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의 작업은 한국화, 동시대 드로잉, 설치와 미디어 작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전개되어 왔다. 수묵과 선묘를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종이 조형, 벽화, 라이트박스, 애니메이션으로 매체를 넓혔고, 오페라·문학·조선시대 회화·대중문화처럼 성격이 다른 자료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였다. 2017년 한원미술관 전시에서도 이러한 작업은 한국화의 범주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여러 현대미술 장르를 수묵 표현 안에서 연결하는 시도로 소개되었다. 당시 비평은 2004년부터 이어진 드로잉과 음악적 주제, 전통회화 이미지의 결합을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사로 짚었다.
작업의 변화 속에서도 드로잉은 꾸준히 중심을 지켜왔다. 초기 ‘뇌행성’ 연작에서는 기억과 무의식의 이미지를 자동기술적인 선으로 축적했고, 2012년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다룬 작업에서는 음악을 듣는 경험을 시각 이미지로 번역했다. 이후 오페라와 연극, 재즈, 조선시대 회화에 대한 관심은 벽화와 조각,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방(倣)의 개념과 연결하며 기존 작품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해체하고 다시 구성해왔다. 이러한 흐름에서 매체와 소재는 계속 바뀌어도, 외부에서 받아들인 이미지와 감각을 드로잉을 통해 번역하고 재배열한다는 방법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은형의 작업은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까지 포괄하기 시작했다. 2023년 이후 ChatGPT와 이미지 생성 AI를 작업에 도입하면서 자동기술과 이미지 축적에 대한 오랜 관심을 생성형 기술의 작동 방식과 연결했고, 텍스트·이미지·드로잉 사이의 순환도 더욱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2026년 비평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작업의 핵심에 손의 노동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다시 손으로 옮기고, 벽면에 직접 선을 긋고, 종이를 구겨 되돌릴 수 없는 물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디지털 이미지와 육체적 제작 행위가 맞물린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지속성은 김은형의 작업이 특정 매체나 소재에 고정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연속성을 갖게 하는 요소다. 기억을 축적하는 자동기술적 드로잉, 음악과 공연의 시각화, 과거 이미지의 재해석, 그리고 최근의 AI 활용은 시기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모두 ‘번역하고 축적한 뒤 다시 변형한다’는 방법 안에서 연결된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을 드로잉을 통한 “축적, 번역, 변형”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초기 작업에서 최근의 디지털 실험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