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의 초기 조각에서 형태의 변화는 실리콘과 기계 장치의 결합을 통해 직접적인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얇은 실리콘 외피 안에 FRP로 만든 골격이나 근육 형태의 내피를 두고, 에어 컴프레서와 모터·센서로 공기를 주입하거나 배출한다. 표면은 부풀고 꺼지며 내부 구조에 밀착했다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인체는 호흡하거나 노화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Vanitas Bust’와 〈Deep Breathing〉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라는 시간의 변화를 짧은 주기로 압축한다. 조각의 표면은 형태를 감싸는 외피이면서 동시에 시간이 가시화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이후 작업에서는 실리콘 대신 폴리우레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라이브 캐스팅으로 얻은 인체를 반복 복제한 뒤 절단하고 다시 조립하는 제작 방식이 중심을 이룬다. 팔과 다리, 머리, 몸통은 서로 교환 가능한 조형 요소처럼 다뤄지며, 완성된 조각 역시 다음 작업을 위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조각은 공중에 매달리거나 벽에 부착되고, 철제 구조물에 기대거나 여러 파편이 위태롭게 결합한 모습으로 설치된다. 절단면과 접합부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벌어진 틈에 폴리우레탄을 주입하거나 석고를 불균일하게 입혀 매끈함과 거친 질감을 한 표면 안에 공존시킨다. 이러한 제작 흔적은 신체의 재현보다 분리와 연결, 무게와 균형,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Eccentric Abattis〉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의 독립성과 결합 가능성이 더욱 강조된다. 인체에서 분리된 형태들은 특정 신체 부위의 명칭이나 기능에서 멀어지고, 서로 이어지거나 떨어진 채 배치되면서 추상적인 조형 요소로 읽힌다. 연결을 위한 철물과 접합 흔적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불안정하게 쌓아 올리는 구성은 작품에 긴장감을 더한다. 거즈로 새로운 표면을 만들고 석고에 안료를 섞어 색을 입히는 방식도 사용하며, 작가는 붓질을 긁고 깎고 덧붙이는 조소의 과정처럼 다룬다. 색은 형태를 장식하는 요소에 머물지 않고 표면의 요철과 질감, 조각의 부피를 다르게 인식하게 만드는 조형적 수단으로 확장된다.
최근에는 물질적 제작 과정과 디지털 작업이 연결된다. 분절된 인체의 아바티를 3D 스캔해 데이터로 보존하고, 컴퓨터 안에서 좌표와 볼륨을 조정하며 새로운 덩어리를 구축한다. 'Silhouette Coordinates'에서는 X·Y·Z 좌표 위에 색을 직접 적용해 발생하는 늘어남과 왜곡을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화면 속 입체는 물성이나 두께를 잃은 데이터로 존재하면서도 실루엣, 명암, 색의 변형을 통해 다시 질량감을 획득한다. 이에 따라 조각의 형식은 캐스팅과 조립, 표면 처리에서 3D 스캔과 좌표, 디지털 색채로 이어지고, 물질적 조각과 이미지 사이를 오가는 제작 과정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