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말(泡沫)의 말(言) - K-ARTIST

포말(泡沫)의 말(言)

2021
엽서 14장
16 x 9 cm

About The Work

안유리는 개인이 역사와 정치, 국가와 공동체의 조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시켜 가는지 추적한다. 특히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거나 충돌하는지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라진 말과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안유리의 작업은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에서 겪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디아스포라의 서사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냉전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해 온 ‘아시아’로 시야를 확장하며, 소외된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꾸준히 조명해 왔다.

안유리는 영상, 텍스트, 사운드, 출판, 웹 기반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말’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시와 기록, 작가 자신의 문장을 엮어 한 장소의 역사나 한 개인의 경험을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텍스트, 소리는 서로를 설명하는 대신 조금씩 어긋난 채 놓이며, 그 사이에서 관객은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를 새롭게 연결하게 된다.

이처럼 안유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개인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엮고, 흩어지거나 희미해진 존재들을 현재로 불러내 서로 연결한다. 나아가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갈등과 대립, 차별과 폭력의 상황 속에서 연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개인전 (요약)

안유리가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강》(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6), 《항해하는 말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추수할 수 없는 바다》(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5)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안유리는 《보더리스 시네마》(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6), 《경계 위의 그녀》(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26),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_영화 이후》(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5), 《루프 랩 부산 2025》(뮤지엄 원, 부산, 2025),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약장수와 약속의 땅》(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3), 《아트스펙트럼 2022》(리움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안유리는 루프 바르셀로나 비디오아트 프로덕션 어워드 2021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바 있다.

작품소장 (선정) 

안유리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시공간적 간극의 시각화

주제와 개념

안유리는 개인이 역사와 정치, 국가와 공동체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변화해가는지를 추적한다. 작업은 자신의 이주 경험과 언어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네덜란드 유학 시기에 제작한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테셀에서 제주까지〉(2014)는 하멜이 항해를 시작한 테셀과 자신이 떠나온 제주를 연결하며, 누군가의 출발지가 다른 누군가의 도착지가 되는 상황을 따라간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모국어가 희미해지고 다른 언어와 충돌했던 경험은 이후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2015)에서는 테셀과 제주 사이에 진도를 더하고, 세월호 참사와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건을 배경으로 ‘귀환할 수 없는 존재’와 ‘닻을 내릴 수 없는 마음’을 다룬다. 오디세우스, 하멜, 뽕할머니, 영등할매 같은 신화와 전설 속 인물들은 현재의 사건과 만나며,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시간 안에 겹쳐 놓는다.
 
2016년부터 시작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에서는 개인적 이주 경험이 한반도를 둘러싼 보다 넓은 역사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월강〉(2016), 〈몸〉, 〈말〉, 〈소리〉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을 통해 몸은 국경을 건넜지만 언어는 떠나온 장소와 이어져 있는 상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목소리와 정체성이 달라지는 과정을 살핀다.

이후 〈불온한 별들〉(2018)은 한국과 연변, 연변과 중국, 한국과 중국이라는 여러 공간을 함께 보여주며 ‘고국’과 ‘모국’, ‘동포’와 ‘외국인’ 사이에 놓인 복합적인 위치를 드러낸다. 이 시기 안유리에게 디아스포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는 집단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이 개인에게 어떻게 입혀지고 벗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조건이 된다.
 
이후 작업은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20세기의 전쟁·냉전·이데올로기로 범위를 넓힌다. ‘포촘킨 스터디’(2017–) 연작은 도시와 국경을 읽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포촘킨 스터디 1. 서울: 침묵의 탑, 불의 집〉(2017)은 50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 종묘와 끊임없이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대림동을 병치하고, 〈포촘킨 스터디 2. 베를린에서 도문까지: 물뿌리로 가는 길〉(2019)은 분단을 지나온 베를린과 여전히 북한과 중국의 경계에 놓인 도문을 연결한다.

〈파레시아: 하나의 몸, 두 개의 말〉(2020)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념 대립 속에서 삶이 뒤바뀐 네 인물을 통해 동일한 사건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말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안유리의 관심은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보다 국가와 이념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조직하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2020년대 작업에서는 ‘사라진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 더욱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는다. 〈스틱스 심포니〉(2022)는 히로시마, 나치와 소비에트, 미국 흑인민권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을 통과한 네 여성 시인의 시를 현재 여성들의 목소리로 다시 읽으며 과거의 폭력이 오늘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묻는다. 〈접붙인 낱말들, 잘려진 이름들〉(2023)은 귀화 시험과 ‘한국인 되기’를 둘러싼 제도적 언어를 통해 난민, 외국인 노동자, 동포 등 다양한 존재가 한국 사회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이름 붙여지고 탈락하는지를 살핀다.

〈은막(銀幕)의 방랑자〉(2024)는 야마구치 요시코와 가와시마 요시코의 삶을 통해 국가와 시대가 개인에게 부여한 ‘페르소나’를 추적한다. 최근의 〈포효하는 잿더미들〉(2025)은 이러한 역사적 관심을 개인적 죽음과 애도의 경험으로 다시 가져온다. 홋카이도와 사할린, 제주와 대마도를 잇는 바닷길을 따라가며 끝내 도착하지 못한 목소리들을 기다리는 이 작업에서, 역사적 상실과 사적인 상실은 하나의 ‘곡(哭)’ 안에서 만난다.

형식과 내용

안유리는 영상, 텍스트, 사운드, 출판, 웹 기반 작업 등의 매체를 오가며 ‘말’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초기부터 그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 텍스트와 소리가 이미지를 다른 방향으로 읽게 만드는 구조를 선호했다.

