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캔버스에 유채 80 x 240 x 10 cm
여기서 ‘지층’은 단순히 물감의 겹침이나 번짐을 의미하는 조형적 은유가 아니라, 미셸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L’épistémè)’—한 시대의 인식 조건을 구성하는 구조—를 참조하는 개념적 장치이다. 그는 개별 작품을 완결된 결과물로 제시하기보다, 회화라는 매체 자체의 존재 조건과 인식 구조를 탐색하는 과정으로서 작업을 사유한다.
이인현의 회화는 평면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모더니즘 회화와 달리 캔버스의 정면만이 아닌 모서리를 넘어 옆, 위, 아래까지 확장된다. 이때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캔버스가 아닌 두께감이 있는 입체적인 캔버스를 택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며, 정면과 측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인현에게 독창성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발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회화의 사각형 구조, 캔버스, 물감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조건을 유지하면서 그 내부의 관계를 재조정한다. 정면과 측면, 물질과 이미지, 깊이와 표면 사이의 위계를 해체하며, 회화의 정체성을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장으로 제시한다.
이와 같은 이인현의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정면성에 축적된 미술사적 역사를 드러내고, 회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구조에 새로운 지층을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