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민선의 회화는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보다 사물이 화면 위에서 어떤 상태로 다시 발생하는지에 집중한다. 초기의 도면 드로잉은 건축 평면도와 기호, 선의 조합을 통해 도시를 이미지화했으며, 이후 작업에서는 각목, 끈, 비닐, 호스, 스티로폼 같은 사물들이 화면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기대며 새로운 형상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화면에서 사물은 독립적으로 놓이지 않고, 배경과 지지대,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은 풍경, 정물, 초상, 설치적 구성의 경계를 오가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회화의 구조로 끌어들인다.
작가의 형식적 특징은 재료와 표면을 다루는 태도에서 두드러진다. 사진을 화학약품으로 녹여낸 잉크로 풍경을 다시 그리거나, 인화지 위에 아크릴 물감을 여러 차례 얹어 희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이미지와 물질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화면은 매끄럽게 완성된 환영을 제공하기보다, 물감과 지지체가 서로 밀어내고 버티는 과정을 노출한다. 특히 최근의 인화지 작업에서 반광 표면은 붓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 저항감은 사물이 세계 안에서 버티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회화의 표면은 이미지를 담는 바탕이자, 그 자체로 완강한 물질로 작동한다.
내용의 측면에서 이해민선은 풍경 속에 놓인 사물의 상태를 통해 사회적 조건과 개인의 감각을 함께 다룬다. 철거 현장, 외곽의 공사장, 동네 화단, 버려진 장판, 임시로 묶인 식물 같은 장면들은 일상의 주변부에서 발견된 풍경이지만, 작가의 화면에서는 동시대적 삶의 불안정한 구조를 암시한다.
사물은 임시방편으로 고정되고, 감싸이고, 묶인 채 놓여 있으며, 그 상태는 개인이 외부 조건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모습과 겹쳐진다. 이해민선은 이러한 장면을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낮고 조용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 결과 화면에는 사회적 서사와 물질적 감각, 개인적 기억이 함께 축적된다.
또한 그의 작업은 반복적으로 ‘무게’와 ‘질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의 상태를 구성해왔다. 흙더미, 돌무더기, 깁스, 침전물, 덮개와 같은 형상들은 화면 안에서 작고 연약하지만 단단한 존재감을 갖는다. 작가는 사물의 외형을 명확히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지나온 시간, 접촉의 흔적, 남겨진 감각을 화면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 회화는 보는 대상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사물의 존재 방식과 작가의 신체적 노동이 만나는 장이 된다.
이해민선의 형식과 내용은 분리되지 않는다. 무엇을 그리는가의 문제는 어떤 표면 위에, 어떤 재료로, 어떤 힘과 속도로 그리는가의 문제와 함께 작동하며, 그 결합이 그의 회화를 밀도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