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글은 사물과 사건이 언어를 통과하면서 어떤 이야기로 정착하는지 탐구해왔다. 그의 작업은 특정 사물이나 현상을 글쓰기로 확장하는 흐름과, 한국 근현대사의 기록에서 지워지거나 잊힌 주체와 사건을 다시 불러내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두 방향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사실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사실이 수집되고 명명되며 전해지는 과정이다. 작가는 공식 기록과 개인의 기억, 소문과 상상, 관찰과 오해가 뒤섞이는 지점을 살피며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가 어떤 언어적 조건 위에서 구성되었는지 묻는다.
〈모나미 153 연대기〉는 이러한 관심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초기 작업이다. 김영글은 한국 사회에서 널리 사용된 모나미 153 볼펜에 관한 정보와 일상의 일화,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 허구적 서사를 결합해 기묘한 연대기를 만들었다. 볼펜은 산업화와 압축성장의 시간을 거쳐온 생활용품이면서, 세대별 기억과 소문이 투영되는 매개가 된다. 작가는 사물을 둘러싼 사실과 소문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과장과 생략을 거쳐 그럴듯한 역사로 정착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벽〉, 〈사로잡힌 돌〉, 〈검정〉으로 이어지는 작업에서도 특정 대상에 축적된 이름과 관념, 이야기의 층위를 글쓰기를 통해 증폭하며 사물에 부여된 의미가 언제나 유동적이라는 점을 살핀다.
또 다른 흐름에서는 공적인 기록의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이 허구적 화자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파란 나라〉는 과거 벨기에영사관으로 건축되었다가 남서울시립미술관이 된 건물과 사당 일대의 재개발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작품 속 스머프들은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건축 노동자로 등장한 뒤 노동자, 철거촌 주민, 폭력의 주체, 익명의 군중으로 역할을 바꾸며 한국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떠돈다.
이들의 변신은 개발과 철거, 이주와 충돌 속에서 거주할 자리와 사회적 위치를 잃은 이들을 환기한다. 김영글은 실제 장소와 자료에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끼워 넣음으로써 공적 기록의 빈틈을 가시화하고, 역사 속에서 충분히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한 존재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을 마련한다. 〈해마 찾기〉 역시 지워지거나 잊힌 주체와 사건을 호출하려는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 놓인다.
최근 작업에서는 언어가 기록되고 전달되며 물질적 흔적으로 남는 조건으로 관심이 확장된다. 〈Between Islands〉의 웹 슬라이드쇼,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의 책, 〈빵과 장미와 숫자 0에 대한 생각〉의 텍스트와 포스터, 〈머뭇거리는 사이〉의 손으로 쓴 시, 〈Posted Letter: from Dodo〉와 〈이딴 걸 팝니다〉의 영상·오브제·텍스트 설치는 문장이 특정 매체와 공간, 수신자를 만나는 상황을 구성한다. 〈흔적 사전〉에서는 손글씨의 번짐과 떨림, 도구의 자국, 신체의 운동, 시간의 흐름을 기록의 일부로 다루며 디지털 환경에서 비물질화되는 텍스트를 다시 물질의 차원으로 불러온다.
김영글의 작업에서 글쓰기는 세계를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사물과 역사에 붙어 있는 이야기를 의심하고 아직 기록되지 않은 관계를 발견하는 실천이다.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그의 서사는 누가 기록의 주체가 되는지, 어떤 목소리가 전해지고 누락되는지, 그 흔적을 우리는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