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는 조소를 전공하고
회화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력을 바탕으로 회화와 조각을 분리된 장르로 다루기보다 서로 간섭하는 매체로 사용한다. 초기에는
사진이나 기억 속 이미지에서 발견한 멜랑콜리한 대상을 캔버스로 옮기는 한편, 사라질 것 같은 사물과
잔해를 설치로 붙잡아두었다.
《비스듬한 뼈와 늘어진 말》에서 시작된 이러한 방식은 회화에서는 희미한
이미지와 불완전한 윤곽으로, 조각에서는 기울고 갈라진 형태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닮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느끼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일치를 물질화하는 것이다.
2019년
이후에는 ‘몸’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몸처럼 작동하는
조형 구조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화이트 본〉은 모서리로 서서 옆으로 누운 듯한 형태를 만들고, 〈너의 등으로 내 얼굴이 쑥 들어갔다〉는 세 개의 얇은 FRP 판이
서로 기대고 관통하며 하나의 불안정한 몸을 이룬다.
〈스킨스킨스킨칼럼바디 인 드림〉(2021)이나 〈등허리물결 오버 아이보리 힐스〉 역시 척추, 피부, 다리처럼 읽히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 인체를 재현하지 않는다. 이처럼
구나는 신체를 얼굴이나 팔다리의 외형보다 지지하고 기대고 휘어지고 눕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몸의 상태가
구조와 자세로 번역되는 셈이다.
재료의 사용에서도 같은
태도가 이어진다. 작가는 FRP, 철, 와이어, 석분 점토, 나무, 레진, 시멘트 같은 인공 재료에 물, 모과, 벌집, 마른 잎과
같은 유기물을 결합한다. 〈마이블랙브라운의열병과온천수〉(2024)에서는
말라가며 색이 변하는 모과와 산화하는 철판, 고인 물이 서로 다른 속도로 변화하고, 〈베이지아이보리산맥아래모과그릇〉(2024)에서는 나무와 퍼티, 모과, 빈 벌집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각기 다른 시간을 견딘다.
〈수호신과체커우먼〉(2024)과 〈엮은 물〉(2024)에서도 물과 돌, 실, 와이어처럼
성질이 다른 재료들이 함께 놓인다. 여기서 재료의 변색, 건조, 부식, 증발은 작품의 손상이 아니라 시간이 작품 안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최근
회화에서도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아이보리수레 안 블루스오르간댄스〉(2025)는 나무판을 파내고 그 안에 다른 재료를 채운 뒤 표면을 다시 다듬어,
회화 내부에 실제 ‘뼈’에 가까운 구조를 만든다. 〈레드브라운캐비닛 안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2025)와 〈레드브라운선반
위 상아뼈콜드스킨제스쳐〉는 여러 조각을 캐비닛과 선반 안에 기대고 겹쳐 배치해 하나의 몸이자 풍경처럼 보이게 한다.
최근 개인·단체전에서 반복되는 ‘수레’, ‘캐비닛’, ‘선반’ 같은
구조는 몸의 내부를 보호하거나 무언가를 싣고 이동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결과 회화는 표면에 머물지
않고 뼈와 피부를 가진 물체가 되고, 조각은 단독 오브제보다 여러 존재가 함께 놓이는 장면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