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시각 표현력, 변덕스런 감각, 성공을 향한 욕망과 반대로
자기 파괴적 성격.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미술가인 경우 이런 특징을 부각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탐욕적이라 할 만큼 작업에 달려들어 작품을 해내는 동시에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는 영원한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이 대중이 아는 유명 미술가의 전형이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는 미술가의 직업적 리얼리티가 있는데,
성실함이 그것이다. 재미없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미술가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어려운 제작 절차, 심층의 에너지와 표현법, 신념과
방황이 왕복 운동하는 비가시적 역학 속에서 작업한다. 우리가 아는 대단한 미술가들이 그런 창작의 역학을
통해 비로소 그 또는 그녀가 되었다. 또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예술적 헌신을 땔감 삼아 여전히 자신만의
작품을 구현해 내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의
대표 중견작가인 함경아를 2024년 미술계의 아이콘으로 꼽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미술을 향한 이 작가의 헌신, 비가시적이고 산술 불가능한 노력과
성실함이 《유령 그리고 지도Phantom and A Map》 개인전(2024.
8. 30. - 11. 3.)의 강력한 신작들로 결실을 맺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볼 때, 그 결실은 당장의 미술계를 넘어 향후 동시대 지각구조와 한국의 정치 사회적·문화적 내력을 파악해야 할 때 특별한
지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전시는 함경아가 2015년 가진 개인전 《유령의 발자국Phantom
Footsteps》 이후 9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국제갤러리의 K1, 한옥, K3에서 이뤄졌다. 공간과
작품의 크기가 큰 규모인 것은 물론이고, 작업 주제의 깊이 차원과 조형 형식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상당한
면모를 갖췄다. 전시작들로는 먼저 함경아가 2008년부터
실행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계에서도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수 프로젝트’ 연작1이 K1에
걸렸다.
“한
명의 미술가가 한 땀 한 땀, 남한과 북한을 연합한다An
Artists Unites North and South Korea, Stitch by Stitch”2 이는 뉴욕타임스가 2018년 7월 26일자
아트 앤 디자인 섹션 전면에서 함경아의 미술을 다룬 기사 제목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자수 프로젝트〉는
함경아가 분단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문제적으로 인식하고 남북한의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며 자신의 창작 절차를 북한 자수 장인들과 연계시킨 회화 시리즈다. 요컨대 이 작가가 한국 현대 정치사적 배경이 깔린 그림 초안을 제작해 제3국
매개자를 통해 북한 자수노동자에게 전달하면, 자수노동자들은 은밀하게 그 초안을 천에 자수로 옮겨 완성한
후 다시 작가에게로 보내는 식이다.
회계와
정산이 불가능한 제작비용이 들고, 정당한 사유나 잘못 없이도 언제든 작가가 논란에 휘말릴 수 있으며, 심지어 위험에 처한 적도 더러 있다. 사실 〈자수 프로젝트〉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단독 회담하고 미국의 트럼프가 북한의 김정은을 향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We
fell in love”3고 말한 과거든, 남북미 긴장이 극한으로 치달은 현재든 매사 유령 같고 매순간이 위기인 예술이다. 함경아는 그 모든 어려움을 십수 년째 감내하면서 프로젝트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 초반 열린 퍼포먼스는 이제까지 작가가 수행한 그 무거운 헌신과 지속에 관한 가벼운 외전外傳일 수 있다.
현대음악가가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악보-드로잉)을 퍼포머들이 K1에
전시된 자수 회화 앞에서 휘파람으로 연주했다. 그 음률과 몸짓은 도보다리에서 들린 새소리처럼, 한때 잠깐 스쳐간 한반도의 불안한 평화를 환기시켰다. 이런 점에서
나는 〈자수 프로젝트〉가 현대미술사는 물론 동시대 미술 어디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작업이라 평가한다.
다른
한편, 이번 《유령 그리고 지도》에는 함경아가 지난 몇 년간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의 취약하고 위태로운
현존, 동시대의 디지털 환경과 아날로그적 잔여에 대해 성찰한 바를 추상 이미지로 표현한 신작들이 선보였다. 그것은 작가의 그간 숨은 노력과 헌신을 우리에게 다른 예술 형태로 경험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옥에 걸린 태피스트리 작품들은 벨기에의 매그놀리아 에디션즈Magnolia
Editions를 통해 제작했는데 작가가 팬데믹에 처한 인류의 슬픔, 이를테면 ‘오호애재嗚呼哀哉’의 심정을 프린트물의 번짐으로 형상화한 드로잉이 원본이다. 그리고 K3의 네 벽면을 압도한 신작들, 수많은 리본테이프와 끈, 물감이 번진 캔버스 천 조각들로 직조된
회화 연작 ‘유령 그리고 지도 / “너는 사진으로 왔니 아니면
기차 타고 왔니?”’가 있다.
코로나
전염병과 남북 관계 경색은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에도 치명타를 가했다. 그 물리적 셧다운의 시간
동안 작가는 협업자들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 그마저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의지하는
것 말고 가능한 게 없었다. 아마 그 경험 속에서 함경아는 우리가 현란한 기술로 구축한 세상의 카오스와
디지털로는 메울 수 없는 실재의 균열을 본 것 같다. ‘유령 그리고 지도 / “너는 사진으로 왔니 아니면 기차 타고 왔니?”’ 작품들에서 무채색 리본테이프가 만드는 직선과 그리드의 견고한 배경은 원색의 파편적이고 유기적인 선들이 만드는
정체 모를 형상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달이 넘는 전시 기간 동안 함경아의 《유령 그리고 지도》를 아주 많은 일반 관람객이 감상했다. 그리고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을 비롯해 해외 유수 미술관과 미술계 관계자들이 전시를 찾았다. 그들은 함경아의
미술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는가. 시각적 표현의 탁월성과 사회의식의 복합성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어떤 유령적 간극에서 구현되는 데 이끌리지 않았을까. 여기에 이 작가의
헌신이 단순히 미술 오브제를 열심히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선 차원이 있다. 그녀의 작업 절차와 그 결과로서
작품들은 현실과 매개된다. 그러나 현실과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함경아의
미술은 현실이 예술의 조건 속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고 발휘하는 절차를 내장하고 있다.
1. 나는
다음 글들에서 함경아의 미술과 〈자수 프로젝트〉를 비평했다. 강수미,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현대미술』, 파주: 글항아리, 2017, pp 30-43, 230-248. Su-Mi Kang,
‘An Aesthetics of Some and Such: Kyungah Ham’s Unfixed Art’, Kyungah Ham: Phantom
Footsteps Exhibition Catalog, Kukje Gallery, 2016, pp 9-21.
2. David Segal, “An Artist
Unites North and South Korea, Stitch by Stitch”, The
New York Times, 26 July
2018,https://www.nytimes.com/2018/07/26/arts/design/kyungah-ham-north-korea.html
3. KBS
뉴스광장, 「트럼프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 2018. 10. 1. 방송.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04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