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잘 모르는 공간을 발견하기 매우 즐거운 일이다. 사람들이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색다른 카페와 레스토랑을 찾아가듯, 미술 마니아층도 독특한 예술 공간을 찾아간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의 대안공간과 신생공간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남들이 잘 모르는 공간을 발견하기는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다수의 매체는 대중적이진 않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커피집, 와인바와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이러한 공간은 주류는 아니지만 차별화된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예술 분야에도 이러한 공간들이 존재한다. 마니아층은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 말고도 대중의 인지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색다른 미술 공간을 찾아간다.
지난 9월 프리즈 서울 기간에 진행된 영상 스크리닝 프로그램인 프리즈 필름을 위해 김성우와 추성아 큐레이터는 서울 곳곳 색다른 공간을 선정했다. 2022년 해외 메이저 아트 페어인 프리즈가 서울에 들어오면서 국제 미술계 인사 다수가 한국의 활기찬 예술 현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는 미술계에는 미술품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적 영역, 미술관과 같은 비상업적 영역, 그리고 주류를 이루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권위주의와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활동을 펼치는 대안공간과 같은 비영리 영역이 있다.
두 큐레이터는 올해 프리즈 필름을 위해 한국 미술계의 주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지만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대중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독립 공간을 조명하고자 통의동 보안1942, 삼청동 인미공(구 인사미공간), 한남동의 아마도예술공간과 마더오프라인 네 곳에서 영상 작품을 전시했다. 국내에는 최소 10년 이상 된 독립 공간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두 큐레이터는 프리즈의 방문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위 네 곳을 선정했다고 한다.
2000년에 설립된 인미공은 국내 대안 공간 1세대인 대안공간 루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과 나란히 있다. 2007년에는 보안1942가, 2013년에는 아마도예술공간이 문을 열었고 2022년에는 마더오프라인이 문을 열어 카페와 바, 전시 및 공연 공간을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닌 독립 공간들은 생겨난 시기와 설립 배경에 따라 크게 대안공간 그리고 신생공간이라 부른다. 이들은 우리가 주요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흔히 접하는 깨끗하고 하얀 벽을 가진 화이트 큐브 공간과는 다른 모습에서 출발하여 발전해 왔다.
대안공간
대안공간(代案空間, alternative space)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말 미국 뉴욕에서 처음 생겨나 1980년대 크게 발전했다. 이러한 소규모 비영리조직체들은 당시 미술관, 미술가 협회, 상업 갤러리에서 받아들이지 않던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 실험적 미술과 다원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대안공간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말, 특히 1997년 외환위기로 호황을 누리던 미술 시장이 급격하게 침체되면서 확산되었다. 이 당시 많은 갤러리들은 판매 성과가 불확실한 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 기피했고 그 결과로 신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당시의 미술계의 상황에서 벗어나 실험적 활동을 펼치는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대안공간이 마련되었다.
대안공간은 탄생 당시 비주류로서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이러한 공간 중 상당수는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작품을 위한 장소로 출발했다. 대안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는 다양했지만, 기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 기획과는 다른 방향성을 추구한 독립 기획자 또는 독립 큐레이터들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폐교와 같은 유휴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대안공간을 도심 속에서 버려지거나 낙후된 공간을 재활용해 조성되기도 했다. 대안공간 루프와 같이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는 대안공간들은 꾸준히 성장하면서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은 여전히 과거 지하 다방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생공간
2010년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공간들은 대안공간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 이들은 신생공간이라 불린다. 신생공간은 2008년 금융 위기가 출발점이 되어 1980년 대생들을 주축으로 탄생했다. 이들 청년 작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미술 시장 침체기와 이명박근혜 정권(2008-2016)을 겪으며 ‘헬 조선’과 ‘열정페이’, 청년고용 불안 등을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당시 청년 작가들은 비영리 운영에 중점을 뒀던 윗세대의 대안공간들과는 달리 자생력에 큰 관심을 두며 작품 판매와 유통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전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정부 지원이 이뤄졌던 대안공간 세대와는 달리 신생공간이 생기던 때에 정부 지원은 주로 작가미술장터와 같은 작품 판매에 초점이 이뤄져 공간 운영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크게 축소되고 있었다. 또한 비영리, 비주류적 특성을 지닌 대안공간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험적 성격과 대안적 성격이 퇴색되고 신진 작가에게 비우호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신생공간은 임대료가 싸고 최소한의 설비만을 갖춘 공간을 빌려 활동하고 여러 방면으로 수익을 내고자 했다. 그래서 많은 신생공간들은 카페나 바를 겸 해서 운영되어 왔다.
신생공간의 가장 큰 특성은 원래 전시장으로 설계되지 않은 공간을 일정 기간만 전시장으로 임대해 운영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에서 운영되었던 공간 대부분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미술 호황기가 또 한 차례 지나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프리즈 서울의 개최로 수많은 해외 갤러리가 서울에 입성하고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풍경은 또 한 번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또 어떠한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날지 기대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