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형의 작업은 상실
이후에 남는 감각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라진 사람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 공백, 잔상, 주변부의 사물을 오래 들여다본다. 초기 작업 〈친구들〉(2013), 〈빈자리〉(2014), 〈실종〉(2014)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빈자리〉에서 작가는 사진 속 인물을 지우고 공간만 남겨 그리며,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나 시간의 감각을 빈 화면 안에 남긴다. 〈실종〉에서는 확정되지 않은 부재가
만들어내는 불안, 기대, 체념, 믿음과 불신의 감정을 수많은 얇은 선의 축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임재형은 ‘그리기’ 자체를 상실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해 사유한다. 개인전 《행방》(쇼앤텔,
2020)에서 그는 사라진 뒤 남은 것, 눈앞에 있으나 곧 사라질 것,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그린다고 말한다. 마른 식물, 계란 껍질, 눈송이, 빙산, 구름 같은 대상은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상실의 주변을 맴돌며 눈에 밟히는 것들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전 《허물》(온수공간, 2020)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작가는 지나간 존재를 그림이라는
또 다른 실체로 남기는 일을 ‘허물’에 비유하며, 더 이상 살아 있는 몸의 일부는 아니지만 한때 존재의 표면이었던 흔적을 화면 위에 붙잡는다.
또 다른 개인전 《바다, 연기, 그늘》(인천아트플랫폼, 2022)에서는 개인적 상실과 사회적 상실이 함께 다루어진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일상,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가족의 죽음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작가는 이를 ‘세대’라는 시간의 단위 안에서 바라본다. 〈세대〉(2022)는 같은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경험, 다음 세대에는 이미지로만
전해질 사건, 하나둘 떠나가는 이전 세대의 존재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때 바다, 연기, 그늘은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계속 변하거나 사라지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작가는 이 비정형적인 대상들을 통해 상실과 기억,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조용히 더듬는다.
최근 개인전 《가장
먼 곳》(상업화랑, 2024)에 이르면 임재형의 관심은 사라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반복되는 날들과 한 번뿐인 삶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나날〉(2024)은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에서 세 장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삶의 시작과 끝 사이에 되풀이되는 낮과 밤, 계절, 일상의 시간을 은유한다. 〈몽타주〉(2023)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경험들이 관객의 시선 속에서 관계를 맺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주며, 〈연못〉(2023), 〈Pond〉(2024), 〈Eternity and a Day〉(2024)는 풍경을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부재가 겹쳐지는
장소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