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슬은
동양 철학의 순환적·전일주의적 세계관을 디지털 기술과 지속적으로 연결해왔다. 자연을 인간 바깥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 미생물, 동물, 물, 데이터와
가상 존재까지 하나의 관계망 안에 배치한다. 오행과 음양, 도가적
순환의 개념은 초기에는 신체와 내면을 설명하는 구조로 나타났고, 이후 미시 생명체와 우주, 인간과 비인간, 기후위기 이후의 해양 생태계를 연결하는 틀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전통적 동양 사상은 작품의 외형을 장식하는 소재라기보다 긴 시간 동안 작업의 구조를 조직해온 사고방식에
가깝다.
또
하나의 특징은 첨단 기술을 미래지향적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텔레마틱
네트워크, 바이오 데이터, AI, VR, AR, XR, 메타버스와
모션 캡처는 모두 ‘연결’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MICRO Cosmos〉에서 서로 떨어진 두
신체의 생체 데이터가 하나의 화면에서 만났다면, 〈하이브리드 네이처〉에서는 관객과 가상 생명체가 같은
세계 안에서 공존하고, 〈해이라 – 다시 태어난 바다〉에서는
인간이 남긴 폐기물조차 새로운 생명의 조건으로 재해석된다. 유사한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기술적 스펙터클이나
디지털 세계의 확장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면, 김보슬은 그 안에 동양의 자연관과 신체적 경험, 생태적 질문을 동시에 넣으면서 기술을 관계를 감각하게 하는 매개로 사용한다.
작업의
발전 과정도 하나의 순환처럼 읽힌다. 초기의 자아와 그림자, 신체의
움직임에서 출발한 작업은 네트워크를 통한 타인과의 연결, 미시세계와 자연의 순환, 메타버스 속 인간-비인간 생태계로 확장되었고, 최근에는 ‘해이라’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관 안에서 그동안의 관심사를 통합하고 있다. 특히
‘물’은 최근 작업을 묶는 중요한 축이다. 물은
재난과 침수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생명과 치유, 기억과 재생을 품는 공간이다. 이러한 양면성 덕분에 ‘해이라’의
바다는 기후위기의 종말적 풍경이 아니라 인간 이후에도 다른 생명과 관계가 계속 형성되는 장소가 된다.
김보슬은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와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실험 애니메이션 및 융합미디어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 전공 부교수로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CultureHub 한국 디렉터로 활동하며 국제 협업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뉴욕 Times Square, La MaMa E.T.C., 파리 한국문화원, 몬트리올 Society for Arts and Technology, 프라하 쿼드레날레,
NFC Lisbon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KIAF, 아트센터 나비, 울산시립미술관, 파라다이스 아트랩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최근 《메타 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KF 갤러리, 서울, 2026)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동양적 세계관과 퍼포먼스적 감각,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기술 매체를 함께 다뤄온 경험을 고려하면, 김보슬의 작업은 특정 플랫폼에 고정되기보다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가상, 과거의 사유와 미래의 생태를 연결하는 하나의 확장 가능한 세계 구축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