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민의 작업은 개인적
체험과 사회적 구조 사이의 균열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개인의 기억, 언어, 신념 체계를 통해 동시대 사회의 감춰진 작동 원리를 탐색하며, 그것이
일상 속에서 어떤 정동으로 드러나는지를 관찰한다. 초기작 〈3개의
스마트폰, 24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2018)는 시리아 난민의 스마트폰 충전 장면에서 비롯된 작업으로, ‘타자’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이 사진을 재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일상적 풍경과 비극적 현실이 교차하는 감정의 간극을 체험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곧 타자와 나, 현실과 재현,
신념과 체험의 관계를 관통하는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Unmellow Yellow〉(2017–2025)는 사회적 관계망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작가는 무심히 지나치던 노란 소화전을 통해 ‘보지 않음’과 ‘무관심’의 사회적 함의를 묻는다. 여러 사람에게 그 대상을 그려달라 요청하고, 이를 다시 책과 엽서로 재구성하며, 공동체가 어떻게 시각적·정서적 거리를 형성하는지 드러낸다. 이후 2024년의 동명 퍼포먼스에서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불가능성과 오역의 순간들을 탐색하며, “말이 세상의 경계를 만든다”는 선언적 문장을 통해 언어와 권력, 타자성을 연결시켰다.
손수민은 신념, 가치, 질서라는 추상적 구조를 탐구한다. 개인전 《현실은 메타포》(SeMA 창고, 2023)에서는 기술자본주의의 틈새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과 고독을 다루며,
〈In God We Trust〉(2023)에서 ‘신뢰’와 ‘가치’의 허구성을 해체한다. 달러 지폐의 문구에서 시작된 질문은 가상화폐와
금융위기, 그리고 사회적 믿음의 기원으로 확장된다. 이는
집단적 신념이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그 믿음이 언제든 붕괴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흐름은 같은
해 또다른 개인전 《A Good Knight》(합정지구)에서 인간 사회를 체스의 규칙에 비유하는 〈A Good Knight〉(2023)로 이어진다. 사회 질서와 위계 속에서 개인의 위치를 성찰하며, 작가는 “우리는 체스의 말인가, 체스를
두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규범이 만들어낸 ‘움직임의 한계’를 주목하는 시선은 이후 〈언더그라운드〉(2024)에서 기술 자본이 만든 고립과 대체의 시대 속 인간성의 의미로 확장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