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람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고정된 상태’를 의심하는
태도다. 박물관은 사물을 고정하고, 지도는 영토를 고정하며, 국경은 신체의 소속을 고정하고, 과학적 분류는 생명을 종과 범주로
나눈다. 작가는 이러한 체계를 완전히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 생긴 틈과 누락, 이동을 찾아낸다. 박물관 벽을 통과하는 미생물, 수장고 밖으로 이동하는 유물, 국경에서 검사의 대상이 된 몸, Google Maps 안에서 시간이 뒤섞이는 디아스포라의 서사처럼, 작품
속 존재들은 정해진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이동을 통해 제도가 구축한 주체와 대상, 내부와 외부,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다시 질문한다.
아카이브나
식민주의를 다루는 작업들과 비교할 때 이아람의 특징은 과거의 누락된 서사를 찾아 보충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사물을 다시 이동시키고, 미생물을 퍼포머로 만들고, 수도관을 호흡기관처럼 바라보고, 땅에 1인칭의 목소리를 부여한다. 아카이브의 내용을 교정하는 것뿐 아니라
아카이브와 박물관, 지도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려는 태도에 가깝다.
이를 위해 사물과 비인간 존재에 일정한 행위성을 부여하면서도 그것들을 인간처럼 단순하게 의인화하지 않고, 인간과 사물, 환경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스트 물질론과 탈식민적 생태학은 추상적인 이론이라기보다 작품의 구조와 방법을 조직하는 실질적인
기반으로 기능한다.
작업의
범위 역시 사물에서 점차 커져왔다. ‘Dutch Wife’에서는 하나의 오브제 안에 숨겨진 식민주의와
여성의 기억을 추적했다면, X-hale에서는 신체와 국경의 관계를, 〈삼십오만 번의 상실〉에서는 박물관 전체의 제도적 생태를, 〈밟힌
벌레마다 별이 된다〉에서는 토양과 도시, 군사적 점유가 교차하는 장소의 생태를 다룬다. 그러나 관심의 크기가 확장되었다고 해서 출발점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무엇이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왔는지,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분류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는 일관되게 남아 있다. 최근 작업에서 ‘반환’ 역시 단순히 사물을 원래 장소로 되돌리는 행위를 넘어 감각과
기억, 생태적 관계 자체를 회복하는 문제로 넓어지고 있다.
이아람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Stedelijk Museum Amsterdam, Wereldmuseum
Amsterdam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고, Jan van Eyck Academie와 Rijksakademie를 비롯한 국제 레지던시와 연구 프로그램을 거쳤다. 〈Dutch Wife〉는 Gijs Bakker Prijs 후보에 올랐으며, 〈밟힌 벌레마다 별이 된다〉는 제25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한
뒤 Buro Stedelijk에서 유럽 첫 개인전 《Every
Worm Trampled Is a Star》(Buro Stedelijk, 암스테르담, 2026)로 확장되었다.
사물과 박물관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가 신체, 미생물, 기후, 토양으로
이어진 현재의 흐름을 보면, 이아람의 작업은 앞으로도 제도와 생태가 만나는 접점에서 인간 중심의 역사
서술로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와 관계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