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회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를 한 화면 안에서 결합하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는 콜로세움, 파르테논, 미술관과 같은 공공 건축물에 옷장, 화장대, 작업실 등 개인적인 공간과 사물을 삽입하며 현실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풍경을 구성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원근, 시점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장면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기보다 이미지 사이를 이동하며 공간의 관계를 읽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조합을 단순한 콜라주 효과에 머물게 하지 않고, 유채와 붓질을 통해 각기 다른 이미지가 동일한 회화 표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조율해 왔다.
창문과 액자, 거울, 반사면은 이러한 공간 구성을 지속적으로 매개해 온 요소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나 창이 등장하고,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실제 공간이 겹치면서 화면 안과 밖의 관계가 흔들린다. 〈Window II〉, 〈Café Lalo + Studio〉에서 시작된 이러한 구조는 이후 실제 전시장 벽과 흑경을 회화 속에 다시 등장시키는 설치적 시도로 확장되었다.
2020년대의 'Red Scene'에서도 반사와 프레임의 원리는 이어진다. 붉은 가구 표면, 아치, 철제 구조물 등이 시선을 화면 안쪽으로 끌어들이거나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근경과 원경, 실제 공간과 기억 속 장면이 서로 스며든다.
2012년경 시작한 'Fantasma'는 대형 회화와 다른 속도와 밀도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작은 캔버스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과 이미지를 빠르게 기록하는 이 연작은 완결된 구도를 미리 설계하기보다 기억과 연상이 움직이는 흐름을 따라간다. 비평에서도 'Fantasma'는 유화와 드로잉 사이의 성격을 지니며, 초기 드로잉의 즉흥성과 이후 회화의 경험을 결합한 작업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작은 작업에서 발생한 이미지와 모티프는 다시 대형 회화로 이동하고 변형되며, 서로 다른 작품 사이에 반복과 연결을 만든다.
2017년 이후에는 회화의 범위가 인형, 오브제, 영상, 사운드와 설치로 더욱 넓어졌다. 〈Re-portal〉에서는 목조 구조물과 회화, 영상, 부드러운 조각을 함께 구성했고, 이후에는 직접 제작한 헝겊 인형과 일상에서 수집한 사물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 'Red Scene'에서는 이러한 사적 오브제가 대형 유화 속 이미지로 다시 등장하며,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화면과 수채 물감이 스며든 인형의 표면이 서로 다른 매체 사이의 감각을 연결한다.
2021년의 작업을 다룬 비평 역시 오브제, 조각적 시도, 종이 작업과 대형 유화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작가의 중요한 변화였음을 짚고 있다. 이지현에게 매체의 확장은 회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기억과 이미지가 생성되고 다시 회화로 돌아오는 과정을 여러 물성과 크기로 실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