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주의 작업에서 회화는 붓과 안료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작가는 벽화, 그래피티, 찍기, 문지르기, 긁기, 굳히기, 붙이기와 같은 행위를 통해 화면을 만들며, 손과 몸의 움직임 자체를 조형 과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초기 거리 작업과 ‘Dots’ 프로젝트에서는 벽이나 건물 외벽에 지문을 반복해서 찍는 방식이 중심이 되었고, 이후 캔버스 작업에서도 손으로 재료를 뭉치고 바르고 꽂고 묶는 동작이 화면의 구조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법은 회화를 평면 이미지로 한정하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과 재료의 저항, 반복되는 노동이 함께 축적된 결과로 확장한다. 작가가 촉감과 목소리를 작업의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료의 선택 역시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양자주는 재개발 지역과 오래된 건물에서 채집한 벽지, 목재, 페인트 조각, 건축 잔해를 비롯해 흙, 가시, 진주핀, 밧줄, 천, 레진 등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사용해왔다. ‘Materials, Busan+Berlin’과 ‘Immanence’에서는 도시에서 수집한 파편을 투명한 레진 안에 고정해 장소와 시간이 남긴 흔적을 보존했고, ‘모든 것의 피부’에서는 영덕과 관악산 등에서 가져온 흙을 분채와 아교에 섞어 캔버스에 여러 차례 스며들게 한다.
재료는 색이나 질감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고 작품이 발생한 장소와 시간, 그곳에서의 경험을 직접 품은 요소로 기능한다. 거칠게 솟거나 패인 표면, 떨어져 나온 파편과 가시의 형태는 작가가 다루는 기억과 소멸, 생존의 감각을 물질 자체로 전달한다.
반복과 리듬은 이러한 행위와 재료를 조직하는 중요한 형식 원리다. 양자주는 지문이나 손자국, 단순한 형상들이 특정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등장하기보다는 몸의 리듬에 따라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사운드 아티스트 하쿠 승호와 협업한 〈Canvas Instruments〉(2013)에서는 캔버스에 연결된 철 스프링과 플라스틱 컵을 통해 그림을 그릴 때 발생하는 진동을 소리로 변환했다.
시각적인 흔적과 신체 움직임, 소리가 하나의 리듬 안에서 이어지는 이 작업은 이후에도 지속되는 감각적 접근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최근 작업에서도 긁기와 두드리기, 반복적인 손동작에서 발생하는 마찰음과 진동은 화면의 촉각성을 강화하며 시각과 청각을 함께 자극한다.
최근의 ‘모든 것의 피부’, ‘Thorns’, ‘불가살이’에서는 이러한 조형 방식이 더욱 응축되어 나타난다. 흙과 안료가 뒤섞인 표면 위에 진주핀과 천이 삽입되고, 엄나무 가시나 밧줄이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평면과 오브제의 성격이 동시에 드러난다. ‘모든 것의 피부’의 반복되는 선과 손자국, 동물이나 기호를 연상시키는 형상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불가살이’에서는 강한 사선과 올 오버 구성, 가시와 진주핀의 밀도 높은 배열이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만든다.
양자주의 작품에서 형식은 재료와 행위, 장소의 기억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진다. 화면에 남은 흔적 하나하나는 조형적 요소인 동시에 작가가 몸으로 통과한 시간과 감각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