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weren’t saying anything - K-ARTIST

if you weren’t saying anything

2020
실리콘, 에칭된 라텍스, 나무, 피그먼트지, 흑연 파우더, 투명 봉투
114 × 76 × 8 cm

About The Work

제시 천은 영상, 드로잉,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언어와 시학을 탐구한다. 특히 역사학, 번역, 식민주의적 언어 체계 등을 바탕으로 기존 언어의 구조를 파열하고 추상화함으로써 비선형적인 의미와 시간성, 그리고 번역 불가능한 것의 영역을 탐색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 캐나다, 미국에서 거주해 온 작가의 경험은 토착어와 신조어를 비롯한 비영어권 언어, 특히 비서구권의 서사와 역사가 소외되고 변형되는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제시 천은 세계의 ‘공통어’로 여겨지는 영어의 구조를 파편화하고, 다양한 시각적·청각적·기호학적 순간을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추상과 오역을 통한 ‘탈언어화’를 실천하며 영어에 내재한 폭력과 지배의 구조를 무력화한다. 그 결과 작품은 언어와 의미, 가독성이 만들어 내는 기묘하고 순환적인 뉘앙스로 채워진다.

이러한 작업은 무한한 기호학적 가능성과 우주론을 펼치며, 세계에서 의미가 형성되는 물리적·정신적 경계를 넘어서는 시적 언어와 순간을 그려 낸다. 제시 천의 예술적 실천은 개인의 내면에 자리한 번역 불가능한 감각과 번역 및 이주를 둘러싼 침묵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한편, 언어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담아내고 이를 초월한다. 이러한 시청각적 추상 작업은 사회적·기호학적 구조에 균열을 내며, 대안적인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개인전 (요약)

제시천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국내 첫 개인 서베이 전시 《시, language for new moons》(서울역사박물관, 서울, 2023)을 선보였으며, 《밤, 낮, 달, 비, Speaking in Tongues》(Commonwealth and Council, 로스앤젤레스, 2024), 《And verse (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갤러리 TPW + public billboards, 토론토, 2022)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제시천은 제14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포란》(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26), 《Speaking in Tongues》(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로스앤젤레스, 2026), 《Open Hands》(갤러리현대, 서울, 2024), 《혀 달린 비》(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4)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제시 천은 2020년 미국 조안 미첼 회화조각상을 수상하였다.

작품소장 (선정)

제시천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도서관, 워싱턴 D.C. 스미소니언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도서관 등 주요 기관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번역 불가능한 순간들을 발화하는 추상적 시적 언어

주제와 개념

제시 천의 작업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고 권력을 조직하며, 무엇이 읽히고 무엇이 배제되는지를 결정하는 체계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 캐나다,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경험은 영어를 비롯한 지배적 언어와 비영어권 언어 사이의 위계를 직접 체감하게 했다.

초기 작업 〈voiceless consonants〉(2019)는 영어 발음 교육의 무성자음을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과 사운드스케이프로 변형하고, 개인전 《enunciating silence and》(1708 Gallery, 리치먼드, 2019)에서는 EFL/ESL 교재, 발음 튜토리얼, 시험지, 워터마크 등 영어 학습과 관료주의를 둘러싼 장치를 해체했다. 이 시기부터 제시 천은 언어를 정확하게 읽고 사용하는 능력 자체가 사회적 소속과 권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올바른 언어’를 일부러 오독하고 분해하는 방식으로 그 구조를 흔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술래 SULLAE〉(2020)를 거치며 ‘탈언어화(unlanguaging)’라는 작가 고유의 방법론으로 구체화된다. 작품은 영어를 음소와 유성·무성 자음으로 파편화하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강강술래 기억을 호출해 한국 여성들이 달 아래에서 노래하고 원을 그리던 집단적 몸짓을 탈식민적 은유로 연결한다. 이후 ‘탈언어화의 악보’(2021–) 연작에서는 로마자와 관료적 워터마크를 겹치고 지우며 영어를 더 이상 읽히는 문장이 아닌 추상적 기호와 ‘악보’로 변환한다. 이는 영어를 다른 하나의 언어로 교체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언어의 의미가 고정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풀어내고 새로운 관계와 해석이 들어올 여지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2022년 이후 작업에서는 이러한 탈언어화가 시와 오역, 우주적 시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And verse(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2022)는 돌과 텍스트, 인덱스 페이지, 투명한 아크릴과 움직이는 이미지를 결합해 문자와 문법의 질서를 비선형적인 시로 바꾸고, ‘시: sea’(2022–) 연작은 한국어 ‘시’가 영어 발음 안에서 ‘sea’로 오인될 수 있다는 틈을 적극적인 시적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오역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계기가 된다. 《시, language for new moons》(서울역사박물관, 서울, 2023)에서 이러한 작업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소개되면서, 제시 천의 언어 연구는 디아스포라와 번역 불가능성, 시간과 기억을 연결하는 보다 넓은 시학으로 자리 잡는다.
 
