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이르러 예술과 공예의 요소들이 통합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 미술과 공예는 전통적인 예술의 정의와 범주에 도전하며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열어 가고 있다.
생활용품의 범주에 들어 있는 공예는 오랫동안 회화나 조각에 비해 고급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나 여성과 같이 전통 사회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공예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공예 문화에 기여한 이들은 대부분 현재까지도 익명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예술과 공예의 요소들이 통합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 미술과 공예는 전통적인 예술의 정의와 범주에 도전하며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열어 가고 있다.
공예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중반부터이다. 영국의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 혁명에 반기를 들고 수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펼쳤다. 이 운동은 나중에 아르누보(ArtNouveau)와 같은 새로운 운동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조형학교를 통해 예술과 공예의 경계는 더욱 빠르게 허물어졌다. 바우하우스는 일상, 건축, 디자인, 응용미술, 행위 예술을 예술과 동등한 선상에서 보고 예술과 기술을 종합하려 했다. 바우하우스의 교수진으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파울 클레(Paul Klee),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같은 작가들이 활동했으며, 이들이 만들어 낸 단순하고 세련된 현대적 디자인은 건축, 예술, 디자인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제 매체와 형식의 제한이 없는 오늘날에는 예술과 공예를 종합하려는 의식 없이도 많은 예술가가 공예 요소를 적용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개념 미술가인 김수자 작가는 한국 가정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보따리와 이불보를 활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서도호 작가는 천으로 정교하게 자신이 거주하던 집 공간을 만들고 이수경 작가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재조합하여 새롭게 재해석된 도자기 작품을 만든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한국 전통 사회에서도 공예는 그리 주목받는 분야가 아니었다. 20세기 초 근대 교육 도입과 일본 유학으로 서양의 근대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현대적 의미가 덧씌워진 공예는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한국 전통 사회에서 존재해 왔던 공예 분야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근대 한국의 수많은 여성이 자수를 공부하러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이들의 업적은 크게 조명된 바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고등 교육 기관인 이화여대에서 1945년에 처음 미술 대학을 세울 때 회화과가 아닌 자수과로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공예는 자유롭게 창작 행위를 할 수 없던 여성들이 선택했던 분야로 그 위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회화, 조각, 공예사이에 위계가 존재하긴 했지만 현대 공예는 19세기 이후 예술로 인정되었다. 특히 금속공예, 도자공예, 목공예 및 칠공예, 섬유공예, 유리공예 분야가 그랬다. 이 당시에 개최되었던 만국박람회와 일본의 관전은 현대 공예의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의 공예부와 관전 출신 공예가들의 개인전으로 이어지며 공예를 예술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냈던 이경성은 1964년 “공예개론”을 출판하며 한국 근대 공예에 학술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최공호가 최초로 한국 근현대 공예를 다룬 단행본을 출간했다. 199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근대미술: 공예-근대를 보는 눈”전은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까지 창작된 한국 공예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해 한국 근대 미술에서 공예가 차지하는 역할과 공예에 대한 평가 그리고 이해를 새롭게 했다.
한국 미술사는 회화와 조각 위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2000년대 전후로 근현대 공예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2000년대에 한국의 공예 시장 규모는 연간 16조 원대로 급성장해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공예의 문화산업적인 경제성과 교육적인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청주는 1999년에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처음 개최했다. 그리고 2000년 4월에는 서울에 재단법인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이 설립되었다. 가장 최근인 2021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예를 다루는 공립박물관 서울시공예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러한 기관들은 한국 공예 문화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와 공예 문화의 연관성도 함께 조명한다.
공예는 더 이상 기능적인 물건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적 표현과 문화적 반영의 한 형태로서 탐구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한국 공예 기관들이 협업해 공예와 현대 미술 분야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면 현대 미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