 잃었고 그 곳을 빠져 나갈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이
때 이방인으로서 외계, 다름, ‘낯설음’과 연결되어 있었던 그녀의 폭넓은 개념들은 이후 이수경의 예술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녀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변인으로서 느꼈던 ‘다름’에 대한 감각은 끊임없이 회귀에 대한 강인함과 후회를 만들어 냈다. 〈순간
이동 연습용 그림 Painting for Out of Body Travel, 2000-2002〉는 1960년대 개념적 지시 작품에 대한 패러디로 이해되기도 했으며 동시에 새로운 예술적 관점을 드러내는 시작점으로
인식된다.11 키치한 풍경을 그린 회화의 형상들을 혼합하여 그것을 두 부분으로
다시 나누었는데 추상성은 확장되고 색의 선은 약화되면서 육지, 해안선,
바다, 수평선, 하늘은 두 개의 분리된 회화
속에서 서로 연결된다. 그녀는 어떤 하나를 또 다른 실재로 투사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낸 것이다.12 이수경은 작품의 정확한 감상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작성하였다: “긴장을 풀고 그림의 중앙을 어지러워 질 때까지 바라 보세요 (…) 매일 연습하면 언젠가는 서로 떨어진 그림의 양쪽이 하나로 합체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순간 이동을 하여 그림과 똑같은 풍경 속에 착륙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림 속의 폭포나 강 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순간 이동 연습용 그림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헬멧, 보호대 그리고 구명조끼를 꼭 착용하기 바랍니다”.
한편
〈USO 2004 (미확인 서울 물체 2004 Unidentified
Seoul Object 2004), 2004〉(삽도13)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불운한 소녀는 도시를 낮게 비행기는 UFO의해 납치되면서 이 설치는 일종의 ‘추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곧
이어 “서울의 아름다운 빌딩들이 곰팡이처럼 번식하기 시작하고(배의
표면에서부터) 그것은 마치 순교자의 후광인 것처럼 보인다(…)”13 오직
그녀의 옷과 시계 그리고 반쯤 먹은 초콜렛 바 만이 남아 있다.” UFO는 소녀를 데려감으로써 〈USO 2004 (미확인 서울 물체 2004)〉로 변환되고 ‘시간은 멈추고 공간의 표면은 찢겨 나간다’. 완전히 굳어 있는 표정이
아닌 얼굴로 작가는 그녀 스스로의 소멸에 영원성을 부여하였다.
이수경은
이시기 자신의 마음 상태를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상당히 불행했음을 이야기한다. 그 결과 그녀는 – 예술에
대한, 자신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불만족을 표현하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면밀히 분석하고 그 요소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행하였다. 이수경은 확연히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접근을 위하여 발전적인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였다.14 부분적으로는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 개념과 ‘만다라 테라피’(매일 적어도 만다라 이미지가 포함된 한 개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라고
알려진 심리치료 방법을 통하여 그녀는 자신의 드로잉 작업을 확장시키고 종종 상처 입은 캐릭터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대상들을 창출해냈다.15 또한 그녀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서에 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큰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그녀는 니체의 가치에 진실의 객관성에 대해 묻는 부분들에 집중했다.16 라틴어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업보를 의미하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적 사랑’과 같은 개념이 지닌 정신을 끌어들여, 니체는 38세의 나이에 “무엇이
필요하고 그 안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 부정적인 면들은 모두 날려버리고 언젠가는 긍정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였다.17 이수경이
비록 그것에 대해 완전히 인식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녀 역시 같은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정신과 육체를 합치고 싶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보다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싶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18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작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연작
〈번역된 도자기〉의 첫 번째 작품인 〈번역된 도자기 알비솔라 Translated Vase Albisola,
2001〉는 위에서 언급한 전환을 이루어냈던 대단히 중요한 단계이다. 알비솔라에 위치한
이탈리아 도자기 센터의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이수경은 도공인 안나 마리아 파세티(Anna Maria
Pacetti)와 만났고 그녀는 이수경의 설명 하에 18세기 조선시대 양식의 백자 12개를 제작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19 파세티는
이수경이 설명해주는 것 이외에 한국의 예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이수경은 도자기와 관련된 시를 번역하여 파세티에게 낭독해주었다.20 파세티는 이에 근거하여, 또한 유럽
