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진용은 초기의 드로잉과 아크릴 작업을 거쳐 2013년경부터 유화를 주된 매체로 사용해 왔으며, 필요에 따라 펜과 목탄을 병행했다. 초기 ‘꿈 일기’ 작업에서는 긴 종이나 캔버스에 이미지와 사건을 연속적으로 이어 그리며 꿈의 분절된 서사를 시각화했고, 이후 화면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여러 폭의 캔버스를 연결한 대형 풍경으로도 확장되었다.
유화에서는 물감을 화면 위에서 직접 섞거나 끌고 다니고, 빠른 필치와 세밀한 붓질을 한 화면에 함께 사용한다. 붓질이 사물의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인물과 배경, 식물과 공간의 구분이 느슨해지고, 물감의 흐름 자체가 화면의 리듬을 형성한다. 김성호는 이러한 특성을 비교적 차분한 색조와 자유로운 붓질이 결합된 ‘중성성의 표현주의’로 설명한 바 있다.
작업은 대체로 사진이나 실제 경험에서 얻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시작하지만, 밑그림이 완성된 결과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 범진용은 사진을 참고해 대략적인 형상을 잡은 뒤 작업 중 눈에 들어오는 선과 형태를 추가하고, 화면의 흐름에 따라 색과 면을 조정한다. 우연히 만들어진 형태나 처음에는 잘못된 구성처럼 보였던 부분도 전체 화면과 어울리면 그대로 남긴다.
즉흥성과 우연은 중요한 요소지만, 최종적인 선택에는 작가의 취향과 판단이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그 결과 사진에서 출발한 형상은 그리는 과정에서 점차 변형되고, 재현과 추상 사이의 정도도 작품마다 달라진다.
풍경 작업에서는 이러한 제작 방식이 식물의 생명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름 모를 풀과 숲, 연못, 눈 덮인 들판은 세밀하면서도 방향성이 강한 붓질을 통해 흔들리고 번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풍경〉, 〈눈 오는 날〉과 같은 작품에서 구체적인 장소의 형태는 남아 있지만, 촘촘하게 반복되는 붓질과 제한된 색조, 두꺼운 물감은 실제 풍경에 작가가 느낀 심리적 긴장과 움직임을 더한다. 화면은 대상을 명확한 윤곽으로 고정하기보다 식물과 주변 공간이 서로 섞여 움직이는 인상을 강조하며, 현실에서 관찰한 풍경이 회화적 감각에 따라 새롭게 조직된다.
2019년 이후 비중이 커진 인물 작업에서도 재현과 변형의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 〈까마귀 꽃밭〉, 〈나옹〉 등에서는 인물이 주변 풍경과 함께 거친 붓질 속에 섞여 들어가고, 얼굴과 신체의 세부는 필요한 만큼만 남겨진다. 최근에는 풍경을 덜어내고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이 늘었으며, 비교적 구체적인 형상을 유지하는 그림과 선·색·면이 더 자유롭게 풀리는 그림을 함께 제작하고 있다.
특히 2026년부터는 여러 겹의 물감으로 얼굴을 쌓아 올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번의 붓질과 얇은 표면에 집중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형상을 어느 정도까지 남길 것인지, 붓질과 색이 어디까지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작품마다 새롭게 결정된다는 점이 최근 작업의 주요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