최근에는 작가의 가족사와 한국의 무속·민속·불교적 수행이 작업의 중요한 축으로 들어오면서 언어의 범위가 더욱 넓어진다. ‘시: concrete poem’(2023–) 연작은 무속의 종이 오리기 기법인 설위설경과 할머니에게서 경험한 ‘수행으로서의 쓰기’를 결합해, 읽을 수 있으면서도 읽을 수 없는 한지의 문자를 만든다. 〈오 더스트〉(2023)는 유네스코의 통역 장치와 무형문화유산 아카이브를 통해 누가 문화와 언어를 역사화하는지 묻는 동시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한국 전통무용가였던 할머니의 기억을 불러낸다.

이러한 관심은 〈시( )Nawi( )Fugue (an improvisation, an offering, a reading)〉(2026)에서 차학경의 예술적 계보, 시나위와 푸가, 즉흥 낭독을 연결하는 다성적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언어의 권력을 해체하는 데서 출발했던 작업은 이제 말과 몸, 기억과 영적 계보가 서로 번역되고 이어지는 가능성까지 탐색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

제시 천은 영상, 드로잉, 사운드,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지만, 각각의 매체는 언어를 분해하고 다시 조직하는 방법으로 연결된다. 초기에는 제도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언어적 장치가 중요한 재료였다.

단체전 《두산아트랩 뉴욕 2020: 엎질러진 얼룩이 물질을 흡수하기 시작한다》(DOOSAN Gallery New York, 뉴욕, 2020)에서 그는 영어 발음 교육 오디오, 공항 스피커, 관료적 문서의 워터마크, 흑연 같은 재료를 활용해 언어를 읽고 인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시각적·청각적 형태로 변환했다. 알파벳 조립 장난감을 제대로 된 글자가 아닌 축 늘어진 추상적 형태로 만들거나, 발음 교육의 음성을 파편화해 거의 침묵에 가까운 소리로 바꾸는 방식은 언어의 규칙을 재료의 차원에서 직접 흔드는 접근이었다.
 
이후 드로잉은 단순히 보는 이미지에서 연주하고 해석할 수 있는 ‘악보’로 변화한다. 〈탈언어화의 악보 no. 082721〉(2021)은 로마자 스텐실, 흑연, 안료, 워터마크가 반복·중첩되며 읽기와 추상 사이를 오간다. 작가는 이러한 드로잉을 완성된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고 다른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번역’하도록 열어둔다. 〈탈언어화의 악보(천지문 and Cosmos): 활성〉(2024)에서는 한국 전통연희 예술가 연희와 협업해 드로잉을 춤과 소리, 호흡의 퍼포먼스로 전환했다. 단체전 《혀 달린 비》(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에서 선보인 이 작업은 시각적인 기호가 다른 사람의 몸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시간과 감각으로 다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 작업에서는 언어의 불확실성을 공간과 시간의 구조로 확장한다. 〈시: sea (2565)〉(2022)는 흑백 영상과 거울, 돌, 침묵을 함께 배치해 영상 자체를 하나의 조각적 공간으로 만들고, 명확한 서사 대신 오역과 파편적인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강조한다.

〈오 더스트〉에서는 유네스코 본부의 통역 부스와 마이크, 비어 있는 회의실과 무형문화유산 아카이브를 촬영하며 ‘공식적으로 번역되는 언어’와 그 바깥에 남는 기억을 병치한다. 프랑스어 통역사의 목소리, 작가의 음성, 여러 언어의 텍스트와 중얼거림이 서로 겹치면서 하나의 언어로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 영상의 문법을 만든다. 제시 천의 영상에서 번역은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절차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목소리가 어긋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편집 방식에 가깝다.
 