도자기에 영향을 준 아시아에 관한 과정을 수학한 데에서 형성된 감성을 더하여 비물질화와 체화의 순환 과정에 집중하였다. 그것은 도자기를 텍스트로, 이를 다시 번역하고 다시 변형하여 재물질화하고
다시금 이를 도자기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도자기로서
그것의 질적인 측면을 놓고 보자면, 이러한 혼성은 작가가 한국의 엄격한 전통적 미학의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또 그것과 함께 나란히 전시된 거대한 ‘재고 정리 세일’이라는 배너는 그것이 동양 예술의 숙련된 기술로
된 모조품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수경에게는 최종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12개의 도자기는 가상의 이웃과의 일시적인 만남의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를 종합하려는 것도, 후기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의 문화교류를
나타내려고 한 것도 아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효력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지역적 스테레오
타입을 엮어보려는 시도이다’.21 그러므로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이해하냐의 문제는 관찰자의 관점과 지식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적인
과도기에서 예술의 통제로부터 일시적으로 물러서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것이 한국 전통 미술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관심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은 작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속적인 탐색의 일부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지난250여 년 간 도전 받아온 서구 문화의 헤게모니 속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지역적 구분에 기반해 있는 미학 체계가 모더니티와 현대성의 삐걱거리는 메타-서사 속으로 통합됨을 의미한다. 비록 이것이 주류의 비평계나 예술
시장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아시아(그리고 ‘비서구’라 불리는 다른 국가들)의
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수경은 자신이 지닌 전통 미학을 현대미술가로써 그녀의 작품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시험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오늘날 제작되는 전통 도자기들은 수 백 년 전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자기 장인들은 도자기터에 거주하면서 전통적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이 만든 것들 중 상당 부분을 깨버리는데 이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이수경은 이것을 ‘도자기 잔여물’이라
부른다. 이수경이 〈번역된 도자기〉 연작의 다음 단계에서 행한 것은 이러한 지역들을 방문하여 최고의
장인들이 버린 파편들을 수집하고 완전히 새로운 작업에 이것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들의 크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매우 다양한데, 이것은 어떤 사이즈로도 제작 가능한
알루미늄 재질의 틀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붙이는 전통적인 방법을 따라 에폭시 레진이 서로를
접합시키고 있으며 때로는 괴이하게 때로는 해학적인 바로크적 몽타주처럼 나타나고 이것들은24캐럿의 금으로
덮여 있다. 종종 이 작업들은 고전 조각들을 암시하지만, 몸의
자세는 조금씩 왜곡되어 있다. 어떤 작품의 경우 ‘미키 마우스의
귀’, ‘도널드 덕의 부리’와 같은 만화 캐릭터들의 특징이
드러나거나 작품의 표면으로부터 튀어나오게 하여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와
같은 이수경의 작품은 훼손되고 폭력적인 그리고 사춘기 전 단계의 모습을 한 인형을 제작한 한스 벨머(Hans
Bellmer, 1902-1975)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도자기의 조각들을 완전히 박살 내어 관람객들을 초대하고 그 파편들을
다시 모음으로써 화해와 치유의 행위로 치환하는 오노 요코(Ono Yoko, 1933-)의 〈조각 이어
붙이기 Mend Piece, 1966〉와 작업과의 유사점도 엿보인다.22 이
작업의 가장 놀랄 만한 점은 그것이 지닌 불편한 우아함과 유기적인 확산 그리고 거의 무한대로 계속 확장하여 복제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들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마치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느껴지며 합성된 구조는 현미경 아래로 보았던
세포들의 분할과 증식을 떠오르게 한다.23 어떤 작품은 매우 작고 때로는
매우 크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환상적이고 해학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한국의 전통 미학이 지닌 순수함과 균형을 재고한 것일 뿐 아니라
작가의 아이러니한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그녀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스스로의 강한 자신감이기도 하다.
이수경의
도자기 작품은 드로잉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시기 이수경은 18세기 조선 회화의 간결한 붓 선을 사용하여 이전부터 지속해온 만화와 같은 드로잉 작업들을 늘려나갔다. 또한 여기에 전통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의 모티프들을 혼합하였다.24 〈불꽃 Flame, 2006〉은 2006년에 제작한 드로잉과 같은 회화로 한지에 진사를 이용하여 그린 것이다.