〈항해하는 말들; 시인과의 대화, 허수경〉(2015)은 시인 허수경과 주고받은 서신을 텍스트 설치와 3채널 영상으로 구성하고, 개인전 《추수할 수 없는 바다》(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5)에서는 영상과 이미지, 글을 공간 안에 느슨하게 배치했다.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풍경과 목소리를 남겨두는 방식 역시 이때부터 반복된다. 관객이 인물의 외모나 배경을 통해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말과 풍경 사이에서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를 거치며 영상의 채널 수와 구조도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월강〉, 〈몸〉, 〈말〉, 〈소리〉가 각각 단채널로 제작되었다면, 이를 확장한 〈불온한 별들〉은 세 개의 공간적 관계를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3채널 영상으로 재구성되었다. 안유리는 단채널에서는 한 화면 안에 여러 시간을 중첩시키고, 다채널에서는 서로 다른 화자와 공간을 수평적으로 병치한다.

〈파레시아: 하나의 몸, 두 개의 말〉에서는 독백·방백·대화라는 연극적 구조와 ‘라쇼몽 효과’를 활용해 동일한 사건을 둘러싼 네 사람의 상반된 진술을 배치한다. 이처럼 형식은 미학적 선택에 앞서 서로 다른 목소리와 시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텍스트와 시는 안유리 작업에서 영상만큼 중요한 재료다. 〈포말(泡沫)의 말(言)〉(2021)은 오가사와라를 둘러싼 김옥균의 망명과 유배의 기억을 두 화자의 대화 형식으로 이어 쓰고, 〈약속의 땅, 추방된 기억〉(2021)은 2010년에 촬영한 멜라 난민캠프와 홍콩의 사진을 1988년 미얀마 민주항쟁, 홍콩 반환, 2019년 홍콩 시위와 2021년 미얀마 민주항쟁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축에 연결한다.

같은 해 발표한 사운드 설치 〈하늘강 마믅소리〉는 고정희의 시를 현재 여성들의 목소리로 반복해 낭독하며, 시를 과거에 머무는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에 다시 발화되는 소리로 만든다. 안유리가 스스로를 ‘Poetry Weaver’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다른 시대의 시와 기록, 자신의 문장을 서로 직조해 한 장소의 역사나 한 개인의 경험을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더욱 영화적이고 감각적인 구성으로 발전한다. 〈스틱스 심포니〉는 두 개의 화면을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계로 설정하고, 네 여성 시인의 서로 다른 언어와 여덟 여성의 목소리를 교향곡처럼 연결한다. 〈은막(銀幕)의 방랑자〉에서는 두 실존 인물의 삶을 환등상이라는 무대로 재구성하고, 영화 이전의 시각 장치와 ‘은막’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인물이 어떻게 국가가 만든 이미지 속에서 연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포효하는 잿더미들〉에서는 다시 단채널로 돌아와 해안과 바다, 목소리와 침묵을 따라가는 보다 내밀한 리듬을 만든다. 작품마다 형식은 달라지지만, 이미지와 텍스트, 소리는 서로를 설명하지 않고 약간씩 어긋난 채 놓이며, 그 틈에서 관객이 역사와 개인의 이야기를 다시 연결하도록 만든다.

지형도와 지속성

안유리의 작업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역사를 개인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방식’이다. 그의 영상은 전쟁, 분단, 디아스포라, 국가폭력처럼 규모가 큰 사건을 다루지만 이를 연표나 기록 영상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말투, 시의 한 구절, 바닷가의 풍경,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역사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작품 속 인물은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사례로 고정되지 않는다. 조선족, 북한이탈주민, 난민이나 이주민처럼 쉽게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도 얼굴보다 목소리와 말, 그들이 놓인 장소를 통해 등장한다. 정체성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만들어지고 흔들리는 조건을 보여주는 태도가 안유리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물’과 ‘이동’을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작품의 시간 구조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테셀에서 제주와 진도로, 베를린에서 도문으로, 오가사와라에서 홍콩과 미얀마로, 다시 홋카이도·사할린·제주·대마도로 이어지는 지리적 이동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강과 바다는 국경을 나누는 경계이면서도 그 자체로는 시작과 끝을 특정하기 어려운 순환의 공간이다.

안유리는 이 물의 성질을 통해 ‘고향’과 ‘이방’, ‘출발’과 ‘도착’, ‘과거’와 ‘현재’를 고정된 양쪽으로 나누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관계로 바라본다. 이런 방식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다큐멘터리적 영상과도, 개인적 기억에만 머무는 에세이 영화와도 다른 위치를 만든다.
 
작업의 흐름을 보면 개인적인 이주 경험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다시 아시아의 냉전과 제국주의, 난민과 국적, 여성의 목소리와 역사적 폭력으로 관심이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동시에 최근에는 죽음과 애도처럼 보다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초기와 최근을 잇는 감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라진 말과 기억되기를 원하는 말’을 찾아 듣고, 그것이 다른 시대의 목소리와 만날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속삭이는 분자들〉(2022)이 서로 다른 언어의 화자들이 완벽한 화음을 이루지 않더라도 함께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질문했다면, 〈포효하는 잿더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목소리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안유리의 작업이 정체성과 경계를 분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존재가 어떻게 함께 기억되고 애도될 수 있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리서치와 시적 언어, 영상의 시간성을 함께 다루는 안유리의 작업은 특정 지역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데 머물기보다, 서로 다른 장소와 세대의 목소리를 이어 듣는 방법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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