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훈 작업의 독특한 지점은 레디메이드나 산업 재료 자체보다, 사물과 인간 사이에 이미 굳어진 관계를 조각의 구조로 다시 편집한다는 데 있다. 레디메이드가 사물을 미술관 안으로 옮기는 데서 출발한다면, 최태훈은 ‘사용해야 하는 물건’, ‘설명서대로 조립해야 하는 물건’, ‘알고리즘이 추천한 물건’, ‘작업을 보조하지만 끝내 사라지는 도구’처럼 사물에 붙어 있는 관계와 규칙을 함께 가져온다.
초기의 DIY 해킹은 이 규칙을 의도적으로 배반했고, 이후 ‘살’은 사물과 재료가 서로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만들도록 통제의 강도를 낮췄다. ‘지지체’와 ‘파수꾼’에서는 관계를 뒤집는 데서 더 나아가 사물, 재료, 작가를 모두 하나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이 연속성 덕분에 작품의 외형은 크게 변해왔지만 질문 자체는 일관되게 이어진다. 누가 형태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조각의 주체는 정말 작가 한 사람인가 하는 문제다.
재료의 자율성이나 우연성을 다루는 조각은 낯선 일이 아니지만, 최태훈은 이를 기능주의와 소비문화, DIY 시스템, 전시 제작의 노동처럼 구체적인 일상 구조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만든다. 우레탄 폼의 흐름만을 강조한다면 프로세스 아트의 계보와 쉽게 연결될 수 있고, 레디메이드의 변형만 본다면 오브제 조각의 연장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는 〈세나 구성〉의 엄격한 자기 규칙, 《남한 앙상블》의 디지털 가상 쇼룸, 〈살-자소상 5〉의 자생적 몸, 《필드》의 공간 전체, 그리고 ‘지지체’에 남은 작업 도구의 음각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조각이 완성된 형태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와 조건이 잠시 만나는 구조라고 본다. 그 때문에 그의 조각에는 완벽하게 고정된 상태보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관계가 자주 남는다. 작가 스스로 “굳건함보다 흔들림을 더 신뢰한다”고 말한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이 관계적 조각의 범위가 제작 방식뿐 아니라 예술 생태계 전체로 넓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집(ZIP)》을 총괄 기획하며 여러 세대의 여성 조각가 16인의 작업을 연결했던 경험은 작가가 개별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협업 구조까지 바라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어 《생생화화 生生化化 : 화두 話頭》(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2025)의 ‘지지체’는 작업실의 도구와 협업의 문제를 조각 자체의 주제로 전환했고,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5)에서 선보인 ‘파수꾼’은 사물의 움직임, 신체의 개입, 재료의 경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최태훈의 작업이 사물을 ‘해방’하는 조각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조각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태훈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6-2017), 금천예술공장(2019),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2023) 등에 참여했으며,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 《집(ZIP)》,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 《송은 × 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송은, 2026) 등으로 활동 반경을 확장해왔다. 특히 제25회 송은미술대상 본선 작가로 선정되면서 최근의 ‘파수꾼’ 연작까지 기관 전시에서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 역시 특정 재료나 형식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각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를 계속 바꾸어보는 방향에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생활용품에서 시작한 질문이 디지털 이미지와 공간, 재료의 자생성, 협업과 전시 노동까지 이동한 것처럼, 최태훈의 작업은 완결된 답보다 다음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너무 단단하게 고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지금까지 그의 조각을 오래 움직여온 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