돌을 부셔 만든 녹슨 듯한 갈색의 자연 색료를 풀과 섞어 그린 이 방식은, 세간에서는 치료
혹은 종교적 목적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특히 무속신앙과 불교의 부적을 그리는데 이용되었다. 이수경은 이를 ‘드로잉이기 보다는 흔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녀는 접근 방법에 있어 매우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명상에 가까운 자세로 매일 같은 시간 작업에
임했다. 초기의 작품들에서 불꽃은 열정에 대한 은유 혹은 중심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에너지에 대한 은유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불규칙적으로 다른 모티프들과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번역된 도자기〉와 함께 종이의 표면을 가로 엮으면서도 공허한 물결들이 이미지들과 합쳐지면서 강한
무의식적 요소들을 만들어냈다. 이것들은 거의 메시아적 성격을 지니기 시작했으며 여기서 작가는 문자 그대로
심오한 진실을 찾아내려고 하는 예언자적 존재가 된다. 재현된 것들은 매우 다양한 영적인 전통을 반영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이수경은 우는 여인의 모습에 대한 형상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와 신부
그리고 성인이 마구 혼합된 혼성적 모습을 띤다.25 이와 같은 회화와 관련된
드로잉들은 그녀가 소통하고 자신의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주는 세계와의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측면에 대한 사고와 감정, 기억과 꿈, 보다 더 나은 관용을 위한 일종의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미완성된 연작인 〈가장 멋진 조각상〉과 〈앱솔루트 제로
Absolute Zero, 2008〉와 같은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수경의 몽타주 기법들과 그 과정은 여전히 그녀가 사고하는 비판적인
방법이며 틀림없는 성상파괴의 경계에 위치해 있음에도 해학을 내포한다. 그녀는 적어도 초월의 가능성과
보완 할 것들 그리고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지 전 까지는 매우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2009년 이후 ‘정화’의 주제는 궁극적인 ‘변화’의 개념과 결부되어 소리나 움직임에 의한 공간들이 이수경의 작업에서 뚜렷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수경은 새롭게 한국의 무속신앙에 강하게 집중했으며 동시에 전통 음악을 작업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조국과 자유는 Mother Land and Freedom Is, 2009〉는
건물과 장소에 대한 기억이 모두 극도로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 전 국군기무사령부 자리, 즉 기무사터에서
열린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식민지 시절 이 자리는 일본국군병원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국군기무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이 곳 지하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정부에 대항한 시위를 펼친 사람들 역시 이 곳으로
끌려왔다. 작품의 제목은 국군기무사령부의 군가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수경은 이를 한국의 전통 궁중음악인 ‘정가(正歌)’의 형식으로
탈바꿈시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수경은 정가와 유사한 원칙을 사용하고 풍수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그 장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배해 왔던 부정적인 양(남성)의 기운을 ‘무한한 음(여성)의 기운으로
증폭시키는 가구’를 통하여 공간을 변화시키기를 시도했다. 부지에서
발견한 옛 군인들이 사용했던 카모플라주 문양의 손수건을 틀에 넣고 이수경은 그 손수건의 중심부에 위치한 상징적인 디자인에서부터 많은 수의 기하학적인
드로잉들을 발견해 나가면서 그것을 두 방을 연결하는 단순한 나무 지지대인 문지방 위에 은과 니켈 구슬들의 불규칙한 기하학적 오브제와 어머니의 진주
패턴을 이용하여 카모플라주 문양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미리 그 장소에서 녹음했던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건축과
퍼포먼스, 비디오 기록 작업인 〈언약이 늦어지니 While Our
Tryst Has Been Delayed, 2010〉와 춤과 소리 퍼포먼스 그리고 비디오 기록 작업인 〈휘황찬란 교방춤 Dazzling Kyobangchoom, 2011〉에서는 소리, 특히
음악을 그녀의 작업에서 공간을 비물질화하고 정화하는 중요한 방법적 요소로서 부각시켰다. 이수경의 ‘정가’에 대한 발견과 다른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이 중심에
위치해있다. 〈언약이 늦어지니〉에서 행해지는 궁중 음악 퍼포먼스를 서양의 프로시니엄 스테이지(무대 커튼 앞 무대)에서 듣는 것은 큰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이수경은 젊은 예술가인 마리 정의 순수한 음색에 도취되어 음악에 열정을 느끼고 영적인 감흥을 받아 새로운 무대를
디자인하기로 결정하고 완전한 백색의 소리판을 관객들로부터 떨어뜨려 놓아 어떤 다른 기구나 스피커에 의해서 소리가 증폭되지 않고도 오롯이 소리만을
