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희는 빛과 열, 중력 등 비가시적인 힘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설치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를 위해 LED 디스플레이와 전선, 파라핀 왁스, 석고, 콘크리트, 히터 등 산업용 재료와 일상적인 사물을 폭넓게 활용한다. 작가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해체하거나 조합하며 기존의 용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작동 방식을 모색한다.
초기작 〈A Single Pillar〉(2006)은 콘크리트 기둥 내부에 히터를 매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냈으며, 〈Form of memory〉(2010)는 감열 패널과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온도 변화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이러한 실험에서 물리적 현상은 작품을 이루는 재료인 동시에 관객의 지각을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김덕희는 사물에 익숙하게 부여된 기능을 흔들고 감각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세계의 움직임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영상 매체의 기본 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은 김덕희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보여준다. 〈Quantum Dream〉(2018)은 LED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픽셀을 분리하고 전선으로 연결하여, 화면 속 영상을 개별적인 빛의 움직임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출생과 결혼, 죽음 등 인간의 생애를 암시하는 영상과 소리는 흩어진 픽셀의 불규칙한 점멸과 결합하며 기존의 서사적 연결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실험은 〈A Scattering Time〉(2019), 〈Blue Hour〉(2023)를 거쳐 〈Umbra〉(2024)로 이어진다. 〈Umbra〉에서는 사각형의 LED 구조물과 바닥에 원형으로 펼쳐진 수많은 픽셀이 빛의 흐름을 형성하고, 영상의 이미지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분산된다. 한편 〈부분 일식〉(2024)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LED 모듈을 통해 자연과 일상의 풍경을 단속적으로 드러낸다.
행성처럼 보이는 사과의 표면이나 우주를 연상시키는 불꽃의 이미지는 관객이 사물의 크기와 정체를 판단하는 방식을 교란한다. 이처럼 화면의 평면적 구조를 공간으로 확장하고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분해하는 방식은 영상과 설치, 추상적인 빛과 구체적인 사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가의 형식적 특징을 이룬다.
파라핀 왁스를 활용한 작업에서는 열에 반응하는 물질의 변화와 이를 반복하는 제작 행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가열된 파라핀은 녹아 흐르다가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굳어지며, 그 과정에서 중력의 방향과 물질의 점성, 시간의 경과가 표면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구조물과 공간에 파라핀을 반복적으로 도포하며 부피와 질감을 형성한다.
〈밤으로 덮다〉(2023)의 관을 뒤덮은 파라핀 자국과 〈밤의 노래〉(2025)의 거대한 원형 구조물은 물질이 흘러내리고 축적된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레퀴엠〉(2025)은 가열된 철판이 자체 중력으로 하강하며 파라핀 기둥을 녹이도록 설계되어,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작품의 형태가 변화하도록 했다.
실제로는 녹아내린 파라핀이 다시 굳어 기둥을 지탱하면서 철판의 하강이 멈추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처럼 작가는 정교한 제작 과정과 재료의 자율적인 반응 사이에서 발생하는 우연을 받아들이며, 물질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형상과 변화의 가능성을 작품에 반영한다.
김덕희의 설치 작업에서 전시 공간과 관객의 신체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작가는 공간의 규모와 구조, 관객의 이동 경로에 따라 작품의 크기와 배치, 감각적 강도를 조율한다. 〈우리의 차가운 시간〉(2022)은 관객이 특정 장소에 들어서면 센서가 작동해 가루가 떨어지도록 구성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물질적인 흔적으로 쌓이게 했다.
시민들의 손을 본떠 제작한 〈하얀 그림자〉(2023)와 〈하얀 목소리〉(2025)는 조각 내부에 히터를 설치해 관객이 온기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열 개의 눈》(2025)에서는 거대한 파라핀 구조물인 〈밤의 노래〉 아래에 손 조각들을 별자리처럼 배치하여, 신체에 가까운 작은 온도와 압도적인 규모의 조형물이 함께 감지되도록 했다. 〈Canon〉(2025) 또한 관객이 작품 사이로 들어와 직접 접촉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처럼 김덕희의 작업은 시각과 촉각,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흐름을 결합하며 관객의 능동적인 감각을 요청한다. 재료의 변화와 신체의 경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과 존재 사이의 관계는 구체적인 감각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