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허앵 (b.1989) - K-ARTIST
김허앵 (b.1989)

김허앵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청주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개인전 (요약)

김허앵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Dear morning》(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5), 《나의 지구를 지켜줘》(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3), 《Furry Ways》(미학관, 서울, 2022), 《먹고 마시고: 사랑하지만 역겨운 나에게》(인스턴트 루프,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김허앵은 《마더링 플루이드》(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6), 《미지의 운동장》(팩토리2, 서울, 2025), 《Milky Way》(눈 컨템포러리, 서울, 2024), 《점점 다가서는 우리들》(자하미술관, 서울, 2024), 《New life》(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2), 《하-하-하 하우스》(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김허앵의 작품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미래의 인류의 모습

주제와 개념

김허앵의 작업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 현실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피로와 사건,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게 하는 작은 힘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 개인전 《BAD ENDING ~어쩐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아카이브 봄, 2015)에서 작가는 혼란스러운 시위 현장을 바라보며 가까운 미래에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드로잉 서사로 풀어냈다.

이 시기의 인물들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새로운 선택을 시도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구조 안에 놓인다.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도 망태를 만들고 칼을 가는 인물들의 태도는, 이후 작업 전반에서 반복되는 김허앵 특유의 비관적이면서도 끈질긴 생존 감각을 예고한다.
 
2020년 개인전 《mama do》(킵인터치, 2020)를 전후로 작가의 시선은 임신, 출산, 육아, 돌봄 노동의 현실로 옮겨간다. 그러나 김허앵은 ‘엄마됨’을 따뜻하고 숭고한 이미지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머리통이 펑 하고 날아가 버렸다〉(2019), 〈Daily Routine〉(2019), 〈한여름의 산책〉(2018), 〈잠이 안와〉(2019) 등에서 양육자는 지치고, 흘러내리고, 반복 노동 속에 갇히지만, 그 장면은 비극으로만 닫히지 않는다.

작가는 육아의 질척임, 몸의 변화, 감정의 소진을 블랙코미디처럼 다루며,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의 이미지 바깥에서 ‘엄마하기’의 실제 감각을 드러낸다. 이때 웃음은 고통을 가리는 장식이 아니라, 무너지는 일상을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에 가깝다.
 
《Furry Ways》(미학관, 2022) 이후 김허앵의 작업은 개인의 일상에서 출발하되, 게임과 만화의 세계관을 통과하며 더 넓은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된다. 반려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죽음 이후의 세계, 어린 시절의 게임 기억, 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향수를 겹쳐 놓는다. 〈너머의 지도〉(2022)는 “접속할 수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게임 속 지도와 현실의 상실감을 함께 불러낸다.

여기서 아이의 형상을 한 플레이어들은 적을 물리치거나 무언가를 정복하기보다, 관찰하고 산책하며 세계의 질서를 익혀나간다. 이는 삶을 퀘스트처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 안에서 감각을 축적하며 성장하는 방식에 가깝다.
 
2023년 《나의 지구를 지켜줘》(스페이스 윌링앤딜링)와 2025년 《Dear morning》(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 이르면, 작가의 관심은 모성과 양육의 경험을 지나 인류세, 기후 위기, 인간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꽃들〉(2023), 〈사랑하는 저녁〉(2023), 〈산 꼭대기〉(2023), 〈문어 아가씨〉(2023), 〈우리가 나눈 짙은 꿈〉(2023) 등은 어른의 불안과 다음 세대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든다.

최근 작가노트에서 말하듯, 김허앵은 인간이 더 이상 기존의 인간 형상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산, 문어, 새, 벌레, 바위 같은 존재들과 뒤섞이는 새로운 생명체를 그린다. 그의 작업에서 변신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습이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계를 다시 상상하려는 시도다.

형식과 내용

김허앵이 《BAD ENDING ~어쩐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에서 선보인 80점의 초기 드로잉은 길거리의 풍경, 사람들, 사건을 조각처럼 모아 하나의 불길한 이야기로 엮는다. 이때 화면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일상의 피로와 세계에 대한 불안을 만화적 장면처럼 압축한다. 인물들은 단순한 표정과 기호화된 몸짓을 지니며, 사건은 현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만들어낸 우화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드로잉적 감각은 이후 회화에서도 유지되어, 복잡한 감정을 명료하고 즉각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김허앵의 중요한 방식이 된다.
 
