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b.1982) - K-ARTIST
이진한 (b.1982)

이진한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세인트마틴과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런던 UCL 슬레이드미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현재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개인전 (요약)

이진한이 개최한 최근 개인전으로는 《Whispers》(갤러리현대 뉴욕 프로젝트 스페이스, 뉴욕, 2025), 《Lucid Dreams》(갤러리현대, 서울, 2024), 《안녕, 안녕 Hi, Bye》(스페이스 이수, 서울, 2023), 《마사의 소문》(누크갤러리,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이진한은 《Vampire Problem?》(N/A, 서울, 2024), 《Drop Scene》(챕터뉴욕, 뉴욕, 2024), 《Alone Time》(유니온퍼시픽, 런던, 2023), 《Magnetic Fields》(BB&M, 서울, 2022), 《The Day in the Evening》(스페이스K, 과천, 2018) 등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이진한은 비컨스필드(2021), 윈저앤뉴튼 엘리펀트 랩(2019), 더 리 알렉산더 맥퀸 재단 레지던시(2015), 블룸버그 뉴컨템포러리(2015), 사치 갤러리 뉴센세이션(2012) 선정 작가다.

작품소장 (선정)

이진한의 작품은 현대캐피탈, 중앙일보, 사라방드–더 리 알렉산더 맥퀸 파운데이션, 바르셀로나 소호하우스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작가의 사적 언어와 세상의 언어가 충돌하는 공간

주제와 개념

이진한의 회화 세계는 2007년 런던 이주라는 지리적 전환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초기 작업의 원동력은 비교적 명확했다. 외국어 속에서 느끼는 언어적 단절,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에서 비롯된 외로움, 그리고 그 감정들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회화를 공부한 뒤 영국의 미술 교육과 담론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서구 미술사의 중심 서사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을 자주 마주했다. “모더니즘부터 우리는 없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단순한 문화적 소외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왜 회화를 해야 하는지, 회화가 무엇을 대신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질문은 2010년을 전후로 형식적 실험과 결합하며 구체적인 화면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개인전 《관찰자의 포스트 모더니즘, 개념의 풍경화》(대안공간 루프, 2012)에서 소개된 〈풍경과 함께 스파이더맨#3.3〉(2011), 〈풍경에 없는 슈퍼마리오〉(2011), 〈초현실주의자〉(2011) 등은 르네상스의 원근법과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 대중문화 이미지와 추상적 제스처를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시킨다.

이때 캔버스는 하나의 통일된 장면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충돌하고 다시 관계를 맺는 장소가 된다. 작가는 이질적인 레이어들을 한 화면에 겹쳐놓음으로써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미술사의 제도적 언어와 개인적 감각이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이진한의 작업에서 ‘번역 불가능성’은 이후 점차 더 사적이고 감각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영국 생활 중 겪은 언어적 소외는 단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감정이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미끄러지고, 오해되고, 다른 의미로 변형되는 경험에 가깝다.

작가는 신조어, K-POP 가사, 영어권 표현, 일상 대화에서 포착한 어긋남을 회화의 소재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회화는 언어의 결핍을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라 언어가 놓친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일수록, 그의 화면 안에서는 더 강한 색과 움직임, 기호와 모티프로 되돌아온다.
 
2015년 개념미술가 마사 로슬러의 제스처를 목격한 사건은 이진한의 사유를 다시 한 번 전환시킨다. 마사 로슬러가 강연 중 “작은 바이올린을 켜는” 제스처를 했을 때, 그 표현은 영어권에서 조롱의 의미로 쓰일 수 있었지만, 작가는 현장에서 그것을 냉소가 아니라 유머와 환대, 일종의 친밀한 소통으로 받아들였다. 〈가장 작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마사〉(2015)와 〈Martha’s Red Violin〉(2021), 그리고 개인전 《마사의 소문》(누크갤러리, 2021)은 바로 이 모호한 순간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스처의 ‘정확한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느낀 분위기와 감각이다. 이 경험은 이진한에게 의미란 고정된 정의가 아니라, 오해와 해석, 감정과 관계 사이에서 계속 새롭게 발생하는 것임을 확인시켰다.
 