들을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26 마리 정은 특별히 디자인된 흰색의 한복을
입고 있으며 그녀는 실체가 없는 듯이 하얗게 텅 빈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등장하는데, 그녀의 목소리
이외에는 그녀를 지탱하는 그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정가의 한 종류인 가곡을
부르는데 그것은 짝사랑에 관한 욕망 그리고 갈망의 내용이 담겨 있다.27
한편
〈회황찬란 교방춤〉은 ‘교방 살풀이춤’(두 종류의 전통 음악과
춤이 혼합된 것)의 양식을 따른 춤 퍼포먼스이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일본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중앙역사 자리, 말하자면 복합적이고
상처 입은 역사의 장소를 새로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문화역 서울
284’의 개막식을 알리고 이의 영적인 치유를 위해 제작된 것이다. 여기서 ‘교방’은 조선 시대 존재했던 전통적인 여성 예인인 기생이 거주했던
집을 일컫는 말이다. 또 ‘살풀이’는 대개 무당들에 의해 행해졌던 안에 있는 악의 영혼들을 쫓아내는 의식으로 본래 이 퍼포먼스에 참여한 무용가
이정화가 들고 있었던 것과 같은 하얀 손수건이 사용된다.28 이수경은 이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감독하면서 옛 기차역에 버려진 샹들리에를 재활용하여 그녀가 직접 제작한 작은 팔각형의 무대 위에 설치하여 반짝거리는 빛을 내게끔
하였는데, 이는 극적이고 우아한 고대 무속적 음악과 함께 한데 어우러져 한국 전통 무용의 시간을 초월한
듯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29
이수경은
가장 최근의 설치 작업인 〈쌍둥이 성좌 Constellation Gemini, 2012〉에서 퍼포먼스와
음악을 뒤로하고 다시 도자기와 조각 그리고 회화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수 천 개의 청자 파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만다라의 형상으로 펼쳐져 있다. 거대하고 대칭적인, 착색된
실크 위의 그림은 〈불꽃〉에서 사용된 이미지와 합성된 것이며 전통 불교미술의 도상들이 3D 사진 렌더링으로
그려진 명상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따라 위치해 있다. 여기서 기도하는 듯한 여성의 도상은 이수경의 드로잉에
기반하고 있다. 이수경은 이 일군의 작업 전체를 일컬어 ‘더
혹은 덜 종교적’이라고 설명하며30 ‘나는 느리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은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어떤 작업으로 완성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 과정이 나를 변하게 하고 나의 생각을 바꿔 놓는다. 나는 나 자신을 바꾸고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작업을 한다’고 밝힌다.31
이수경의
작업에서 이와 같은 방법의 변화는 매우 불규칙하며 심지어는 자기 중심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내재된 모티브는 서로 반대 지점에 놓인 진실과 거짓이라고 하는 동일한 것이며 여전히 그 둘은 서로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복제되고 하나는
도덕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다른 하나는 부정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진실은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그 중심에는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그것은 대칭적이기도 하며 예측불가능하고 불규칙적이며
때로는 어색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수경이 매번 그녀를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1.
Keats, John, “Ode on a Grecian Urn,” Lamia, Isabella, The Eve of St.
Agnes, and other Poems (January 1820)
2.
이 전시는 2008년 5월 22일부터 7월 20일까지
서울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렸다.
3.
작가에게 보낸 이메일, 2012년 7월 13일
4.
이 조각의 각각의 버전은 다른 종교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각 종교의 특징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직접 설문조사를 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선정한 것이다. 각각
다른 종교로부터 연유한 신성한 형상들과 의상, 자세 그리고 다양한 신체적 특징들을 정하였다. 설문지에는 서로 다른 조합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정하도록 되어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각 집단들이
혼성적 형상을 한 〈가장 멋진 조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한다. 이 조각상의
서로 다른 4개의 버전은 일본 에치고(2008), 한국 안양(2008), 영국 리버풀(2008), 우크라이나 키에프(2012)에서 제작되었다. 이 연작은 총 12개를 제작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5.
