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원, 〈자-넓이〉, 2023 © 박기원

집과 마당은 일과 놀이와 쉼이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다. 또한 예술작품을 품어주는 곳인 동시에 예술작품을 통해 제 뜻을 드러내기도 한다. 공공예술 작품은 집과 마당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의미를 생성하며 소통을 매개한다. 집과 마당의 성격, 품격을 좌우하는 공공예술의 대표적 사례로 서울역사와 포스코센터, 그리고 종로타워가 있다.
 

박기원의 ‘자 - 넓이’
서울역 사람들을 품어주다


공공예술 작품은 대부분 특정 공간(마당)이나 건물(집)의 역사성 등을 구체적이고 섬세한 서사구조로 담아내려 한다. 그런데, 박기원의 ‘자-넓이’(2003)는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단순한 형상으로 공간을 환기시킨다. 마천석을 다듬어 눕혀 놓고, 스테인리스 스틸을 용접한 뒤 채색해 세워놓았다. 누워있는 ㄱ자 자와 서있는 ㄴ자 자 두개가 공간을 팽창과 상승으로 이끈다. 자에는 눈금이 새겨져 있다. 시간을 지키려는 기차의 신뢰성과 눈금자의 정확성을 연결한 것이다.

이 작품은 조각작품이자 벤치다. 사람들을 품어주는 마당의 가구, 이름하여 스트리트 퍼니처로써 시각적 감상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기능적인 가구역할까지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선다. 만지고, 안고, 쓰다듬을 수 있는 예술이다. 서울역 대합실 안에는 벤치가 많다. 그 벤치에는 팔걸이가 있다.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지만 노숙인들이 눕지 못하도록, 그들의 잠자리로 벤치가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규제하고, 통제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기능적 실용품의 쓰임새다.

금지·통제의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팔걸이를 부착한 대합실 벤치와 달리 박기원의 작품에는 팔걸이가 없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누워 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울역 공간에서 유일하게 눕도록 허용된 공간, 누워도 괜찮은 공간으로 허락된 곳이다. 아니, 눕지 말라는 신호로 팔걸이를 설치할 수 없는 공간이다. 바로 이 점이 벤치와 예술품 ‘자-넓이’의 차이다. ‘자-넓이’는 공공예술이 여느 가구처럼 실용성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서울역사 내부의 노숙인들이 벤치의 팔걸이 사이로 몸을 비틀어서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실감한다. 공공예술 작품이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허용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자율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공공성에 주목하는 이 시대, 공공영역에서 예술작품은 최소한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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