귀국 이후 작가는 개인적 서사를 보다 보편적인 감정의 장면으로 변환하는 데 집중한다. 〈Hi, Bye 안녕, 안녕〉(2016)은 외국인 친구와 거리에서 “하이” 하고 인사하자마자 “바이” 하고 멀어지는 찰나의 감정을 벚꽃이라는 모티프로 표현한 작업이다. 한국어의 “안녕”이 만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품는 말이라면, 영어의 “hi”와 “bye”는 그 둘을 나누어 발화한다. 작가는 이 언어적 차이를 붙잡을 수 없는 관계와 시간의 감각으로 확장한다.

《안녕, 안녕 Hi, Bye》(스페이스 이수, 2023)에서 〈Falling 봄의 끝〉(2023), 〈Moonbow 달무지개〉(2023), 〈Sun and Moon 해와 달〉(2023), 〈Two Lovers Walking in the Spring 봄을 걷는 두 연인〉(2023) 등은 만남과 이별, 밤과 낮, 해와 달, 꿈과 현실이 맞닿는 불가능한 순간들을 식물과 풍경의 언어로 펼쳐낸다.
 
최근 작업에서 이진한의 주제는 사랑, 실패, 친밀함, 여성으로서의 자기 인식, 삶의 부정적 감정을 전복하려는 태도로 더 넓어진다. 작가는 실패한 사랑이나 이별, 고난을 단순히 슬프고 결핍된 경험으로 다루기보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과 유머, 다시 말해 삶이 계속 움직이게 하는 감각을 붙잡고자 한다. 이는 최근 개인전 《Lucid Dreams》(갤러리현대, 2024)와 《Whispers》(갤러리현대 뉴욕 프로젝트 스페이스, 2025)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초기에는 언어적 단절과 이방인의 위치가 주요한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그 경험이 발, 꽃, 해와 달, 나무, 빛, 밤 같은 반복적 모티프를 통해 더욱 열린 상징 체계로 확장된다. 작가의 회화는 점점 더 많은 삶의 장면을 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의 질문을 놓지 않는다.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감각을 회화는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가.

형식과 내용

이진한의 회화는 전통적 회화 형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르네상스적 화면은 그가 회화의 역사적 구조를 탐색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었으며, 작가는 이 안정적인 공간 안에 포스트모더니즘적 균열을 개입시킨다.

〈풍경과 함께 스파이더맨#3.3〉, 〈풍경에 없는 슈퍼마리오〉, 〈초현실주의자〉 같은 작품에서 원근법은 더 이상 하나의 질서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위에는 글리터, 아크릴, 유채, 과슈, 마스킹 테이프, 드리핑의 흔적이 겹쳐지고, 만화나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화면은 깊이를 향해 정리되기보다 여러 층의 이미지와 물질이 동시에 부딪히는 장으로 변한다.
 
이 시기의 핵심은 레이어 사이의 불편하고 상이한 관계다. 작가는 배경 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칠한 뒤, 테이프를 제거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드리핑 기법을 통해 물감은 작가의 의도와 우연 사이에서 새로운 물리적 층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회화는 단순히 이미지를 담는 평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물질과 시간이 직접 관계를 맺는 장소가 된다. 이진한의 초기 실험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회화의 평면성을 거부하면서도 회화를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회화적으로 보이는 재료와 장치를 통해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묻는다.
 
2016년 이후 작가의 화면에서는 모티프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발’은 이진한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신체적 기호다.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안에서 성장했고, 맨발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럽게 여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 기억은 발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만 허락되는 친밀한 신체의 경계로 각인시켰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 발은 사랑을 직접 말하는 대신 사랑의 감각을 전하는 회화적 언어가 된다.

〈Hi, Bye 안녕, 안녕〉에서 시작된 관계의 감각은 이후 〈Two Lovers Walking in the Spring 봄을 걷는 두 연인〉이나 《Lucid Dreams》에 등장하는 발 모티프의 변주로 이어지며, 점차 구체적 신체 부위라기보다 친밀함이 머무는 상징적 공간으로 추상화된다.
 
‘꽃’ 역시 최근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자리한다. 작가는 가부장적인 가족 질서 속에서 “딸이라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규범을 경험하며 자신을 시들어가는 꽃처럼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의 꽃은 밝고 장식적인 이미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Heatwave〉(2023), 〈Light Night〉(2025), 〈The Glitch in the Garden〉(2026) 등에서 꽃과 식물은 종종 빛이 바래거나 어둡고 강한 색채를 띠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내면화된 감정,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은유한다. 작가의 꽃은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살아 있으면서도 계속 변형되고 손상되고 다시 피어나는 감정의 상태에 가깝다.
 