일본의 지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6.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벌어졌던 예술 행사들은 이러한 경향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울 올림픽미술관과 조각 공원에 함께 수집되어 있다.
7.
저자와의 이메일 2012년 7월 14일
8.
Ibid
9.
Hunyee, Jung, Yeesookyung’s ‘Fire Works,’ Iris Moon (trans.), (Seoul: One
and J. Gallery, 2006)
10. Wie
man dem toten Hasen die Bilder erklärt, (26 November 1965), (Dusseldorf:
Galerie Schmela)
11.
글로 쓰여진 지침서를 포함하는 작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작품에 대한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1960년대 초 개념미술의 선구자였던 오노 요코(Ono Yoko, 1933-)에 의해 선보였던 형태이다. Yoko,
Ono, Grapefruit, (New York, 1964)
12.
그림의 한 측면에 위치한 손잡이는 그림을 말고 펼칠 수 있게 하는데 이 작품은 공간에 따라 5미터 넓이까지 펼쳐질 수 있다.
13.
이수경, 작업 노트, 2004
14.
작가와의 대화, 2012년 7월 15일
15.
이수경은 2004년부터 심리치료학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6.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자이다. 이수경은 니체의 개념들과 정신과
육체적 건강 사이의 상태 변화에 관한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7.
Nietzsche, Friedrich, Die fröhliche Wissenschaft, (Germany, 1882),
Williams, Bernard(ed) (trans.), The Gay Science, (Cambridge: CUP, 2001),
p. 157
18.
각주 8번을 참조
19.
한국의 조선 시대는 1392년부터 1897년까지
지속되었다.
20.
Sangok, Kim, “Baekjabu,” Chojeog (1947). 여기서
도자기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은유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수경의 도자기 작업이 비록 균열되고 재형성된
것이지만, 그녀의 기본적 개념을 형성한다.
21.
Yeesookyung in Laurie Firstenberg, “Waiting and seeing,” The 1st Biennale
of Ceramics in Contemporary Art, (August 2001)
22.
독일 출생의 한스 벨머는 왜곡된 여성 인형으로 대표되는 사도 마조히즘적 성격의 조각을 제작한 초현실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23.
이 작품이 지닌 증식하는 듯한 특징은 12점의 〈번식 드로잉 Breeding Drawing, 2005〉과 연관되어 있다. 이 연작은
반쯤 벌거벗은 여인의 도식적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했는데, 두 개의 형상에서 첫 번째 것은 뒤집혀 대칭적으로
복제된다. 세 번째 드로잉에는 4개의 형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복제의 기하학적인 진행 과정은 12점의 작품이 모두 완성될
때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24.
여기에는 고려 시대(918-1392)의 불화에서 나타난 것들이 포함된다. 수많은 종교의 모티프들을 사용한 혼성적 인용은 스타이너가 제시한 인지적 접근과 상응한다.
25.
현자이자 예언자인 작가로서의 형상을 세속적으로 묘사하는 이수경의 특징은 이와 유사한 인도의 시인이자 작가 그리고 화가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형상들을 연상시킨다.
26.
〈언약이 늦어지니〉는 또 다른 층에 놓인 176점의 이수경의 일상의 드로잉을
포함하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슬픔에 잠긴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성모애가’와 어우러져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한다. 이 노래 역시 ‘정가’ 형식으로 마리 정이 불렀다.
이와 반대로 일층의 흰 공간의 벽에 설치된 스피커는 미니멀리스트 오브제 혹은 ‘회화’의 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27.
박희서가 쓴 〈언약이 늦어지니〉 다음과 같다. 언약(言約)이 늦어가니 / 정매화(庭梅花)도 다 지거다 / 아침에
우든 까치 / 유신(有信)타
하랴마는 / 그러나 경중아미(鏡中蛾眉)를 다스려 볼가 하노라.
28.
일본의 지배 기간 동안 이 기생들은 일본 군대에게 매춘 행위를 강요 받기도 했다.
29.
무속적 제의와 믿음은 여전히 한국에 널리 퍼져 있으며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다른 주요 종교들과 겹쳐진다.
30.
작가와의 대화, 2012년 7월 15일
31.
미출간된 작가의 진술, 201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