이후 《mama do》에서 선보인 회화와 드로잉은 밝은 색면, 만화적인 캐릭터, 게임 화면을 연상시키는 구도, 과장된 표정과 신체 변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Where is My Fucking Taxi〉(2018), 〈초록토 해은이〉(2019), 〈마음으로 피는 담배 500개피〉(2019), 〈당당하게 코파기〉(2019), 〈아빠의 미술수업〉(2019) 등은 육아와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을 다루면서도, 이를 지나치게 무겁거나 교훈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은 녹아내리거나, 날아가거나, 게임기 속에 갇히고, 알약과 책은 아이템처럼 떠다닌다. 반복되는 돌봄 노동은 오래된 비디오게임의 무한 반복 스테이지처럼 표현되고, 양육자의 몸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액체처럼 변형되는 상태로 나타난다.
 
《Furry Ways》에서 김허앵의 화면은 게임 속 맵, 탐험의 경로, 산책 중 마주친 동물과 풍경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1997년 게임 〈마법사가 되는 방법〉에 대한 기억은 이 전시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게임 속 아이는 계절에 따라 약초를 구하고, 마법을 익히고,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회화의 세계로 옮겨, 작은 플레이어들이 망원경을 들고 먼 곳을 바라보거나, 돋보기를 마법봉처럼 들고 탐색하거나, 모닥불을 관찰하는 장면을 만든다. 회화 작품 〈The Explorer〉(2022)처럼 세계를 알아가려는 인물들은 귀엽고 작지만, 그들이 마주한 세계는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 걸어가야 하는 장소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 이후 작업에서는 재료와 화면 감각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전의 두터운 유화 질감에서 아크릴을 활용한 빠르고 과감한 붓질, 강한 색채, 얇게 쌓이는 밀도감으로 이동하면서 화면에는 속도감과 환상성이 더해진다. ‘거인’ 연작, 〈The Explorer〉(2025), 《Dear morning》의 벌레와 바위 캐릭터들은 동화적이고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생존 방식의 전환, 몸의 변형에 대한 질문이 함께 들어 있다.

특히 《Dear morning》에서는 혐오의 대상이었던 벌레가 의인화된 캐릭터로 바뀌고, 막연한 불안은 게임 레벨을 하나씩 통과하는 바위 캐릭터의 여정으로 번역된다. 김허앵은 회화 안에서 재난과 불안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그것을 탐험, 변신, 훈련, 산책의 이미지로 전환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허앵은 사적인 삶의 경험을 사회적 의제와 곧바로 연결하면서도, 그것을 설명적 구호나 무거운 비판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임신과 출산, 육아, 가사 노동, 반려동물의 죽음, 아이의 성장, 기후 위기와 인류세라는 주제는 자칫 익숙한 담론으로 정리되기 쉽지만, 김허앵은 이를 게임, 만화, 시트콤, 동화, 판타지의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귀엽고 명랑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몸의 소진, 사회적 역할의 압박, 세대 간 시간감각의 차이, 인간 이후의 생존 가능성 같은 질문이 촘촘하게 놓여 있다. 웃음과 불안, 귀여움과 기괴함, 놀이와 생존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김허앵 작업의 독특성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모성이나 돌봄을 다루는 작업은 종종 신체의 고통, 제도적 비판, 여성 서사의 회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허앵 역시 이러한 흐름과 접점을 가지지만, 그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그는 모성을 숭고하게 만들거나, 돌봄을 윤리적 가치로만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한여름의 산책〉에서처럼 녹아내리는 몸, 〈Daily Routine〉에서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낮은 레벨의 게임, 〈산부인과에서〉(2021)처럼 여성의 신체가 제도적 공간 안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현실을 유머와 판타지의 표면 위에 올려놓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여성적 경험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몸이 바뀌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도 바뀐다’는 문제로 확장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김허앵이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의 게임·만화적 감수성을 단순한 레트로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게 게임은 시각적 스타일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이해하는 구조다. 레벨, 퀘스트, 아이템, 이벤트, 플레이어, 맵, 리스폰 같은 요소들은 현실의 상실과 실패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Furry Ways》에서 게임은 죽은 반려견이 도착했을지도 모를 장소를 상상하는 방식이 되고, 《Dear morning》에서는 불안한 미래를 통과하는 훈련의 형식이 된다. 이처럼 김허앵은 게임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감각적 모델을 만든다.
 
김허앵은 국내 다양한 전시들을 통해 자신의 문제의식을 단계적으로 확장해왔다. 특히 작가는 모성, 돌봄, 공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기획들과 접점을 만들어왔다. 김허앵은 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감각을 바탕으로, 인간 이후의 세계를 작고 구체적인 몸짓, 캐릭터, 생물, 산책, 변신의 장면으로 계속 밀고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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