색채와 붓질 또한 이진한의 회화에서 중요한 내용이 된다. 그의 화면은 강렬한 붓질, 화려한 색감, 뚜렷한 명암 대비를 통해 감정의 압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2021년 레지던시에서의 VR 실험은 작가가 동양과 서양의 붓질 차이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 회화의 붓질이 화면을 밀어내는 감각에 가깝다면, 동양화와 서예의 붓질은 당겨오는 감각을 지닌다.

작가는 VR 안에서 ‘당기는’ 움직임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익숙했던 서예적 감각을 다시 발견했고, 이후 이 감각은 화면 바깥으로 돌출하거나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3차원적 공간감으로 이어졌다. 그의 붓질은 형태를 묘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과 신체가 화면 위에서 직접 움직인 흔적이 된다.
 
최근작들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러 모티프가 한 화면 안에서 밀도 있게 축적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하나의 화면에 하나의 모티프가 비교적 분명하게 놓였다면, 최근에는 해와 달, 식물, 발, 나무, 빛, 어둠 같은 요소들이 서로 얽히며 복합적인 리듬을 만든다.

《Whispers》는 이러한 변화가 잘 드러나는 전시다. 화면 속 모티프들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고, 서로에게 번지고, 대체되고, 연결되며 새로운 서사적 분위기를 만든다. 이진한의 화면이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경험한 감정과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와 만들어낸 내면의 풍경이다.

지형도와 지속성

이진한은 언어가 실패하는 구체적인 순간들, 이를테면 외국어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친구와 인사하자마자 헤어진 순간, 사랑을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신체의 온기나 발의 접촉으로만 전달되는 친밀함을 회화의 구조 안으로 가져온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관념적 추상으로 쉽게 빠지지 않는다. 화면에는 늘 구체적인 기억의 출처가 있고, 동시에 그 기억은 누구나 감각할 수 있는 보편적 장면으로 열린다.
 
발, 꽃, 해와 달, 나무 같은 모티프는 작가의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반복과 변주를 거치며 하나의 상징 체계가 된다. 또한 작가는 동양과 서양의 형식 언어를 단순히 혼합하지 않는다. 서구 미술사의 원근법과 모더니즘의 평면성, 동양 서예의 당기는 붓질, 유화의 물질성, 대중문화의 이미지와 언어를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하게 만든 뒤, 그 충돌 자체를 작업의 생동감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그의 회화는 정체성의 설명보다 감각의 작동 방식에 더 가깝다.
 
이진한의 작업은 런던에서 보낸 15년과 서울로 돌아온 이후의 변화가 뚜렷하게 구분되면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런던 시기의 작업이 이방인의 위치, 언어적 소외, 서구 미술사 안에서의 자기 위치를 강하게 의식했다면, 귀국 이후 작업은 그 긴장감을 보다 자유로운 색채와 모티프의 조합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이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나, 이미 축적된 경험과 이미지들이 화면 안에서 스스로 만날 수 있도록 둔다. 《Lucid Dreams》와 《Whispers》에서 보이는 밝아진 색채, 유기적으로 얽힌 식물과 신체의 파편, 사랑과 실패를 동시에 품는 분위기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국제적 활동 이력은 이진한의 지형도를 넓히는 중요한 요소다. 그의 회화는 개인적 감정의 기록을 넘어, 동시대 회화가 언어, 문화, 정체성, 감각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이진한의 작업은 이미 구축된 모티프들을 더 넓은 화면과 맥락 속에서 계속 변주해갈 것으로 보인다. 발은 친밀함의 공간으로, 꽃은 여성적 자기 인식과 사회적 감정의 은유로, 해와 달은 불가능한 만남의 장면으로, 서예적 붓질은 동양과 서양의 감각을 잇는 몸의 언어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요소들이 고정된 상징으로 굳어지지 않고, 매번 다른 감정과 기억 속에서 다시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진한의 회화는 말보다 늦게 도착하지만 더 오래 남는 방식으로, 번역되지 않는 감각들을 화면 위에 붙잡는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언어 없이도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게 되는 드문 순간들을 향해 계속 열려 있다.

Works of Art

작가의 사적 언어와 세상의 언어가 충돌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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