최근의 한지와 퍼포먼스 작업에서는 이러한 언어 실험이 더욱 신체적이고 수행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 concrete poem (no. 041924)〉(2024)은 옻칠한 한지 위에 수많은 흑연선을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잘라내며, O와 ㅇ처럼 한글과 영어의 경계에 놓인 기호와 빈 공간을 하나의 추상적 문자 체계로 만든다. 남아 있는 종이와 잘려나간 공간, 그 사이에서 생기는 그림자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개인전 《밤, 낮, 달, 비, Speaking in Tongues》(Commonwealth and Council, 로스앤젤레스, 2024)에서는 이러한 한지 작업과 영상 조각, 공중에 매달린 드로잉, 사운드가 함께 놓이며 언어가 읽히는 대상에서 공간 전체를 움직이는 감각으로 확장된다. 최근의 퍼포먼스에서는 이 악보와 문자들이 다른 예술가들의 목소리, 음악, 즉흥성과 결합하면서 작품이 한 번의 완성으로 끝나지 않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다시 활성화된다.

지형도와 지속성

언어와 식민주의를 다루는 여타 작업이 흔히 특정 역사나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면, 제시 천은 글자와 발음, 문서, 번역 방식 자체를 잘라내고 겹치고 오독하면서 언어의 형태와 감각부터 다시 구성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확한 번역인가를 결정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와 관계가 발생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래서 작품 속 영어는 지배적 언어이면서 동시에 해체 가능한 물질이고, 한국어와 무속적 기호 역시 고정된 전통이 아니라 다른 시간과 존재를 연결하는 열린 통로로 작동한다.
 
작업의 변화 역시 이 ‘열린 언어’를 향해 이어져 왔다. 초기에는 영어 교육과 관료제에 내재한 권력 구조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술래 SULLAE〉 이후 개인의 디아스포라적 기억과 한국의 구전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탈언어화의 악보’를 통해 언어는 다른 사람이 연주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이후 ‘시: sea’와 ‘시: concrete poem’에서는 오역과 빈 공간, 그림자와 침묵까지 언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최근의 〈시( )Nawi( )Fugue (an improvisation, an offering, a reading)〉에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여성 예술가와 가족의 기억, 음악과 즉흥성을 하나의 집단적 발화로 묶는다. 개인의 이주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이 점차 모계적 기억과 예술적 계보, 공동의 수행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넓어진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시 천의 작업은 언어를 사용하는 개념미술이나 텍스트 기반 작업과도 조금 다른 위치를 만든다. 읽히는 문장을 중심에 놓기보다 문장이 되기 이전의 소리와 호흡, 문자 사이의 틈, 종이를 오려내고 선을 반복해서 긋는 몸의 시간까지 언어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무속, 시나위, 강강술래, 한지를 단순히 전통문화의 이미지로 인용하지 않고 ‘탈언어화’라는 기존 방법론 안에서 다시 작동시키며, 디아스포라적 현재와 연결한다. 이를 통해 한국적 전통과 탈식민적 언어 비판은 서로 다른 주제가 아니라 언어와 시간, 기억이 어떻게 전승되고 변형되는지를 묻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제시 천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국내 첫 솔로 서베이 《시, language for new moons》를 선보인 이후 아트선재센터, 타데우스 로팍 서울, 토론토현대미술관, 퀸즈뮤지엄, Commonwealth and Council 등 여러 국제 기관에서 작업을 발표해왔으며, 2020년 조안 미첼 재단 회화 조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BAMPFA의 차학경 회고전 《Multiple Offerings》(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버클리, 2026)에서 선보인 퍼포먼스처럼, 그의 작업은 언어의 해체에서 시작해 점차 다른 목소리와 세대, 영적·문화적 기억을 함께 발화시키는 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번역될 수 없는 것을 결핍으로 남겨두기보다 새로운 소통과 관계가 시작되는 자리로 바꾸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Works of Art

번역 불가능한 순간들을 발화하는 추상적 시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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